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말은...... 기획서에 돈이 안 보여요.
정확히 2년 전에 다른 스타트업을 다닌 적이 있다. 상사는 입사 첫날부터 내 마케팅 기획서에 돈이 안 보인다고 지적하셨다. 수익모델이 불명확하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스타트업은 어리바리한 중고 신입사원을 위한 곳이 아님을 그날 깨달았고, 회사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판단해 한 달만에 퇴사를 결심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 직장에 처음 출근해서 업무 인계하는 동료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기존 마케팅 기획서에 돈이 안 보인다고 말했다.
위험한 발언일 수 있지만, 나는 종전 직장들의 양호한 처우를 뒤로하고 호기롭게 이직했기 때문에 물러날 곳이 없었다. 그 대신 지금 있는 곳을 무조건 꽃밭으로 만들겠다던 일개미의 선택이 마케팅 체계 전혀 없는 '우수 벤처기업'이었다니 울고 싶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직원 중에 실무자가 없는 난관에 봉착한 것은 물론이고, 나 자신 포지셔닝도 안 된 상황에서 브랜드 포지셔닝을 기획하라는 과제까지 주어졌다. 출근 첫날이었다.
사람이 벼랑 끝으로 몰리면 없던 능력도 만들어내나 보다. 다행히 큰 기업에서 신입사원 시기를 탄탄히 보낸 이력과 2년 전 스타트업의 기억이 떠올라 이번 혼란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놀랍게 침착했다. 브랜드 가치를 지키면서 현실 가능한 수익모델을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잘 알아보고 입사했다 해도 상대는 스타트업이다. 무엇을 상상하든 훨씬 더한 것과 마주할 각오로 하나씩 만들어가야 하는데, 그 신선한 중압감이 왜 내 몫으로 자리하는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용어 설명]
중고 신입: 근무경력을 1~2년 보유한 신입사원. 보통 소기업에서 경력을 쌓아 중기업 또는 대기업으로 이직한다. -다디-
수익모델 revenue model: 기업이 수익을 내는 구조와 수단. 비즈니스 모델이라고도 한다. -다디-
포지셔닝 positioning: 마케팅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기업ㆍ제품ㆍ상표 등의 마케팅 대상이 잠재 고객들에게 긍정적으로 인식되도록 하는 일. 출처-네이버 국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