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재민 Dec 03. 2020

#내것 #12 - 학교 도서관 카드

영국 유학 가서 영어 못하는 뻔뻔함을 배워왔다

서른 넘어 영국 런던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전까지 나는 영어권 국가를 가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별걱정은 없었다. 영어에 자신있었기 때문이다. 학생 시절 나는 늘 영어 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97년 입사 당시 토익 900점이었다. 그때는 어디 가도 꿀리지 않는 점수였다.


도착 첫날부터 그게 와장창 깨졌다. 입국심사관부터 기숙사 알바생, 슈퍼마켓 직원, 택시 기사, 교수에 이르기까지 런던에서는 모든 이가 외계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잘 들어보니 영어인 것도 같았다. 내 영어와 아예 다르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코크니부터 맨체스터, 리버풀, 뉴캐슬,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사투리가 ‘난리블루스’를 춰댔다. 인도, 폴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남아공, 가나 말투가 막 날아다녔다. 내 자신감은 에프킬러를 정통으로 맞은 모기처럼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졸업한 후에 만들어서 열람(reference)만 가능한 카드다. 62kg 시절 내 턱이 저랬구나.


일상 자체가 불편해졌다. 식사를 주문할 때, 커피를 주문할 때, 베개를 살 때, 교통카드를 만들 때, 그러니까 모든 일상에서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었다. 벼랑 아래는 ‘영어도 못 하는 망신’의 파도가 일렁인다. 창피당하지 않으려고 매순간 초집중, 초긴장했다. 이불 밖으로 나가는 순간부터 ‘전집중 호흡’을 하는 카마도 탄지로처럼 항상 긴장했다. 엉뚱한 영어로 창피당하기도 싫었고, 내 영어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지키고 싶었다.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보내는 날도 있었다. 방에 와서 막 자책했다.


‘쌩쑈’의 연속이었다. 지포 라이터의 기름을 사야 해서 “오일(oil)”을 달라고 했다. 나중에야 이해한 직원은 그 물건을 “페트롤(petrol)”이라고 불렀다. 핸드폰 가게의 ‘Pay As You Go’라는 뜻을 몰라 고민했다. 그게 ‘선불제’였다. 학교 근처에 있는 마트 캐시어가 계산하면서 뭔가 말했다. 내 귀에 ‘카드’라는 단어만 들렸다. 학생할인인 줄 알고 학생증을 보여줬더니 아줌마가 빵 터졌다. 멤버십 적립카드 있으면 달라는 소리였다. 정말 창피했다. 카드 이름이 지금도 기억난다. 망할 놈의 Nectar Card.


3개월 정도 적응한 뒤에야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익숙해졌다. 병뚜껑이 ‘lid’라는 것도 알았고, 화장실을 가끔 ‘loo’라고 부른다는 것도 알았다. 슈퍼마켓 비닐봉지는 ‘plastic bag’, 쓰레기는 ‘rubbish’, 번화가는 ‘high street’다. “Cheers, mate!”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고맙다는 말이고 ‘메이트’는 룸메이트의 그 메이트다. 뭔가 웃길 때 ‘hilarious’라고 말했다. 사전에서나 실리는 문어인 줄 알았던 형용사가 일상적으로 쓰였다. 나름 노력했다. 런던 유학생씩이나 됐으니 서툰 영어가 죄의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리버풀과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뛰었던 제이미 캐러거란 축구선수가 있다. 전형적인 리버풀 사투리를 쓴다. 이런 영어를 쓰는 친구와 밥을 먹는다고 상상해보자.)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내가 런던에 간 이유다. 맞다. 나는 ‘축구산업 스포츠경영’을 전공하러 갔지, 영어를 공부하러 간 사람이 아니었다. 서른살 넘어서까지 영어에 시간과 돈과 정성을 쏟아붓는 건 비효율적이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런던까지 날아와서 영어를 붙잡고 있다니 말도 안된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일상대화가 서툴러도 학교 수업에는 지장이 없다. 책도 읽고 리포트도 작성하고 시험도 친다. 런던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컨버세이션이 아니라 리서치였다. 일상대화는 그 다음이다.


2010년 수원블루윙스의 일본인 선수 다카하라 나오히로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분데스리가에서 뛰었을 정도로 출중한 스타였다. 본인과 아내가 모두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몰라서 약간 답답하다고 했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여기에 축구를 하러 온 거니까 축구를 잘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같은 생각을 가졌던 터라 나도 모르게 “맞아. 그거야. 축구하러 온 거잖아”라면서 맞장구를 쳤다.


생각해보면 내가 런던에서 만났던 한국인 유학생들은 대부분 영어가 그저 그랬다. 그래도 다들 별 탈 없이 지냈다. 누가 한국인 아니랄까 봐서 성실하고 빈틈없이 학위를 척척 받아냈다. 현지 사정에 조금만 익숙해지면 일상 영어쯤이야 눈치와 관성으로 해결하면 된다. 네이티브스피커가 아닌 유학 경험자들은 대부분 “저 영어 잘 못 해요, 하하하”라고 말한다. 겸손한 친구도 있겠지만, 실제로 영어 능력이 주위의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영어 탓에 헝클어졌던 유학 생활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했다. 일상대화의 단절이 발생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친구의 말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더는 창피의 바다에 빠지지 않았다. 영국인 친구에게 “야, 제발 영어로 좀 말해. 천천히!”라고 받아칠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대화의 주체는 쌍방이다. 대화 단절의 책임이 리스너뿐 아니라 스피커에게도 있다는 뜻이다.


영어가 불완전해도 괜찮다는 뻔뻔함은 정말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 뻔뻔함이야말로 내가 영국 유학에서 배워온 최고의 영어 능력이었다. 지금 혹시 영어권 국가에서 공부하면서 영어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이 있다면 명심해라. 영어 공부할 시간에 전공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읽자. 그게 낫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것 #11 - 로마 혼돈 소렌토 지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