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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해 May 08. 2020

DAY + 22 / MR. ROACH

불면의 밤

 사안의 시작은 이랬다. 잠이 유독 오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오늘의 가장 큰 원인은 낮에 마신 커피와 잠에 빠지려는 즈음 날 깨운 관리인이 있겠다. 잠을 못 자는 게 또 오래간만이라 성질이 났다. 하지만 어차피 불면에 관한 다년간의 경험으로 잠에 대한 포기가 쉬웠다. 불면의 밤에 자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잠이 부족한 것보다 스트레스다. 누워서 넷플릭스를 뒤적이며 보다가 마침 코로나의 여파로 학교가 문을 닫아 시간적 여유가 있던 경이와 전화로 한참 수다를 떨었다.


200 데시벨의 비명

 새벽 네 시가 지나고, 이젠 슬슬 잠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불을 끄고 침대 위에 누웠다. 소리를 최소한으로 설정해 놓은 유튜브와 함께 슬슬 잠이 오려는 찰나였다. 눈이 살살 감겨오던 그때, 뭔가 이상하고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문득 눈을 들며 휴대폰 화면을 내려놓자 바로 눈 앞에 벽에 기대 놓인 베개 위에 그것이 보였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속에서는 끊임없이 내적 비명을 질렀다. 베개 위의 그것도 당황했는지 더듬이를 움직이며 멈춰 있었다. 순간 숨을 쉴 수 없었다. 시선을 떼지 않으며 급하게 불을 켰다. 그것은 계속 그 자리에서 어쩔 줄 모르는 듯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보다가 침대 헤드 위에 올려놓은 탁상 달력을 움켜쥐고 다가갔다. 내가 다가갈수록 그것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숨을 참은 채 그것이 있는 베개를 세게 내리쳤다. 시트 위로 몸을 웅크린 그것이 떨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멈췄던 숨을 쉬며 몸에 힘을 빼자 침대가 좀 움직였다. 내가 떠난 줄 알았는지 죽은 척했던 그것은 다시 베개로 기어오르려 했다. 기겁을 한 나는 200 데시벨이 넘는 내적 비명을 지르며 다시 한번 달력을 내리쳤다.


나한테 왜 이래요……

 결국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리면서 혼돈 속의 사투가 끝이 났다. 베개는 벽장 속으로 집어 (쳐) 넣었다.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심장이 덜커덩 거리는 소리와 급한 박동이 피부 밖으로 느껴졌다. 의자에 앉았다. 끔찍했다. 당장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끊고 싶었다.

 오스트레일리아행을 결정하며 이 나라의 벌레들에 대한 악명을 익히 들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이 바 선생과의 동거에 대해서는 체념하고 온 참이었다. 여러 사람이 살며 드나드는 집과 대자연. 층마다 있는 garbage chute를 비롯한 한국과는 다른 건물 구조와 위생관념. 어쩔 수 없이 한국에서 보다 벌레들을 많이 볼 수밖에 없을 테고 틀림없는 확률로 그것들과 동거를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 밤의 바닷가를 돌아다니는 엄지손가락 만한 것들도 보고 에어비엔비 주방에서도 손톱 만한 것들과 마주쳤다. 물론 싫었지만, 참을 만했다.


 근데, 침대 위는 아니잖아. 이건 좀 심하지. 아니지 이건.

 나한테 왜 이래요……. 있어도 없는 듯 그저 만나지만 않았으면 되는데. 

 왜 야밤에 제 침대를 침투하시는 거 에요. 침대는 진짜 아니잖아요.


Homesick

 마음을 가라 앉힐 시간이 필요했다. 도저히 침대에서 잠들 자신이 없었다. 온몸이 가려워졌다. 혐오하는 다리 많은 것을 본 뒤의 자연스러운 몸의 반응이겠지만. 늦고 예민한 밤의 감정이겠지만. 그냥 지금이. 이 모든 게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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