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살만 왕세자가 온건한 이슬람을 표방한 뒤로 사우디는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외국인이나 여행객은 아바야를 입을 필요가 없어졌고,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옷차림이나 행동을 지적하는 종교경찰 (무따와)도 없어졌다. 여성이 운전할 수 있게 되었고 취업도 가능해져 회사에 사우디 여직원들도 많이지고 일상에서도 일하는 사우디 여성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요즘 젊은 여성들은 검은색 아바야 보다 화려한 색상과 몸매가 드러나는 라인이 들어간 아바야를 입고, 얼굴을 가리는 니깝은 거의 쓰지 않을뿐더러 머리를 가리는 히잡도 잘 쓰지 않는다.
며칠 전 아내와 캠프 밖에 있는 큰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는데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다가오더니 아주 정중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잘 알다시피 여긴 사우디이고 밖에는 아주 나쁜놈들이 많으니 옷차림은 단정하게 해야한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잖아요."라며 일장연설을 했다. 아내의 옷차림을 보니 종아리 부분이 살짝 트인 치마를 입고 있었다.
‘이게 어때서?’
얼토당토않은 개소리를 듣고 있자니 화가 나서 한마디 해주려고 얼굴을 쓱 보니 수염이 길었다. 15cm는 족히 넘을 것 같았다. 순간 사우디 친구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라 그냥 오케이 하고 벗어났다.
회사에서 회의를 하던 중 유난히 대화도 안 통하고 꼰대 같은 사람이 있었는데 수염을 아주 길게 기른 사람이었다. 그때 옆에 있던 사우디 친구가 “무따와 무따와!” 라고 속삭였다. ‘무따와는 종교경찰이고 없어진 지가 언제인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보통 무슬림의 행실규범이 정리된 하디쓰(Hadith)에 따르면 수염 길이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2-3cm 정도 기르면 충분한데, 저렇게 기른 사람들은 자기의 신앙심이 그만큼 깊다고 우쭐대기 위한 표현이라는 거다. 그리고 100% 고집세고 보수적이라고 했다. “어 우리팀에 xxx도 수염이 길잖아.”라고 했더니 “걔도 무따와”라고 속삭였다.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그런 꼰대짓을 한단 말인가. 약 8년 전에 사우디에서 본 캠페인 문구는 아래 사진과 같은데 한글로 번역하면 "막을 수는 없지만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아직도 이 캠페인이 있던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다.
사우디에 10년간 살아보니 나조차도 급격한 변화에 적응이 잘되지 않는다.
야외 테라스에 홀로 앉아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후욱 피우던 멋진 신여성을 봤을 때나 아바야 단추를 다 풀고 길거리를 활보하던 젊은 여성 무리를 보고 나도 모르게 "말세야 말세..."라고 중얼거렸는데 그 모습을 본 아내가 한 마디 던졌다.
"여기 사우디 꼰대 한 명 더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