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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재민 Dec 28. 2018

#07. ‘퍼짜쭈엔’ 쌀국수는 실패하지 않는다

하노이에서 '백종원 쌀국수 맛집'에 가야만 하는 이유


여행 계획을 따로 세우지 않는다. 계획은 출장 갈 때나 필요하다. 여행 일정을 빠듯하게 짜는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다가 현지에서 계획이 헝클어지면 자책한다.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내 여행에는 실패가 없다. 성공하거나 실패할 계획 자체가 없으니까.


하노이에 가기 전에 세 가지를 숙지했다. 처음 묵을 호텔의 주소(일단 짐은 풀어야), 백종원 쌀국수 맛집(유명하다니까), 카페지앙(나름 커피 마니아)이다. 솔직히 ‘백종원 맛집’도 친구가 던져줘서 알았다. 유튜브를 보고 가라고 했다. 순순히 따랐다. 백종원 씨가 하노이 현지 음식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꽤 예전 방송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때부터 백종원 씨는 달변이었다.


퍼짜쭈엔이 육수를 끓이면 옆집 쌀국수집 사장님은 웃는다


‘퍼짜쭈엔(Pho Gia Truyen)’이란 쌀국수 전문 식당이었다. 하노이 첫 숙소에서, 우연히, 가까웠다. 방송에서 백종원 씨는 “아침 장사만 한다”라고 했는데 구글은 ‘밤늦게까지 한다’라고 알려줬다. 구글을 믿기로 했다. 오후 2시 정도에 슬슬 찾아갔다. 식당 앞에 세 가지가 있었다. 굳게 닫힌 문, 난처한 표정을 짓는 한국인 커플 두 쌍, 손님 줄이 길게 생긴 이웃 쌀국수 식당이었다. 백종원 씨를 믿을 걸 그랬다.


다음 날 일찍 오겠다는 다짐으로 잤다가 역시나 늦잠을 잤다. 침대 위에서 뒹굴면서 ‘쉬러 왔는데 쌀국수 한 그릇 먹자고 아침 7시에 일어나는 건 미친 짓’이라는 최면을 걸었다. 암, 그렇고말고. 느릿느릿 움직여 숙소 근처에 있는 길거리 쌀국수를 먼저 먹었다. 이런 JMT… 마늘액과 고추를 넣었더니 더 맛있어졌다. 3만 동(1500원)짜리 쌀국수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는 동안 머릿속에서 ‘백종원 맛집’은 싹 사라졌다.


저기 보이는 저 마늘액만 넣으면 1500원짜리 쌀국수라도 맛있어진다


돌아다니면서 이곳저곳 쌀국수를 먹었다. 살짝 질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반미에 맛을 들였다. 바게트의 배를 갈라 고기, 야채, 고수 등을 넣은 베트남식 샌드위치다. 맛있다. 구시가의 ‘반미25’라는 곳이 맛집이다. 저녁 귀갓길에 반미를 사 가려고 ‘반미25’를 향해 걸어갔다. 한 식당의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긴 손님 행렬. 어디서 많이 봤던 식당인데. ‘퍼짜쭈엔’이었다.


유레카. 밤새 끓인 육수로 아침 장사, 오후 내내 끓인 육수로 저녁 장사를 하는 패턴이었다. 구글에 당장 사죄하고 쪼르륵 줄 맨 뒤에 섰다. 메뉴는 3가지(A, B, A+B; 뭔지 모른다. 묻지 말기)다. 뜨내기들은 무조건 A+B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두근두근. 방송에서 봤던 아줌마와 눈이 마주쳤다. 헤헤 웃으면서 검지를 들어 보였다. 쌀국수 한 그릇 주세요. 아줌마는 손가락 다섯 개를 펴서 보였다. 오만 동이야.


메뉴는 세 가지. 뜨내기들은 '아묻따' 맨 위 5만 동짜리 당첨


주문하고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장소는 좁고 손님은 많은 ‘퍼짜쭈엔’에 자리 개념은 없었다. 생면부지 타인과 어깨를 부딪쳐가며 호로록 먹는다. 주문 후 1분 정도 뒤에 쌀국수가 나왔다. 주문했던 곳에 가서 국수를 받아 자리로 돌아와 먹으면 된다. 뭐가 어때? 스타벅스 시스템이잖아. 단, 아줌마는 이름을 부르지 않고 눈빛만 사용한다. 손님이 끊이질 않는데도 아줌마는 정확히 주문자를 찾아내 눈빛을 보냈다. 너. 네.


이거다. 퍼짜쭈엔


첫술을 떴다. 쌀국수를 먹을 만큼 먹었고, 이제 지겨워졌다고 믿었건만. 너무 맛있다. 육수가 이렇게 진할 수가 있다니. 면이고 고기고 다 필요 없었다. 국물 하나만으로 100점 만점에 200점이었다. 또 다른 인기 식당인 ‘리꾸옥수(Ly Quoc Su)’의 깔끔한 맛과 다르게 ‘퍼짜쭈엔’의 국물은 묵직했다. 너무 맛있어서 다 먹고 나서야 함께 주문했던 빵에 손도 안 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노이에 왔으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퍼짜쭈엔’의 쌀국수를 먹어봐야 할 것 같다. 정말 맛있다. 아줌마의 무심한 눈빛이 매력적이다. 주문대 옆에 걸린 고기가 먹음직하다. 호로록 마시고 고개를 들어 생면부지 손님과 눈이 마주치는 상황이 맛있다. 내 하노이 쌀국수는 별다른 계획 없이도 이렇게 대성공했다.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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