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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꽐라 Jun 06. 2024

미안해 I am sorry

얼마 전 국제한국어교육재단에서 주관하는 재외동포 어린이 한국어 그림일기 대회가 있었다. 외국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겪은 일화를 그림일기로 표현하는 대회인데, 외국에 지내면서 겪었던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제법 되는 데다 아이가 도전해 보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한국에서 그림일기 쓰기 대회를 하는데 일기 써서 내 볼래?”

“아니 싫어.”

“음... 잘 써서 뽑히면 한국으로 문화체험도 보내준대. 도전해 보는 것도 아주 좋은 경험일 것 같은데?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기회는 아니거든.”


문화체험에 마음이 동했는지, 아니면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희소성에 마음이 동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이는 이내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니 분명 문화체험에 끌렸을 것이다.


평소 한글학교에서 숙제로 내 준 그림일기 쓰기를 꾸준히 해 왔던 터라 이전에 썼던 일기 중 하나를 골라서 적어 내기로 했다.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었을까 중얼거리며 일기장을 뒤적거리던 중, ‘엄마, 미안해’ 사건이 눈에 띄었다. 아이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며, 슬쩍 미소를 흘렸다.


아내가 감기에 심하게 걸려 며칠 앓아누운 적이 있었다. 그런 아내를 위해 나는 저녁식사를 만들고 아이는 방으로 음식을 나르곤 했는데, 마침 고열에 낑낑거리던 아내를 본 아이가 “엄마, 미안해”라고 하는 게 아닌가. 의아해서 “그게 무슨 말이야?”라고 물었더니 아이는 한숨을 푹 쉬면서

“아빠, 학교에서 친구가 ‘I'm sick'이라고 하면 ’I'm sorry'라고 말해야 하지? 그게 예의인 거고. 그래서 엄마 아픈 게 걱정돼서 ‘미안해 ‘라고 말한 거야. “ 

라며 나를 나무랐다.

아이의 그 모습이 너무 귀엽기도 하고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참 예뻐서 한참을 안아준 뒤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아이도 그 일이 재미있었는지 일기장에 그날의 이야기를 적었더랬다.



주관기관 홈페이지에서 양식을 다운로드하고 아이가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글을 쓸 공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외국에서 생활한 아이들이라 글을 길게 쓰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지며 아이에게 최대한 줄여 쓰라고 강조했다. 결국 내용을 줄이고 줄여 양식에 딱 맞춰 적었고 스캔을 한 뒤 제출을 했다.


아뿔싸!!

제출을 하고 보니 날짜를 2023년으로 잘못 적은 게 아닌가. 실수에 자책하던 것도 잠시 더 큰 문제를 발견했다.

용지 크기! 그 이상하게 생각됐던 용지크기가 A4가 아닌 A3였다.

어쩐지! 어쩐지!

글 쓰는 공간이 너무 작다 생각했다. 나와 아내는 왜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았단 말인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으면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이번에도 자의적인 판단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일반가정에 A3용 프린터를 가진 가정이 얼마나 된다고! 아니다 A4 두 장 붙이면 A3가 되잖아.”라며 자책하고 위로하기를 반복했다.


낙선이 확실하지만 다행인 것은 아이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아이는 발표일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6월 7일 발표날이 되면 사실대로 말해줘야겠다.

"I am sorry."

"‘미안해’는 이럴 때 쓰는 거야.“ 라는 한 마디도 잊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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