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부<똑부<멍게<똑게
두 번째 직장(현 직장)에서는 팀장이 되기 전까지 약 5년 동안 한 분의 리더와 일을 했다. 전 직장에서는 정말 ‘하나님이 날 만드실 때, 상사 운은 넣지 않았나 보군.’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수준이었는데, 이분은 그래도 뭔가 편안하면서도 구성원을 믿어주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기에 초반에는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1년이 지나면서 실체를 알게 되었는데, 그분의 별명은 ‘네이버 맨’이었다. 업무 중에 발생한 문제들을 정리해서 메일을 보내고 구두 보고를 하면, 열 번 중 여덟아홉 번은 Alt+Tab을 누른 후에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되냐?’라는 질문을 하셨다. 나중엔 그 이야기조차 듣기 싫어서 메일 보고만 하고, 그분이 해야 할 일까지 그냥 알아서 했다.
그러다 2020년 말 그분이 이직하시면서 팀장 자리를 물려받았고 조직 변경 이후에는 새로운 리더와 일을 하게 되었다. 이 분은 조직 내에서도 마이크로매니징으로 유명하신 분이었다. 모든 일에 대해서 당신께서 파악하시려는 거야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모든 일을 당신의 생각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시는 캐릭터였다. 자료도 ‘Rev. 10(자료를 10번 수정했다는 뜻)’은 기본이었다. 이 분 요구사항만 맞추다가 하루가 지나는 날도 적지 않았다. 마이크로매니징 하는 리더와 일한 지 9개월이 좀 넘은 요즘 ‘아, 그때가 좋았던 거였네!’라는 생각이 가끔 든다.
(* 조지다는 표준어입니다.)
에드워드 데시는 자기 결정 이론에서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이 필요하다고 언급하였다. 하지만, 마이크로매니징 하는 리더는 업무의 모든 것을 자기 생각대로 통제하려고 하고, 구성원의 의견을 무시하며, 조직의 관계를 오롯이 자기중심적으로 만든다. 결국 구성원의 성장과 발전을 철저히 파괴하고, 결국 조직도 망치게 된다.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첫 번째, 직장에서 동기부여가 되기 위해서는 외부 환경으로부터 압박 혹은 강요받지 않아야 하며, 자기 생각과 행동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마이크로매니징 하는 리더는 구성원의 업무에 대한 통제권을 허락하지 않음으로써 동기부여를 원천 봉쇄한다. 구성원이 아무리 훌륭한 전략과 계획을 보여줘도 그들은 여지없이 난도질한다. (일에 대한 동기부여도 같이 난도질당한다) 이런 일이 몇 번 있고 나면 그들은 '그냥 욕먹고 말자'라는 마음으로 자료를 대충 만들거나, 예전 자료를 약간만 고쳐서 보낸다. 결국, '동기부여 부족→일의 완성도 부족→마이크로매니징 강화'라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두 번째, 직장에서 능력 향상을 위해서는 적절한 난이도의 일을 하면서 주변의 피드백을 받는 루틴이 필요하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의 긍정적 피드백과 지지다. 이를 바탕으로 조금 더 어려운 난이도에 도전하고 성공시키는 선순환을 통해 직장인은 성장한다. 하지만, 마이크로매니징 하는 리더는 구성원에게 이런 기회 자체를 주지 않는다. 어려운 일이든 쉬운 일이든 모든 것을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대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의 역량 성장 기회만 봉쇄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성장까지 봉쇄한다는 점이다. 마이크로매니징 하는 리더 밑에서 일하던 구성원이 리더가 된 경우를 생각해보자. 직장에서 리더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업무의 방향 설정’과 ‘의사결정’이다. 그런데, 이들은 마이크로매니징 하는 리더 밑에서만 일했기 때문에 이 두 가지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이다. 리더는 맡았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리더이다. 당연히 그 밑에서 일하는 구성원은 불만이 폭발할 수밖에 없다.
세 번째, 마이크로매니징 하는 리더는 조직 내 구성원들 간의 관계도 망친다. 자신 이외에 아무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A에게 일을 시켜놓고, B, C를 통해 크로스체크를 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B, C가 일할 때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그게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는 리더와 구성원 간의 불신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그들간의 불신도 야기한다. 조직 내 심리적 안정감과 조직 내 구성원 간의 인간적인 교류 역시 내적 동기부여의 한 축인 점을 고려하면 마이크로매니징 하는 리더는 관계성 관점에서도 내적 동기 파괴자인 셈이다.
아래는 인터넷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부하 직원과 상사(리더)와의 궁합에 대한 도표이다. 리더는 ‘멍부<똑부<멍게<똑게’ 순서다. 멍청하든 똑똑하든 부하 직원을 조지는 마이크로매니징 하는 리더보다는 멍청하고 게으른 방관형 리더가 나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위의 도표에서 똑게형 리더는 똑게, 멍게 부하 직원 사이에서 왜 지켜보고 있을까? 이미 업무에 대한 파악을 마치고 일이 잘못되기 직전에 개입할 타이밍을 재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멍부 부하 직원의 경우 일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주지 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될 수 있으므로 빠르게 개입하여 가르치는 것이다.(방향이 틀리면 속도는 무의미하다는 말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어찌 보면 겉으로는 게을러 보일 수 있겠지만, 이미 몇 수 앞을 내다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멍게형 리더가 똑부형 리더보다 나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 번째, 방관형 리더는 업무에 대한 통제권을 가져가지는 않는다. (관심이 없으니까) 두 번째, 방관형 리더는 피드백이 없을 뿐이지 부하 직원의 성장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생각이 없으니까) 세 번째, 방관형 리더는 부하 직원 간 불신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대신 리더와 부하 직원 간 관계는 마이크로매니징 하는 리더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방관형 리더가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다. 마이크로매니징 하는 리더가 워낙 넘사벽일 뿐.
Harvard Business Review에 실린 ‘마이크로매니징을 피하면서 구성원을 돕는 방법’이라는 글에서는 개입의 리듬을 조정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개입의 리듬을 조정한다는 의미는 리더가 시간을 투자하여 직원들의 문제를 파악한 후에 상황에 맞게 단기적으로 집중 지도를 할지, 멀리서 장애물 제거만 할지를 정한다는 의미이다.
리더가 구성원의 업무 상황에 따라서 가까이 다가갈지 멀리서 지원할지를 능동적으로 결정하기 위해서는 평상시에 그들의 업무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업무를 파악하고 있지 못한 상태로 위와 같은 상황을 맞게 되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조언밖에 못 하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리더가 문제에 개입하는 상황과 시점에 대한 구성원과의 교감이다. 그들의 업무를 도와주더라도 리더의 역할이 조력자라는 점에 대해서 그들과 충분한 교감이 없거나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개입한다면, 리더가 업무를 장악했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구성원의 내적 동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혹시 구성원의 업무에 사사건건 관여하면서 훈수를 두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그만둬야 한다. 그 시간과 노력을 1) 그들의 업무를 좀 더 세밀하게 파악하고, 2) 문제 상황에서 그들의 내적 동기에 영향을 주지 않을 교감 방법을 고민하고, 3) 어떻게 개입할지 고민하는데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리더는 조직의 성과를 책임져야 하는 의무도 있지만, 구성원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의무도 있다. 오로지 성과만을 위해서 마이크로매니징을 하는 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출처: Harvard Business Review 2021. (Teresa M. Amabile, Julianna Pillemer, Colin M. Fis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