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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해 May 10. 2020

DAY + 24 / PALAC PANEER

 지난번 하우스 파티 뒤에 시드와 계속 연락을 해왔다. 시드는 매일 다음 피아노 레슨은 언제 하냐며, 지난번에 먹지 못한 팔락 파니르를 만들어 먹자고 연락을 했다. 실은 그걸 핑계 삼아 나를 만나고 싶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저 내 착각일지도 모르고 이미 피아노를 가르쳐주겠다는 약속을 해 놓은 상태라 언제까지고 미지근하게 굴기도 불편했다. 그래서 토요일 오후 5시로 약속을 정하고 귀찮은 마음을 애써 접어 넣었다. 내게 시드니의 아름다움과 낯선 사람과의 우정을 느끼게 해 준 고마운 친구와 시간을 보내겠다고 결정했다.

 시드는 행동 스케줄을 타이트하게 짜는 경향이 있다는 걸 앞선 몇 번의 만남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약속시간을 딱 맞게 가지 않고 좀 여유 있게 갈 예정이기는 했는데, 세시 좀 넘어 연락이 와서 기존 약속 시간을 30분이나 1시간 미루자고 했다. 안 그래도 안 지 얼마 안 되는 남자 사람 친구 집에 혼자 가는 것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누르고 있었기에, 문득 가기 싫은 마음이 불쑥 튀어나왔다. 답장을 하지 않고 조금 더 생각해봤다. 생각이 메트로놈처럼 심장소리에 맞추어 이리저리 뛰었다. 몇 분의 고민 끝에 약속을 한 시간 늦추고 가기로 했다.

 변경된 약속 시간인 6시에 시드의 집 건물 앞에 도착했다. 도착했다는 문자에 시드가 건물 앞에 마중 나와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며 얘길 들어보니, 시드는 점심 약속을 마치고 집에 오니 곤해서 낮잠을 자려고 약속을 미뤘는데 결국 잠을 못 잤다고 했다. 하하.

 넋 놓고 흘러가는 대로 시간을 보내다가, 집에 갈 타이밍을 못 잡을 것 같았다. 안 그래도 경계 태세가 필요할 것 같은데, 어영부영 둘이 술을 마시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시드에게 있지도 않은 약속을 핑계를 대며 두 시간쯤 뒤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분명히 시간이 얼마 없다고 얘기했는데 시드는 그렇게 졸랐던 피아노 레슨보다 팔락 파니르를 만드는 거에 더 집중했다. 들어가는 모든 향신료를 설명해주고 맛보게 해 주었다. (향신료가 정말 많이 들어갔다.) 시드는 조리대 앞에서, 나는 키친 앞 바에 기대 서서 요리 과정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음속 한편으로 시간에 쫓겼지만, 시드의 팔락 파니르 요리교실은 재밌었다. 시드는 마주 서 있던 내게 맥주를 한 병 건네며 계속 즐거운 분위기로 이끌었다. 친구에게 음식을 맛 보여주고 설명하며 만들어 주는 게 생각보다 재밌어서 다음에 한국에 가면 해봐야겠다고도 생각했다.

 본의 아닌 (?) 요리 클래스를 수강하니 음식을 준비해 먹는데만 2시간을 다 사용했다. 곧 가야 한다는 내 말에 급하게 피아노 앞에 앉았다. 피아노는 대충 치는 둥 마는 둥 하며 내 칭찬을 늘어놓았다. 역시 이 사람의 진정한 관심은 피아노가 아님에 확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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