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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재민 Aug 19. 2020

#내것 #05 - 아이폰Xs

예쁘니까 계속 사고, 예뻐서 봐준다

문득 책상 위를 봤다. 맥북, 아이패드, 매직 마우스, 매직 키보드, 에어팟, 예전에 썼던 아이폰5와 아이폰7가 모여있다. 새하얀 케이블들이 여기저기 뻗어있다. 지금 쓰는 스마트폰은 아이폰Xs다. 사과나무까진 아니고, 사과나무 분재 정도랄까. 아, 참고적으로 저건 ‘아이폰 텐 에스’다. ‘아이폰 엑스 에스’가 아니라.


예전에는 안드로이드폰을 사용했다. 그깟 스마트폰 하나 쓰려는데 아이폰은 너무 비쌌다. 정확히 말하면 훨씬 비싼 만큼 성능이 압도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지금도 그 생각은 마찬가지다. 선더볼트랍시고 독자 인터페이스를 만들어 허무맹랑한 가격을 붙이는 건 ‘똥배짱’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서드파티 제품에 불친절한 노선이 독선적이다.


아내가 나보다 먼저 아이폰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이폰5였다. 그러다가 아이폰7이 나왔고 그녀는 약정 만료를 기념해 아이폰7으로 바꾸면서 다시 약정에 발목이 잡혔다. 나는 침대에 드러누워 며칠 동안 아이폰5 공기계를 만지작거렸다. 생각보다 예뻤고 한손에 폭 안기는 사이즈도 마음에 들었다. 나도 이거 한번 써볼까? 아내는 “대리점 직원이 연락처 옮겨줄 거야”라고 말했다. 내 연락처는 대리점 직원이 아니라 구글이 옮겨줄 예정이라고 말하려다가 “응 그래”라고 고분고분 대답했다. 공기계 얻어쓰는 주제에 어디서 감히 아는 척을.


아이폰5은 특별하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사진이 정말 예쁘게 찍힌다고 했다. 몇 번 찍어보니 아이폰은 사진을 잘 찍는 게 아니라 찍은 사진을 예쁘게 보여주는 성능이 좋았다. 아이폰이 아니라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우수하다’라고 해야 정확하다. 실제로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을 일반 PC 모니터에서 보면, 그냥, 사진이다. 반대로 안드로이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레티나 디스플레이로 보면, 그냥, 예뻐 보인다.


아이폰의 보람은 예상치 못하게 맥북을 사면서부터 발현되었다. 13인치 맥프로를 샀더니 둘이 6.25 전쟁통에 헤어졌다가 KBS 방송국에서 30년 만에 만난 이산가족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맥북에서 전화 알람이 막 울리고 아이폰에서 맥북의 파일들이 막 보였다. 사실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애플 아이디 하나로 복수 개의 단말기가 동시에 아이클라우드에 들러붙는 거다. 내 의사를 묻지도 않고 제멋대로 묶는 게 버릇없어 보였지만, 막상 애플이 쓰라는 대로 쓰니까 편하더라.


레티나 디스플레이 외에 아이폰에는 갤럭시를 압도하는 기능은 거의 없다. 여기서 되면 저기서도 다 된다. 스펙 면에선 오히려 안드로이드 진영에 우월한 제품이 많다. 그래도 나는 아이폰5를 잘 썼고, 아이폰7을 거쳐 아이폰Xs까지 왔다. 인물사진 모드의 아웃포커싱에 혼자 “우오~”라면서 호들갑을 떨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심드렁해졌다. 150만원짜리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이유가 정말 내 책상머리에서 이루어지는 연동성 때문일까? 곰곰이 그 이유를 생각해봤다. 결국 “예쁘니까”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나는 아이폰이 예쁘다고 생각한다. 랩톱, 스마트패드, 맥프로도 경쟁 제품보다 디자인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설계, 기능 등의 산업디자인이 아니라 겉모습의 디자인을 말한다. 예쁘다는 건 중요하다. 24시간 내내 손에서 떠나지 않는 디지털기기라면 더 중요해진다. 2020년 소비 트렌드에선 좋은 것보다 예쁜 것이 잘 팔린다. 낚시, 탁구, 공부, 캠핑, 육상 유튜브도 잘생기거나 예쁜 주인공의 채널이 인기가 좋더라. 최소한 내 눈에는 갤럭시보다 아이폰이 더 예쁘다. 통신사 보조금을 포기할 정도로.


아이폰이 명품이란 소리는 아니지만 어쩐지 명품과 공통점이 느껴진다. 한번 떨어트리면 앞뒤가 박살이 나는 아이폰Xs 만듦새 때문에 구입을 포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명품 매장에서도 우리는 기능이나 내구성을 따지지 않는다. “이거 물에 젖어도 끄떡없어요!”라고 포장해야 할 판에 명품 매장에선 “이거 물에 젖지 않도록 조심하세요”라고 당부한다. 멋있고 예쁘고 제품에 박힌 로고 때문에 웃돈을 치른다.


예전에 아내가 샤넬 구두를 산 적이 있다. 며칠 만에 밑창이 다 까졌다. 수선을 맡기러 매장에 갔더니 직원은 “어머, 이 구두 신고 길거리 다니시면 안돼요”라고 말했다. 폭신폭신한 카펫 위를 우아하게 걸을 때만 신는 값비싼 명품 쓰레기. 150만원씩이나 하면서 앞면을 강화유리로, 뒷면을 케이스로 ‘또’ 감싸야 하는 아이폰Xs를 보면서도 왠지 비슷한 기분이 든다. 예쁘니까 참고 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의 다음 스마트폰도 아마 아이폰이 될 것이다. 그 때까지 갤럭시는 한층 강력해진 스펙으로 무장한 신제품을 그저그런 디자인에 담아 출시할 것이다. 쨍한 화면 위로 촌스러운 폰트와 멋없는 아이콘은 여전할 테고. 아이폰의 차기 제품도 새 기능을 추가하겠지만, 그리 대단하지 않은 기술 혁신일 확률이 높다. 그래도 미래의 갤럭시보다는 예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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