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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이론 Nov 29. 2021

자살을 선택한 이유

이 글은 경험적 근거에 의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병원 내 환자 정보를 누설하는 행위는 불법이므로 브런치 내의 모든 글은 일부 각색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외상센터에 오는 환자들은 교통사고, 낙상, 화상, 폭행 등으로 온다. 그중 자살로 인해 오는 환자는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하루에 한 명 정도는 매일 응급실로 실려오고 한 달에 한 두 명 정도는 매우 위중한 상태로 입원한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불을 지르거나, 칼로 자해를 하거나, 약을 먹는 등 수많은 사례들을 피부로 직접 느끼며 환자를 케어 해오고 있다. 다행히 경과가 좋아져서 퇴원하는 환자도 많이 있지만, 원해서든 원치 않아서든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역시나 계속 있다.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병원에서 근무하기 전부터 자살이라는 키워드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회적 이슈였고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었고, 내 시선 내에서 벌어진 사건이었기도 했다.


이전에 자살예방 공모전을 참가하며 그들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해보았다. 그때 출품했던 작품에서는 온갖 부정적인 단어가 '나'의 목을 졸라 오는 모습을 표현했었다. 그게 내가 이해한 정도였다.

자살예방공모전 참가 작품 캡쳐

군대에 있을 때에, 분대장을 맡고 있을 때 일이었다. 우리 분대 병사 휴가 중 스포츠 불법 도박으로 큰돈을 날려 그 충격으로 대교에서 뛰어내린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도 건강에 큰 지장이 없었지만, 당사자도 부대원들도 충격이 꽤 오래갔다.

유일하게 걸어서 횡단해본 마포대교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이해한 자살이라는 키워드는 [가정폭력, 따돌림, 무관심, 도박으로 인한 탕진] 이런 단어들의 묶음으로 생각해왔다.


그렇다면 현실은? 훨씬 복잡하고 세세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끝없는 가난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이 있었다. 집에 불을 지르고 생을 마감하려고 하다가, 다행인지 빠른 구조가 되었다. 전신화상은 기본이고 호흡기 내부도 화상을 입어 회복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 환자였다. 환자가 잘 버텨준 덕에 인공호흡기 치료까지 끝내고 의식도 되찾았다. 그리고 우리에게 한마디 던졌다.


"왜 살려서 또 지옥 같은 삶을 살게 만드나요. 병원비는 얼마고... 앞으로 일도 못 할 텐데. 나 여기서 퇴원하면 또 죽을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정신건강의학과에 협진을 요청하는 것이다. 의료진들도 말 한마디 한마디 주의하며 대화해야 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심어주어야 한다. 그러면 환자가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예상은 100%를 뜻하지 않는다.


보호자가 내원해서 환자를 만났을 때의 분위기, 표정, 짧은 대화. 사실 친가족 관계가 아니어서 서류 처리 과정에서 마주한 문제. 알 수 없는 출처에서 환자를 찾는 전화.(발신자가 가족이어도 환자의 동의 없이는 병원 입원 여부를 알려서는 안 된다)

환자의 주변에서는 수많은 변수들이 끊임없이 병원 내부로 침투했고, 회복에 집중해야 하는 환자도 점점 병원 밖 상황과 다시 얽히게 되었다. 그럴수록 환자의 정신건강이 좋지 않아 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우리의 의지로 차단해낼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차단해야 하는 입장이 아니었다.


어느 날부터 식사량도 줄고, 불안했는지 소독도 뜯어내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화상은 충분한 영양공급과 꾸준한 감염관리가 중요한데 이런 증상은 환자에게 가장 치명적이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면담을 오래 해봐도 큰 차이는 없었다. 며칠이 지나서는 영양수액을 달게 되고, 그것도 모자라 경관식이(코에서 위까지 관을 넣어 영양을 공급하는 것)까지 고려했다. 자가 의식을 찾으면서 삶의 의욕을 다시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한 번에 나빠진 컨디션은 감염을 막지 못했고 결국은 돌아가셨다. 한동안 의료진들도 우울감이 역전이 되기도 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자살은 어떠한 단어로 묶어내는 단순한 단어가 아님을 느꼈다. 그 환자에게서 일어나는 이벤트 하나하나가 평소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대변했고, 지독한 가난이라는 말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어디 있냐는 말을 정확히 꿰뚫는 스토리였다.


만약 그 환자가 불을 지르는 선택을 하기 전에 내가 그 옆에 있었다면, 과연 "죽지 마세요.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라고 얘기해야 되는 것일까.

"내 마음대로 되는 것 없는 세상에서 내가 겨우 선택하는 내 목숨인데 이것마저 하지 못하게 하는가. 살아오면서 생각이란 것을 단 1초도 끊어본 적이 없다. 생각의 고리를 끊으려고 술을 먹는 거다. 다시 생각한다는 것은 너무 힘들고 지독한 행위다. 아무 소리 없는 방에서 혼자 생각하며 사는 생활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는 있나. 다른 방법이 있는 건 나도 안다. 그게 과연 될 거라고 생각하는가. 만약 된다고 해도 또 다른 무언가가 다시 내 발을 걸어 넘어뜨릴 것이다. 그렇게 50년을 살아왔다."

해답을 찾고자 하는 글은 아니다. 앞으로도 계속 마주하게 될, 자살로 온 환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나의 일기 같은 것이다. 여러 케이스들을 통해 얻은 느낌을 기록하다 보면 조금 더 그들의 시선으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다.



커버 사진은 내가 가장 우울했던 기간에 찍었던 사진이다. 집에는 날파리가 끊이질 않았지만 청소하고 싶은 욕구 조차 없었다. 우울증 약으로는 그다지 나아지는 것 같지도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효리네민박을 네 번, 다섯 번 다시 보고 지냈었다. 어느 날인가 쓰레기를 더 이상 모을 공간이 없어 종량제 봉투를 들었더니 구더기가 수백 마리가 살고 있었다. 구더기 수백 마리는 내 우울감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그날 대청소를 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 목적 없이 걷다 보니 서울대입구역에 와있더라. 그때 어스름한 노을과 냄새가 너무 좋아서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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