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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lee Feb 03. 2022

물놀이도 못하는데 아이스크림 한 입 쯤은?

'동그람이:동물 그리고 사람이야기' 에 연재된 글입니다.

여름이면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위를 피할 방법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우리 집은 새벽에 모든 창문을 열어 시원한 새벽 공기를 받아들이고, 해가 뜨기 전에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쳐 더운 열기를 차단한다. 어떤 집은 햇빛을 차단하려고 아예 창에 철제 셔터를 설치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극단적인 더위 대처법을 보면 ‘에어컨을 켜면 한 번에 해결될 텐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다수 오스트리아 가정집에선 에어컨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곳 사람들은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절약해서 그런 걸까? 오스트리아에서 직접 살아보니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주거 환경이었다. 빈 시내 대부분은 알트바우(Altbau)라 불리는 오래된 건물들이 차지하고 있다. 알트바우는 1900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들이라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하기 어렵다. 게다가 빈 시에서는 도시 미관과 안전을 이유로 실외기 설치를 허가하지 않는다.

오스트리아 주거 환경의 대부분은 알트바우(Altbau)라는 건축물로 구성돼 있다.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하기 어려운 구조이고, 지자체에서도 실외기 설치를 도시미관과 안전을 이유로 허가하지 않는다. 

사람은 최대한 얇은 옷을 입고, 선풍기 바람을 쐬면 잠시나마 더위를 잊을 수 있다. 하지만 털옷을 벗지 못한 채 가쁜 숨을 내쉬는 수지를 보면 여름은 반려견이 가장 견디기 힘든 계절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에어컨이 없는 오스트리아의 피서법은 수영장이나 물가에 뛰어드는 것이겠지만, 코로나19는 그 같은 여름 풍경마저도 바꿔버렸다. 여름이면 사람과 반려견으로 가득 차던 도나우 강변도 올해는 텅 비었다.

2018년 도나우 강변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 올해는 이같은 '물놀이'는 꿈도 꾸지 못하게 됐다.

2018년 도나우 강변에서 수지와 함께 물놀이를 즐기던 모습. 코로나19 여파로 올해는 도나우 강변에서 물놀이는 할 수 없게 됐다.

물놀이를 못 가는 대신 집을 시원하게 유지하려 나름 애쓰지만 더위가 심해지는 한여름이면 무용지물이다. 수지는 그나마 냉기를 느낄 만한 장소를 찾아 현관으로, 부엌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몸을 식힌다. 그런데 여름만 되면 잘 움직이지 않고 산책마저 피하는 수지를 움직이는 마법의 단어가 있다. 바로 아이스크림이다.

오스트리아의 아이스크림 가게들은 여름에만 문을 연다. 열기가 고개를 드는 5월에서 찬바람이 살짝 부는 9월까지가 아이스크림 가게들의 영업 기간이다. 한철 장사이기에, 영업을 시작할 때부터 사람들은 아파트 청약 줄 서듯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장사진을 친다. 아이스크림을 밥보다 좋아하는 나도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않는 수지 아빠를 끌고 아이스크림 마실을 나선다. 그리고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수지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곤 한다.

빈 시내에서 아이스크림을 구매한 뒤 수지와 나눠먹고 있다. 비록 반려견에게 사람 아이스크림이 좋지는 않다지만, 주치의 선생님에게 '소량은 괜찮다'는 진단을 받고 주고 있다.

‘너 한입, 나 한입’ 수지와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갈린다.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도 있는 한편 미간에 주름이 갈 정도로 인상을 쓰는 사람도 있다. 후자의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 표정에서 '반려견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이다니, 정말 상식 없는 반려인이군’이라는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나도 동의한다.

아이스크림이 반려견에게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서 수지의 주치의 선생님께도 물어봤다. 그는 반려견에게 치명적인 초콜릿 맛만 아니라면 소량은 괜찮다고 설명했다. 다만 치아 관리를 위해 양치를 꾸준히 해 달라는 조언을 덧붙였다. 물론 반려견에게 사람 아이스크림을 주는 것에 대한 오스트리아 전문가들의 공식적인 의견은 부정적이다. 당분, 합성첨가물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반려견은 유제품을 소화하는 효소가 부족해 유당불내증을 보일 가능성이 높아서다. 하지만 평소에 유제품으로 배탈, 설사 등 문제가 없었던 반려견이라면 적은 양을 주는 정도는 괜찮다는 예외적인 설명도 있다.

오스트리아 반려인 커뮤니티에서는 여름이면 ‘반려견에게 아이스크림을 줘도 되느냐’ 또는 ‘강아지에게 아이스크림을 줬는데 괜찮으냐’는 질문이 많이 올라온다. 분명 반려견에게 아이스크림은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이지만 이를 감수하고서라도 오스트리아 반려인들은 반려견에게 종종 아이스크림을 주거나, 아니면 매우 아이스크림을 주고 싶어 하는 듯하다.


 오스트리아 반려동물 매체 플래티넘(Platinum) 에서 소개한 수제 아이스크림 레시피.(왼쪽) 오스트리아의 한 블로그에서 소개한 '소시지 맛 아이스크림'

반려인들의 수요를 반영한 건지 오스트리아의 반려견 관련 매체들도 여름이면 반려견용 수제 아이스크림 만드는 방법을 특집으로 소개하곤 한다. 보다 간편한 방법을 원하는 반려인들은 반려견 전용 아이스크림을 구입할 수도 있다. 반려견 용품점이나 반려견 아이스크림 판매 사이트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한 통에 약 2.5~4유로(약 3,500원~ 5,500원) 수준이다. 실제로 반려견 아이스크림은 유럽 곳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메뉴다. 그러나 내 주변 반려인 사이에서는 반려견 아이스크림을 굳이 구매하는 사례를 마주한 적은 없다.

조금씩 주는 아이스크림도 이렇게 신나게 받아먹는 수지를 보면 '불량식품'을 주는 죄책감이 들면서도 정석대로만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된다.

주변 반려인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의외로 이곳의 반려인들은 비반려인보다 사람 아이스크림을 급여하는 일에 관대했다. 왜 그런지 잠시 생각해봤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였다. 반려견을 키우는 건 육아와 일부 통하는 점이 있다. 훈육, 식사예절, 수면패턴 등 여러 부분에서 이상적인 육아법은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정석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반려견에게 아이스크림이 좋지 않다”고 내게 훈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지 않아요, 우리 애는 괜찮아요”라고 반박할 순 없다. 그러나 아이스크림이 사람 몸에도 좋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그 맛을 잊지 못해 계속 먹을 뿐이다. 수지에게도 그런 ‘불량식품’ 하나쯤은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조절만 잘 하면 잠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불량식품 말이다. 코로나19로 물놀이를 잃어버린 수지에게 아이스크림이라는 ‘좋은 기억’까지 빼앗으며 정석을 고집할 자신이 내게는 없다. 어쩌면 오스트리아의 이웃 반려인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반려견에게 아이스크림을 조금씩 나눠주는 것은 아닐까.

글·사진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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