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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BA Apr 07. 2018

지 알아서 하겠지

우리형 이야기 

수년 전, 들어오는 일도 없고 자존감도 바닥나 있을 무렵이었다. 주변 어른들은 우리 형 등을 떠밀며 내게 '지금이라도 취직자리 좀 알아보래라'는 주문을 자주 했는데 우리 형은 언제나 무뚝뚝하게 한 마디 내뱉고 고개를 돌리곤 했다. 

"지 알아서 하겠지"  

남들이 듣기에 세상 차가운 말 같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다. 형이라고 동생이 무슨 일을 하고 사는지 어찌 궁금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때 형은 내가 먼저 말하기 전까지 내 삶을 제대로 물어본 적이 없다. 

뭐 하고 지내? 
앞으로 계획이 뭐야? 
잘 되고 있어? 

필사적으로 탈출구를 찾는 사람에게는 이런 가벼운 안부 인사조차 큰 부담일 수 있다. 삶 전체를 중간평가받는 듯한 중압감을 느낄 수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형의 행동은 100% 나를 믿고 기다려주는 따뜻한 '배려'였던 것이다. 그 말이 어찌나 든든하던지 뭐든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젠가 만취한 형이 술을 마시다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니가 사람을 죽이고 와도 나는 니 편이다"
이게 바로 내가 꿋꿋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집중해서 자기 길을 찾고 있는 사람에게는 어설픈 조언보다 그의 인생에서 잠깐 빠져주는 게 나을 때도 있다. 입이 근질거려 도저히 못 참겠으면 말 대신 빳빳한 5만 원권 몇 장 뽑아서 슬쩍 책상에 올려놔주자.
우리 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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