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딸아이가 어지럽고 머리가 아파서 공부를 할 수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어지러워서 학교 수업에도 집중을 할 수 없어서 힘이 든다고 했다. 얼마 전에 걸린 감기에서 아직 회복하지 않은 것 같아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신기하게 아이들과 뛰어놀 때는 아무렇지 않다가 공부를 하려고 하거나 잠자리에 들려고 하면 어지럽다고 하니 꾀병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시력이 저하되면 어지러울 수 있다는 친구의 조언을 듣고 병원에서 시력검사를 받기로 했다.
시력검사 결과, 아이가 안경을 착용해야 한다는 것을 아내에게 전해 들었을 때 아이에게 화를 내버렸다. “어두운 곳에서 책 읽지 말라고 했잖아! 이제 6살인데, 벌써 안경을 쓰면 어쩌니!” 안경을 쓴다는 사실에 설레어하던 아이는 갑작스러운 호통에 놀라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아내는 우는 아이를 달래고 나는 나대로 씩씩거리고 있었다. 사실 화를 낼 일도 아닌데 어릴 때부터 안경을 써야 한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화로 표현이 됐다. 안타까움은 안타까움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아직도 내 감정을 잘 모르고 엉뚱한 감정이 표출된다. 그날 저녁은 나로 인해 한바탕 소란스러웠다.
딸아이는 책 읽기를 참 좋아한다. 조금이라도 틈이 나면 책장으로 달려가 책을 집어 들고 어디론가 사라져 몇 시간 동안 책을 읽는다. 그런 습관 때문에 눈이 나빠질게 우려되어 좋은 책상, 의자, 스탠드를 사 주었는데도 어두운 책장 아래, 소파 위, 심지어 화장실에서 책을 읽곤 했다. 공부를 하기 위해 앉아야 하는 책상보다는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책 읽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이에게 책 읽기는 자기만의 놀이이고 스트레스 해소의 시간이었나 보다.
그날 밤, 화를 낸 것에 대해 사과를 하며 안경을 쓰게 된 소감에 대해 물었다.
이내 아이는 “설레어!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거잖아. 그리고 안경을 쓰면 더 이상 어지럽지 않을 테니 좋아.”라고 신 이 나서 대답했다.
처음 안경을 쓰던 15살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새로운 것과 일상을 함께 한다는 것에 나 역시 설렜고, 이전과 다른 모습이 어색해서 거울 앞을 계속 서성거렸었다. 나를 닮은 내 아이도 이런 기분이었겠지?
얼마 전 이탈리아 스키장에서 딸아이가 리프트 위에서 발을 흔들자 “위험해! 리프트에서 그러지 마!”라고 나무랐는데, 옆에 있던 스키강사가 한 마디 거들었다.
“리프트에서 그렇게 발을 흔들면, 넌 날개가 필요할지도 몰라~”
그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이를 웃게 했고 그 말이 어찌나 예쁘고 긍정적이었던지 아이의 생각에 긍정적인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나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이렇게 마음이 넓은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지난 며칠 어지럽다고 호소하던 아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아이의 감정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족한 아빠의 모습을 자책하며 “더 따뜻하고 긍정적인 아빠가 되어야지”라고 다시 한번 마음을 잡아본다.
한국에서 급히 공수해 온 안경은 아이에게 잘 맞아 지금은 멀리 있는 글씨도 잘 보인다고 하고 어지러움 없이 잘 지내고 있다. 내 마음에도 잘 맞는 안경을 씌워서 내 감정을 좀 더 잘 보고 예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