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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해 Apr 29. 2020

DAY+10 / FOODS

 사람이 고픈 마음에 며칠 전에 소셜 앱을 깔았었다. 앱을 통해 몇 명인가와 연락이 오갔다. 위치를 기반으로 같은 앱을 사용하는 사용자들이 보이고, 서로의 정보를 보고 대화를 하고 지역을 소개받는 위치기반 소셜 앱이다. 여행자와 현지인들이 숙박을 제공하거나 함께 흥미 있는 액티비티를 같이 하게끔 만든 앱이다. (연락이 남자들에게만 오는 걸 보면 그 모든 목적을 넘어선 사람들의 목적이 있는 것 같긴 하다.)

 겁이 많은 사람이다 보니 처음 연락한 사람과는 금방 연락이 끊어졌다. 저녁에 자신의 집으로 영화 보러 오라는 그의 제안을 수용할 만큼 난 열려있지 못했다. 두 번째 연락이 닿은 사람은 오스트레일리아에 5년째 거주 중인 인도인 싯다르타, 시드였다. 대화를 잘 이어가는 사람이어서 이야기가 잘 통했고, 만날 약속도 잡아 놓았다. 막상 약속일이 되자 어제 만난 무례한 사람으로 인한 두려움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취소할 마음에 휴대폰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여기서 사람 만나는 걸 멈춰버린다면, 내게 오스트레일리안은 엊그제 만난 무례한 사람이 전부가 되어버릴 것 같아 나가 보기로 했다.

Sydney Tour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만난 시드는 많은 사람을 만나 본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로 굉장히 편하게 대화를 이끄는 사람이었다. 오페라 하우스 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페라 하우스부터 하버, 록스, 바랑가루를 산책했다. 나란히 걸으며 동네 소개를 들었다. 시드의 이야기는 상당히 유용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생일에 나이를 불문하고 대부분의 식당에서 무료로 먹을 수 있단다. 비싼 동물원도 단 1달러에 들어갈 수 있고 그 외에 관광지에서도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며칠 전 생일이 지나 안타깝게 되었다.)

 또 일요일이 시드니를 여행하기에 제일 좋은 날이라고도 했는데, 몇 번을 환승해도 교통비가 3달러이기 때문에 멀리 가거나 비싼 대중교통인 페리를 타기에 적합한 날이라고 했다. 이런 시드니 팁뿐 아니라 지역의 이야기도 많이 해줬다. 가령 지어지고 있는 건물에 대한 이야기. 과거 정착민들이 토착민(애버리저니)을 학살한 것에 대한 역사를 기억한 공원에 대해서(최근에 역사를 덮는 듯한 느낌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그리고 애버리저니 이야기에서 연결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에 대해서. 책에서 얼핏 본 기억이 있는 이곳의 이야기들이었지만 혼자서는 결코 와 닿지 않았을 이야기를 바람 좋은 오후에 시드니를 산책하며 들었다.

Warming Food

 시드와 인도음식을 먹으러 갔는데, 그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팔락파니르(시금치 치즈 커리)라고 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오스트레일리아의 음식이 잘 맞냐는 그의 말에 내가 뭘 먹어도 차갑게 느껴진다고 대답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매끼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이곳 오스트레일리아에서 2주 가까이 보내며 다양한 것들을 배부르게 먹었지만 먹고 난 후 든든한 포만감이 없었고 헛헛했다. 또 아무리 뜨거운 음식을 먹어도 먹고 난 후에도 속이 차게 느껴졌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내가 말하는 걸 이해 못하던 시드는 잠시 생각하다가 내가 무얼 말하는지 알겠다며 무릎을 쳤다. 대부분의 서양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자신은 인도 사람이기 때문에 이해한다며 여기 음식들에는 속을 덥혀주는 재료가 들어가지 않아 속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지 못한다고 이야기했다.

 시드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내가 느꼈던 헛헛함과 차가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한의학에서는 음식에 차갑거나 따뜻한 성질이 있다고 했다. 속이 찬 편인 나는 한국에서도 따뜻한 성질의 음식을 주로 먹었고, 찬 성질의 음식을 먹으면 더부룩한 느낌과 함께 불편함을 많이 느꼈다. 그러니 내가 여기 와서 먹은 샌드위치나 빵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던 거다. 그리고 한식에는 기본적으로 모든 요리에 마늘이나 고춧가루 같은 열이 나는 재료가 들어가 먹고 나면 자연스레 속이 따뜻해진다. 이곳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은 재료다 보니 음식을 먹고 난 뒤 따듯함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괜히 음식과 한의학의 신비에 대해 생각하며 시드가 추천하는 마야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에 갔다. 최애인 팔락 파니르는 없었지만, 대신 시드가 추천한 커리를 세 개나 시켜 버터 난을 부지런히 찍어 먹었다. 열흘 만에 속과 마음이 데워지는 식사를 했다. /29FEB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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