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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재민 Dec 25. 2018

#06. 하노이에 왔으니까 일단 커피 한 잔


복사집을 찾아가는 도중에 깔끔한 카페를 발견했다. 길을 건너가서 전경을 다시 살폈다. 그래도 예뻤다. 젊은 현지인 손님이 많았다. 나 같은 뜨내기는 없어 보였다. 커플이 많았다. 여기다 싶어서 들어갔다. 다들 혼자 들어온 외국인을 힐끗힐끗 쳐다봤다. 아이스밀크커피(카페쓰어다)를 주문했다. 젠장, 너무 맛있다. 이래서 인기가 좋구나. 사람 입은 다 똑같은 모양이다.


카페 이름은 ‘카파 카페(Kafa Cafe)’였다. 간판도 이름만큼 예쁘다. 전부 목조 목욕탕 테이블과 의자였다. 쪼그려 앉아 마시는 아이스밀크커피는 달면서 커피의 풍미를 흠뻑 품고 있었다. 너무 맛있었다. 만족감에 뒤로 기대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앞 테이블의 예쁜 여자 손님이 인상을 찡그렸다.



하노이 곳곳에 ‘카파 카페’가 있다. 거의 다 가봤다. 갈 때마다 다른 메뉴를 시켰는데 전부 맛있었다. 맥주거리(따이엔)에 있는 1층부터 3층까지 쓰는 대형 지점도 있었다. 그런 곳에는 소위 ‘하이 테이블(high table)’도 있다. 높다는 게 우리가 익숙한 그 높이의 테이블이다. 목욕탕 의자는 불편해서 오래 앉아있지 못하겠더라. 친구들과 가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그나마 낚시의자는 견딜 만하다.


숙소가 있던 바찌에우(Ba Trieu)에도 ‘카파 카페’가 있다. 2층에 올라갔더니 사방에 ‘노스모킹’ 스티커가 닥지닥지 붙어있었다. 노트북 작업이 필요해서 그냥 참기로 했다. 조금 뒤 20대 초반의 명랑한 여자 손님들이 우르르 들어와 옆 테이블을 차지했다. 시끄럽게 떠드는 바람에 망했다 싶었다. 카드게임을 시작하면서 그녀들은 더 시끄러워졌다. 진짜 망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렇게 생각하는 손님은 나 혼자뿐인 것 같았다.


나가려고 했는데 그녀들이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어라. 다른 손님들을 관찰했다. 다들 태연했다. 나도 최대한 그 태연한 표정을 흉내 내면서 직원에게 재떨이를 달라고 했다. 생글생글 웃으며 재떨이를 가져다줬다. 계속 있기로 했다. 그녀들의 소음은 콩나물로 막으니 견딜 만했다. 나도 그녀들도 모두 행복한 오전을 보냈다. 그런데 평일 오전에 쟤네는 왜 여기서?



하노이에는 카페가 많다. 정말 많다. 프랜차이즈(콩카페, 하이랜드 커피, 아하 커피, 스타벅스 등)도 있지만, 동네 카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런 곳에서는 1000원으로 근사한 베트남 커피를 마실 수 있다. 하노이의 네 번째 숙소 앞에는 동네 카페가 다섯 점포가 이웃하고 있었다. 참, 베트남 스타벅스의 가격대는 한국의 60% 수준이다. 우리에겐 싸고, 현지에서는 무진장 비싼 가격대이다.


베트남 커피는 진하다. 한국인의 입맛에는 너무 쓰거나 달다. 기본 커피가 에스프레소라고 생각하면 된다. 큰 잔에 생수를 한가득 들이부어야 한국에서 ‘이 가게 커피 정말 진하다!’라는 맛이 난다. 연유를 넣은 밀크커피는 무진장 단 캬라멜라떼 맛이다. 어쨌든 맛있다. 그냥 마셔도 좋고, 희석해도 맛있다. ‘콩카페’의 시그니처 메뉴인 코코넛스무디도 우리 입맛에는 꽤 달게 느껴지는데 베트남 현지 기준으로는 덜 달다.



콩카페의 ‘콩’이 베트콩의 콩이다. 우리로 치면 ‘인민군 다방’ 같은 느낌이다. 큰 매장에서는 베트콩 스타일 MD상품도 판매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가는 곳마다 콩카페에는 한국인 손님이 많았다. 혼자 여행하다가 한국인이 그리워지면 콩카페에 가면 된다. 서로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신경 쓰는 맛이 아주 한국스럽고 좋다.


카페라면 어디나 에그커피가 있지만, 기왕 하노이까지 갔으니까 ‘카페 지앙(Cafe Giang)’이나 ‘딘카페(Dinh Cafe)의 에그커피를 맛보는 게 좋다. 작은 커피잔 위로 계란 거품이 계란찜처럼 봉곳하게 나온다. 티스푼으로 아래 깔린 커피와 계란 거품을 함께 떠 마시면 천상의 맛이 난다. 베트남어로는 ‘카페 쭝(Caphe Trung)’이라고 부른다. 뒤에 ‘농’을 붙이면 뜨겁고, ‘다’를 붙이면 차갑게 만들어준다.



한 번은 귀갓길에 동네 카페에서 블랙커피를 테이크아웃했다. 집에 가서 뜨거운 물을 부어 아메리카노를 마시자는 작전이었다. 희석까진 성공했는데 입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그대로 냉장고에 넣고 나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일어나 커피를 꺼내 마셨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아아’ 탄생. 콜드브루라고 해서 돈 받고 팔아도 되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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