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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해 May 10. 2020

DAY + 23 / RELAX

 바선생이 다시 출몰할까 무서워 침대 끄트머리에서 쪽잠을 잤다. 퀸사이즈 베드가 있으면 뭘 하나. 마음 편히 잠들기가 어렵다. 당장 집에 돌아갈 비행기표를 결제하려는 마음에서 순응과 체념의 마음으로 바꾸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놀란 마음을 몇 번이고 쓸어주지만 아직은 방에 바람만 들어와도 흠칫한다.

 집을 벗어나야 했다. 기분 전환이 필요했다.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한 잔 하며 이것저것 하다가, 기존에 돌아다니던 세 블록을 벗어난 곳을 돌아보기로 했다. 지도에서 가장 가까워 보이는 공원을 목적지로 행동반경 넓히기에 돌입. 당장 떠나지 않기 위해서는 동네에 정을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작정 걷다 보니 지도에서 봤던 한국 식당도 지나치고, 유럽 느낌이 물씬 나는 시드니 노트르담 대학 성당도 지나갔다.

 서서히 저무는 해를 따라 조금 걷다 보니 목적지인 프린스 알프레드 공원에 도착했다. 반대편 입구가 안 보일 정도로 큰 공원이었다. 너른 잔디밭과 가득 찬 테니스 코트, 농구 코트가 보이고 멍멍이와 산책하는 이웃들이 어둠이 내리려는 공원을 여유롭게 지나고 있었다. 커다란 나무를 둘러싼 벤치에 앉았다. 테니스 코트 너머로 물러나는 주황빛과 밀려오는 검고 푸른 하늘을 한참을 봤다. 파란 하늘이 새까맣게 가라앉을 때까지 멀리 하늘을 들여다봤다.

 혼자 하늘을 이렇게 멍하니 바라다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오스트레일리아에 오기 전에는 이렇게 하늘을 바라보고 앉아있던 적이 없었다. 또 맑고 푸른 하늘이 지평선이나 수평선까지 펼쳐지는 그런 풍경 안에 있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오로지 나를 위해 하늘을 보는 것은 본다이 비치에서가 처음이다. 여유롭게 시간을 즐긴 적은 여기, 오스트레일리아에 와서 겪은 것들이 모두 처음이다.

 한국에서도 물론 바쁘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맑고 너른 하늘을 만나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되는 일상의 무거움과 게으름에 침대 밖을 벗어나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한국에서는 일과 약속이 있을 때만 몸을 움직이려 하고, 없을 때조차 그것들로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다. 이곳에 와서 처음 휴식다운 휴식을 취하고 나서야 지난날의 내가 나 스스로를 얼마나 돌보지 않았는지 알았다. 그동안 나 스스로를 얼마만큼이나 내팽개치고 끌고 다녔는지를 깨달았다. 나를 돌보지 않는 삶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서른 해 만에 들었다. 하루하루 내가 누구인지, 무얼 원하는지 깨달아가고 있다. 여기에 오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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