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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해 May 14. 2020

DAY + 29 / PANIC-BUYING

  며칠이나 집에서 냉장고를 파먹으며 살았더니 장 보러 갈 때가 되었다. 느리 적 거리다가 해가 질 무렵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고장으로 몇 주 째 수리 중이던 엘리베이터가 고쳐져 있었다. 집-콕 생활한 약 4일 간 세상이 변해있었다. 하하.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면 있는 울월스 메트로 헤이마켓점을 향해 씩씩하게 걸어갔다. 퇴근하는 사람들이 보여 하루 종일 게을렀던 게 새삼 민망했다. 길거리는 차이나타운 인근답게 아시안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고기가 먹고 싶어서 마트에 들어가자마자 고기 매대로 바로 향했다. 그런데 온 쇼케이스가 텅텅 비어 있었다. 붉은 고기는 물론 닭고기도, 시즈닝 된 상품들도 모두 없었다. 늦은 시간까지도 자리를 지키고 남아있던 소시지도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생선 쪽도 마찬가지였다. 레토르트 식품들만 몇 개 남아있고, 평소에 보던 상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파스타 소스와 파스타 면, 오일류도 마찬가지였다. 휴지 라인은 텅텅 빈 지 오래되었고, 그나마 근근하던 파스타 쪽 매대도 텅텅 비었다. 도저히 살 만한 게 없었다.

CRAZY-BUYING

 결국 브리오슈 한 봉지와 아이스크림 한 통, 감자칩을 하나 사 들고 돌아왔다. 시드니 헤럴드 신문의 앱을 켜보니 코로나 바이러스 19에 대한 실시간 뉴스와 함께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 휴지를 사 모으던 것처럼 고기와 파스타 등 식품을 사 모은다는 뉴스가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소 구입하던 것의 3-5배를 구매하고 있어 고기의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앞으로 고기와 파스타 등 몇 가지 품목에 대해서는 1인당 수량 제한을 할 예정이며, 패닉에 빠지지 말라는 뉴스 기사가 상단에 있었다. 이런 구매 변화를 CRAZY-BUYING이라고 표현하며, 급속도로 성장하는 푸드 딜리버리 업체에 관한 기사도 곁들였다.


공동체에 대한 믿음

 한국의 2월 중순에 감돌았던 불안한 분위기가 한 달 늦게 여기에 감돌고 있다. 상대적으로 한국은 마스크를 제외한 것들에 대한 사재기가 없었기에 이런 현상이 매우 낯설고 불편하다. 기사를 검색해 보니 이 CRAZY-BUYING은 미국이나 다른 대부분의 국가에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유튜브와 네이버 기사로 한국이 선진 시민문화와 국난극복에 앞서간다는 내용이 넘쳐난다. 사재기가 횡행하는 국가의 국민은 국가에 대한 신뢰가 없어 스스로(혼자) 살아남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한다는 해석이 많았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정부를 신뢰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봤다. 음. 그건 잘 모르겠다.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혼자 죽을 것이라는 걱정을 하지 않기는 한다. 정부보다는 공동체에 대한 믿음인 것 같다.

 그나저나 상황이 심각해지면 나는 어떻게 하지. 여기서는 정말 혼자 아프고, 심각한 경우 혼자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긴다. 엄마 품으로 돌아가라는 큰 계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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