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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해 May 01. 2020

DAY+13 / COMPLAINTS

 공사로 인해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바로 나와야 했다. 머무는 내내 공사 소리에 깼는데 집까지 비워줘야 하다니. 마음이 삐뚤빼뚤 솟아났지만, 잭과 리아도 공사를 선택한 게 아니고, 어쩔 수 없으니 이해하기로 했다. 사실 화낸다고 달라질 것도 아니고 영어로 화낼 자신도 없고. 부엌에서 아침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준비하며 밖을 내다보니 날이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어제는 긴 레깅스에 반팔로 하루 종일 보냈는데 이따금 바람이 불면 추웠다. 긴소매의 스웻 셔츠를 꺼내 입고 반바지에 발을 꿰었다. 기온이 20도라는데 위아래 다 긴 옷이면 너무 계절감을 파괴하는 것 같았다. 바람이 꽤 불어 나뭇가지가 휘날리는데도,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마냥 한여름 같았다. 건물 밖으로 한 걸음 내딛자 바람이 많이 불어 생각보다 추웠다. 아니 이 날씨에 민소매를 입고 다닐 수 있단 말이야? 다시 갈아입으러 들어갈까 고민했지만, 귀찮은 마음에 그냥 걸었다.

일상과 여유의 상관 관계

 냉장고에서 집어 들고 나온 그린 스미스 사과를 베어 물으며 어디 갈까 고민했다. 바닷가 벤치에 앉아 만들어 나온 샌드위치를 먹었다. 멍 때리며 우적우적 샌드위치를 먹으며 주변의 공기를 느꼈다. 요 며칠에 비해 해변가에 사람이 없었다. 연휴가 다 끝난 모양으로 해변의 사람들이 썰물처럼 다 빠져나갔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달리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참 많이 달린다. 언제든 밖에 나가면 달리거나 개와 산책하거나 운동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런 일상의 여유가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을 넉넉하게 만드는 걸까. 아니면 이런 넉넉한 사람들이니까 일상의 여유를 찾으며 사는 걸까. 사과와 샌드위치를 모두 해치우고 난 뒤, 사람과 멍멍이를 더 구경하다가 추워져서 카페를 찾았다. 평소 지나치던 곳 중 소파와 쿠션이 잔뜩 있는 카페가 있었다. 오늘은 거기서 시간을 보내 야지.


 플랫 화이트를 한 잔 시키고 구석의 방켓 소파에 쿠션과 함께 자리 잡았다. 자리가 꺼끌 거려 손으로 쓸어보니 모래가 묻어 나왔다. 해변에서 놀던 사람들이 많이 오가서 그런지 바닥은 물론이고 소파와 테이블이 모래 투성이었다. 몇 번 의자를 털어냈지만 계속 모래가 나왔다. 대충 털고 앉아있다가 이름을 부르길래 가서 음료를 가져왔다. 인터넷을 연결해 아이패드로 어제 보다 만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유 없이 괜히 몸이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모래를 만진 기분 탓이려니 생각했다. 집중이 되지 않아 영화를 대충 멈추고 노트북을 켰다. 몇 글자 쓰는데 이것 도 집중이 영 잘 안된다.





첫번째 위기

 그러다가 발견하고야 만다. 내 옆을 지나가는 작은 벌레들. 밤의 해변가에서 기어 다니는 엄지 손가락만 한 바퀴벌레를 봤을 때도, 밤에 목이 말라 찾은 부엌에서 불을 켜자 멈춰버린 바퀴벌레를 만났을 때도, 지하철에서 손잡이를 타고 이리저리 탐험하는 바퀴벌레를 지켜봐야만 했을 때도 기겁을 했지만 비명을 꾸역꾸역 삼켰다. 근데 카페의 소파를 기어 다니는 더듬이가 있는 까만 벌레들은 도저히 참아낼 수가 없었다. 이런 건 정말 익숙하고 싶지가 않다. 질겁하고 노트북을 닫고 남은 커피를 원-샷 한 후 카페를 나왔다.

 바닷가를 마주하고 벤치 앉았다. 가부좌를 트고 하고 앉아서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여기 사람들은 정말 편하게 사는 것 같다. 한국이었다면 이미 이 기가 막힘을 사장님에게 컴플레인을 하고, 사장님은 사과를 하고, 세스코를 부르고, 세스코는 얼마짜리 스티커를 붙일지 물어본 다음 스티커를 붙이고 가겠지? 여기 사람들은 일하기 참 좋겠다. 세스코 따위는 없다. 모두 함께 공생하며 삶을 살아간다. 벌레가 나오면, 그냥 툭 털어낸다. 아무도 나처럼 기겁하고 어찌할 바 몰라 도망가지 않는다.


 난 정말 괜찮아질 수 있을까? 여기서 살아갈 수 있을까? 휴. 한숨을 푹푹 쉬는데 까만 대머리의 아이비스가 눈치를 보며 목을 슬쩍슬쩍 빼고 은근슬쩍 다가온다. 아냐, 나 먹을 거 없어. 오지 마. 제발. 너까지 그러지 마.

 ...익숙해져야 하는 거겠지? 그런 거겠지? /03MA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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