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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해 May 08. 2020

DAY+20 / BANKING

 지난주에 마지막 월급과 함께 퇴직금이 들어왔다. 일정 금액 이상의 퇴직금은 무조건 퇴직연금형 계좌에서 받아야 한다고 해서 회사를 그만둘 때 만든 IRP계좌를 제출했었다. 출금해서 다른 계좌에 보관해야겠다는 생각을 한지 일주일 만에 해지 방법을 알아봤다. 복잡했지만 대충 개인 투자금을 더하지 않은 순수 퇴직금은 인터넷뱅킹을 통해서도 해지가 가능하다고 했다. 컴퓨터를 켜서 해지를 시도하는데 보안을 위한 본인 인증 절차에서 막혔다.

DAMN

 인증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휴대폰 ARS 인증, 스마트 OTP 그리고 스마트 보안카드였다. 한국에서 스마트 OTP, 스마트 보안카드를 이용하지 않았던 데다 등록된 한국 휴대폰은 정지상태로 수신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스마트 OTP와 스마트 보안 카드를 발급받으려고 했는데, 영업점을 방문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앱을 통해 비 대면 거래로 발급 절차를 시도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이것들을 발급받기 위해서도 휴대폰 인증이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떴다. DAMN. 형편없이 느린 인터넷 시스템에 자꾸 이중 접속이라며 초기화되는 시스템과 함께 한 시간 넘게 씨름하다 보니 욕이 절로 나왔다.

 결국 신한은행 고객센터로 전화를 했다. 한참 걸려 연결된 상담원은 자기 분야가 아니라 담당부서로 연결해준다고 했다. 또 한참을 기다려 연결된 퇴직연금 담당 직원은 인증절차 없이는 전혀 불가능한 부분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전화를 받는 직원의 잘못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괜히 성질이 났다. 다른 방법을 물어보니 휴대폰으로 인증을 받을 수 없는 현 상황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한국에 은행에 방문해 직접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아니면 대리인에게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서 영업점을 방문하게 하는 것뿐이라 했다. 정 어려운 경우라면 동생에게 부탁했겠지만, 코로나 확진 환자가 7천 명이 넘어선 환난 속에서 재택근무 중인 동생을 밖으로 내놓고 싶지 않았다. 고객센터와 전화를 끊고 나서 잠시 고민하다가 정지된 휴대폰을 깨워 로밍을 이용해서라도 인증을 받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그게 될 진 모르겠지만.


결국 정지 해제

 너무도 다행히 KT의 해외 이용 전화번호를 찾는 것보다 간단하게 일은 처리됐다. 다시 휴대폰을 장기 정지하는 것도 로밍 센터 직원으로 수월하게 해결됐다. 비용이 조금 지출됐지만, 몇 번의 버튼으로 퇴직금 계좌 해지를 완료했다. 다시 연결한 김에 혹시나 몰라 스마트 보안 카드까지 발급받아 놓았다. 하루 종일 나를 괴롭게 했던 IRP계좌 깨기를 두 시간 만에 완료했다.

 구식 보안 카드로 십 년 넘게 살아온 동안 문제가 전혀 없었다. 한국에 있을 땐 느끼지 못했는데, 한국은 본인 명의의 휴대폰 번호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라였다. 한 발자국 나왔을 뿐인데 갑자기 답답해졌다. 앞으로 누구든 휴대폰을 정지하고 해외에 나가는 사람에게 모바일 OTP나 스마트 보안카드를 꼭 사전에 발급하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은 이미 한국에서도 다들 쓰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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