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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lee Feb 03. 2022

오스트리아의 코로나19 사태... 반려인은 '패닉',

'동그람이:동물 그리고 사람이야기' 에 연재된 글입니다.

2020년 2월 말 한국을 잠식했던 코로나19는 글을 쓰는 2020년 4월 현재 이미 전 세계적인 대유행으로 번졌다.

한국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정점을 향해 치달았을 때,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코로나19를 ‘아시아 유행병’ 정도로 치부했다. 병원을 방문했더니 “근래에 아시아를 다녀온 적이 있냐”는 의사 질문에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한 게 1년 전”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의사는 웃으며 “요즘 코리아19 때문에 문제이지 않냐”고 말했다. 코로나가 아시아에서 시작된 유행병이라는 속뜻이 담긴 교묘하고도 불쾌한 농담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유럽에도 코로나19가 빠르게 번졌다. 유럽연합(EU)이라는 범국가적 조직의 탄생을 가능케 했던 ‘육로로 연결된 국가들’이라는 유럽의 특징은 전염병의 확산의 주범으로 전락했다.

오스트리아에서도 2월 24일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했다는 기사가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했다. 빈 같은 대도시는 물론 중소도시 곳곳에서도 확진자가 발생했다. 결국 오스트리아 정부는 3월 13일 오전 9시, 휴교와 휴업령을 골자로 한 코로나 방지 긴급조치를 발표했다.

오스트리아에 코로나19가 전염되기 시작한 뒤, 오스트리아 정부는 통행제한 조치를 실시했다. 수도 빈의 거리는 순식간에 텅 비어버렸다. 

오스트리아의 긴급조치 내용은 아래와 같다.


-5월 중순까지 유치원과 학교 휴교.

-4월 30일까지 생활 유지 시설인 병원(동물병원 포함) 슈퍼, 우체국, 약국을 제외한 모든 상점 휴업.

-피할 수 없는 직장 업무로 인한 이동, 남을 돕기 위한 행동, 식료품 구매 외 통행제한.

-한 집에 사는 거주인 외 타인과 동행 불가.

-5인 이상 집회 금지.

-어린이 놀이터 입장 금지.

예고 없이 발표된 강도 높은 조치에 빈 시민 모두 패닉에 빠졌다. 발표가 있던 13일, 슈퍼마켓에서는 물건 사재기로 휴지와 파스타가 동나고 계란 한 줄 때문에 싸우기까지 했다.

반려인이 동물병원을 가려면 ‘예약 전쟁’을 치러야 했다. 긴급조치 발표 직후, 수지가 갑자기 계단을 오르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 동물병원은 병원과 마찬가지로 생활기반시설로 분류됐지만, 개인병원 영업 여부는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했다. 우리 집 근처 동물병원 4곳 중 3곳은 휴업령 기간 동안 문을 닫았고, 남은 한 곳도 방문객들 간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예약을 받아서 날짜를 잡기 어려웠다. 우여곡절 끝에 병원을 찾아가서 수의사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병원을 다녀온 지 이틀 만에 수지는 건강을 되찾고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하필 긴급조치 발표 직후, 수지가 몸을 잘 가누지 못해 동물병원을 찾아야 했다. 통행제한 조치 이후 문을 연 동물병원이 급감했고, 그나마 예약을 받아줘도 다른 반려인과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순차적으로 예약을 받았다.

학교 휴업, 자영업자 강제 휴업, 직장인 재택근무 등 코로나19는 사람들 일상을 바꿔 놓았다. 통행제한 조치 후 경찰들 순찰도 많아졌다. 위반이 적발되면 현장에서 범칙금이 부과된다. 문을 닫은 상점, 텅 빈 시내는 좀비 영화에서 보던 ‘정지된 사회’ 같았다.

반면 집 안으로 들어가 보면 조금 분위기는 달라진다. 반강제로 함께하는 집에서의 긴 생활은 생활인 뿐 아니라 반려견도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다. 나라 안팎은 코로나19로 전시상황에 가까울 정도로 긴박했지만, 집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은 이보다 평화로울 수 없었다. 4월에 들어서 봄은 꽃바람과 함께 거실 깊숙이 머리를 들이고, 가로수에는 막 돋아난 새순이 흔들린다. 길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란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와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반려인 뿐이다.

코로나19 이후 오스트리아의 반려견 놀이터 '훈데존'도 적막하다. 꼭 필요한 산책을 해야 할때도 반려인들은 다른 반려견을 피해 길을 걷곤 한다.

통행제한 조치에서 반려견에 대한 부분이 따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반려견의 산책은 통행제한에서 예외로 취급되고 있다. 자가격리란 상황을 이해하고 말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만 통할 뿐, 반려견에게까지 적용되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반려견의 산책에도 변화가 생겼다. 사람들은 예전처럼 반려견들을 만나게 하지 않고, 앞에서 다른 반려견이 보이면 일부러 길을 피해 가곤 했다. 산책 시간도 달라졌다. 출근 전인 이른 아침이나 퇴근 후 저녁시간이 반려견 산책의 피크타임이었지만, 지금은 하루에도 대중없이 산책을 나선 반려견을 볼 수 있다. 봄이 만연한 요즘, 새로운 냄새를 맡느라 분주한 반려견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보곤 한다.

생활인들에게는 코로나19로 인한 '재택 생활'이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엄빠'와의 시간이 늘어난 반려동물과 아기에게는 '특별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오랫동안 집에 갇혀 있는 게 무척 갑갑하게 느껴지지만, 반려견과 아기에게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아침이면 출근해서 저녁에나 들어오던 아빠가 하루 종일 집에 있고, 엄마 혼자 집을 지키는 일도 없다. 엄마와 아빠는 번갈아 가며 산책을 시켜주고, 사람이 없어 깨끗하고 한적한 거리는 다니기 더욱 좋아졌다. 나에게는 감금 같은 지금의 시간이 수지 입장에선 ‘특별 보상기간’인 셈이다.

긴급조치 이후, 3월 말까지 코로나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불안하고 살벌한 분위기가 느껴졌지만, 4월에 접어든 지금은 다행히도 안정기에 접어든 모습이다. 사람들도 상황에 적응한 듯 보이고 사재기 현상도 보이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종식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육체적 질병이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까지 해치는 일은 없기를 희망한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간사해서, 평소에는 주변에서 나오래도 마다하는 ‘집순이’였건만 집 밖을 나가지 못하게 되니 몸이 근질거린다. 시내에서 상점과 물건 구경도 하고 싶고, 카페에서 브런치도 먹고 싶고, 지하철을 타고 먼 곳까지 가보고 싶기도 하다. 지금 내가 이 마음이 수지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느끼던 기분이 아니었을까? 지하철역 입구만 보면 그렇게 들어가고 싶어 하던 수지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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