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람이:동물 그리고 사람이야기' 에 연재된 글입니다.
한국 소식을 접하던 중 반려인으로서 가장 관심이 간 이슈가 있었다. 바로 ‘수의사 처방 대상 동물의약품 확대’ 정책이다. 동물 약품을 파는 약사 단체와 동물 약품을 처방하는 수의사 단체간 대립이 첨예하다 들었다. 반려견 종합백신으로 많이 쓰이는 ‘DHPPi’가 이번 확대 계획안에 들어가며 반려인들까지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들어 더 관심이 갔다.
약사 vs 수의사 이전투구 벗어난 '동물 의료비' 해결책은 없나
[BY 동그람이] ‘약국에서 구입한 약으로 반려동물에게 자가진료를 하다가 건강 문제가 생긴 반려동물이 ...
post.naver.com
한국 수의계 입장은 “약품의 성분 만큼이나 주사 혹은 경구용 등의 투여 방식도 ‘수의사 의무 처방’을 규정하는 데 큰 기준이 되는 방향으로 제도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에서는 수의사 처방전과는 상관 없이 주사제를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다. 한 예로 살인 진드기 ‘젝켄’(Zecken) 백신은 주사로 투여되지만, 처방 없이 약국에서 약품만 구입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반대로 투약 방식이 주사가 아닌 데도 반드시 의사 처방이 필요한 약품도 있다. 항생제 성분 약품이 대표적이다. 다만 주사제를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다고 해서 반려인이 직접 반려동물에게 약품을 주사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스트리아 수의사 법령(Tierärztegesetz) 12조에 따르면 아래 의료 행위는 수의사만이 할 수 있다.
1. 환자(동물)의 검사와 치료
2. 질병에 대한 의학적 예방조치
3. 수술
4. 예방접종, 주사, 링거, 채혈
5. 의약품 처방(처방전이 필요한 약품에 한한)
6. 부검
7. 수의학적 증명서 발급
8. 인공수정
제4항에서 알 수 있듯 예방접종 그리고 주사를 놓는 행위는 반드시 수의사를 통해야 한다. 즉 판매 유무와 관계없이 주사 놓는 행위 자체가 금지다. ‘수의사가 행위를 위임하는 경우 법률에 접촉하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이 달려는 있다. 다만 예외 조항에 예시조차 명시돼 있지 않아 어떤 경우 법을 위반했는지 해석이 분분하기도 하다.
오스트리아 반려인들 대부분은 직접 주사를 놓는 행위를 우려한다. 약품 구매나 예외적인 자가 주사 치료가 합법임에도, 직접 주사를 놓는다는 반려인은 만날 수 없었다. 반려인 대부분이 흠칫 놀라며 위험성을 강조하거나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도 합법적으로 약국에서 반려동물용 주사액을 살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 구매로까지 잘 이뤄지지는 않는다. 약국에서는 1차적으로 주사액이 왜 필요하냐고 묻거나, 동물병원을 가라는 조언을 해준다. 한국의 논쟁에서 저렴한 투약 비용을 내세우며 수의사 처방 대상 동물의약품을 확대해서는 안 된다는 ’약사와 일부 반려인과의 주장과는 대조적이다. 오스트리아는 약국에서 인체 예방접종용 살인진드기 약품은 쉽게 살 수 있어도, 동물 예방접종용 살인진드기 약품은 쉽게 살 수 없는 것이다. 참고로 약국에서 구매한 인체용 예방접종 약품은 예방접종 시설(Imfpungstelle)에서 접종 받을 수 있다.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 약품을 구입해 주사까지 맞는 일체형 의료서비스보다 비용이 저렴해 이용한다. 동물 치료와 관련해 예방접종 시설은 없다.
구매 자체가 어려움에도 오스트리아 역시 직접 주사를 놓는 반려인들도 분명 있는 듯했다. 약국도 우선 구입을 만류하지만 재차 구매의사를 피력하면 막을 방법은 없다. 오스트리아 인터넷 반려동물 포럼에도 직접 주사 놓는 방법, 그에 따른 부작용들을 묻는 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유는 대부분 비용 문제인 듯했다. 오스트리아도 반려동물 건강보험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 병원 비용 문제로 치료를 잘 받지 못하는 반려견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에서 반려인 스스로 반려견에게 자가 접종을 실시하면 부작용만큼이나 큰 문제점이 있다. 직접 접종을 하면 예방접종란에 수의사 서명이 누락된다는 점이다. 유럽의 반려동물 접종 수첩은 반려동물 여권과 함께 쓰인다. 이 접종 기록은 해외 출입국 시 사용된다. 백신 용액의 고유번호 스티커 외에, 백신을 접종한 의사 서명이 있어야만 유효한 기록으로 인정받는다.
접종에 있어 수의사 위임을 받을 수 있는 '예외 조항'은 어떨 때 쓰일까? 의사가 암에 걸린 자신의 반려견에게 직접 주사를 놓아주라고 했다며 자신이 잘 해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반려인의 사연을 통해 조금 짐작할 수 있었다. 아픈 반려견을 데리고 매일같이 병원을 찾는 것은 반려인에게도, 반려견에게도 힘들 것이다. 병이 얼마나 진행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입원 치료보다 남은 시간을 반려인과 보내게 해주고 싶은 수의사 마음이 헤아려졌다. 이런 사례야말로, 까다로운 오스트리아의 수의사 법령에서 예외 조항을 둔 취지가 아닐까.
만약 내 반려견 수지가 위와 같은 사례에 처하면 어떨까. 나 또한 주사 놓는 법을 배우고, 수의사 동의하에 수지에게 직접 주사를 해주고 싶다. 지금도 수지는 동물병원 5m 근처에서는 잘 걷지도 못할 만큼 병원을 무서워한다. 1년에 한두 번 건강검진 차원에서 가는 병원이 아니라, 질병 치료를 위해 매주 주사를 맞아야 하는 아픈 몸이 됐을 때 그렇게 자주 병원을 오가게 하고 싶지 않다.
물론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 게 가장 좋고,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전문가의 처치를 받는 게 옳다고 여기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번 논란이 위법 여부만 따지기보다 약품을 어떻게 사용하는 게 반려동물의 건강에 더 도움이 되는지를 우선 생각했으면 좋겠다. 자가 접종 자체를 완전히 막고 있지는 않지만 ‘주사는 수의사에게 받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오스트리아 사회 분위기가 한국에 시사하는 점이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