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누벨의 돔, 중동의 햇살 조각, 옥빛 바다 그리고 나폴레옹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축구 기자가 되면 세 가지 장점이 생긴다. 첫째, 빅매치와 스타에게 접근이 가능하다. 둘째, ‘덕업일치’가 가능하다. 셋째, 경기를 쫓아다녀야 하므로 출장이 잦다. 여행까지 좋아하면 정말 끝내주는 직업 특성이다.
2019년 1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2019아시안컵을 취재하느라 3주를 보냈다. UAE는 작은 나라여서 출장 동선 짜기가 편했다. 2019아시안컵의 모든 경기는 아부다비, 두바이, 샤르자, 알아인 4개 도시에서 열렸다. 두바이와 샤르자는 물리적으로 붙은 사실상 같은 도시다. 두바이, 아부다비, 알아인은 자동차로 서로 1시간 반 거리다. 베이스캠프와 렌터카 예약만으로 출장 준비가 끝난다. 취재 사이에 짬을 쉽게 낼 수 있다는 뜻이다.
덕분에 ‘루브르 아부다비’를 구경했다. 대회 기간 중 ‘머스트 고’ 장소였다. 파리에서 빌려온 컬렉션보다 장 누벨이 창조해낸 건축이 꼭 보고 싶었다. 나는 약간 ‘미친’ 건축을 좋아한다.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그런 느낌을 주는 디자인을 사랑한다. 파리의 아랍문화원은 밖에서 안을 봐도 안에서 밖을 봐도 신기할 뿐이다. 조도에 따라 조절되는 외벽 디자인이라니. 1층 카페에서 파는 아랍식 디저트와 커피가 비싸긴 해도 정말 멋진 건축물이다.
‘루브르 아부다비’는 바다 위에 떠 있다. 55개의 크고 작은 건물로 구성된다. ‘미친’ 장 누벨은 그 위를 거대한 돔으로 덮었다. 마샤라비아 패턴을 재해석한 수많은 프레임이 어지럽게 교차한다. 프레임과 프레임의 틈들을 통과한 중동의 눈 부신 햇살이 미술관 위로 내리 꽂힌다. 르누아르의 <뮬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속에서 춤을 추는 19세기 파리지앵들에게 생긴 점점의 햇살들처럼 따스하다. 컬렉션을 감상해야 한다는 의무감 따위 생기지 않는다. 로비 벤치에 앉아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면 된다. 지구라는 행성 어디서나 존재하는 태양 광선은 아부다비에서 장 누벨에 의해 몽환적으로 조각되고 있었다.
이곳은 구겐하임 아부다비, 자예드국립미술관과 함께 아부다비가 추진하는 사디야트 문화지구 프로젝트 중 2017년 가장 먼저 문을 열었다. 구겐하임 아부다비는 프랭크 게리가 그렸고, 자예드국립미술관은 노먼 포스터가 작업했다. 안도 다다오, 자하 하디드의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아부다비 정부는 프랑스로부터 ‘루브르’ 명칭 사용과 미술관 운영 인력 및 노하우를 전수받기로 했다. 엠마누엘 마크롱 대통령이 돈 달라고 해서 아부다비 슈퍼리치 왕족은 쿨하게 줬다. 1조4천억 원. 그까짓 거 뭐, 그냥 줘버려.
루브르 아부다비는 파리와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루브르 파리의 긴 대기 행렬,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보안요원들, 니케 앞에서 인증샷 찍느라 정신없는 인파, 군중에 둘러싸여 먼발치에서 코딱지만하게 보이는 모나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널찍한 주차장, 한산한 전시실, 옥빛 바다, 그리고 장 누벨의 돔과 햇살 파티가 루브르 아부다비를 채운다. 입장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수고도 불필요하다. 한산한 박스오피스에서 60디람짜리 티켓을 사곤 유유히 배리어를 통과해 입장하면 그만이다.
2000년인가, 스위스 루체른에서 장 누벨의 작품을 처음 봤다. 호숫가에 붙은 ‘루체른 컬처 콩그레스 센터(KKL)’였다. 거짓말처럼 푸른 하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처럼 빛나는 호수, 새우깡 달라며 다짜고짜 떼를 쓰는 백조들이 있었고, 호숫가에 KKL의 뾰족한 처마가 가로질러 있었다. 어디선가 모차르트가 피아노를 치고 있을 것처럼 생긴 동네 풍경 속에 들어선 KKL의 모던한 자태는 ‘아, 맞다. 지금 21세기야’라는 자각을 부추긴다. 실내건축 디자이너인 아내는 “저게 장 누벨이야”라고 알려줬고 나는 “우와~” 했다. 생각해보니 그때는 디지털카메라 같은 신문물이 없었다.
루브르 아부다비의 예술 컬렉션은 대부분 해외 유명 미술관로부터 대여한 것들이다. 정말 유명한 작품과 만날 수 있지만 때를 맞추지 못하면 원하는 감상에 실패할 수도 있다. 내가 갔을 때는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도 전시되어 있었다. 2008년 오스트리아 빈의 벨베데레 궁전에서 처음 봤는데 11년 후 아부다비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 아부다비의 나폴레옹은 프랑스가 보유한 버전일 것이다. 유로2008을 취재하러 갔었고, 비경기일에 동료들과 함께 클림트의 <키스>를 보러 갔다가 우연히 나폴레옹과도 조우했다. 어릴 적 미술 교과서 표지였던 그림을 실제로 감상하는 건 아주 근사한 기분이었다.
** 유튜브에서 Louvre Abu Dhabi 검색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