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이쓰] 31
집 근처에 있는 두 가게를 소개합니다. 하나는 네모 분식집, 한 곳은 세모 코다리집. 메뉴 장르가 확연히 다른 두 집은 아주 분명한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싸면서 맛있고 푸짐합니다. 그런데 주인장들이 아주 친절하지 않아요. 아니, 적당히 안 친절한 게 아니라 (처음에는) 눈칫밥 먹는 게 이런 기분일까 싶을 정도로 불편하기까지 한 곳들입니다.
네모네는 우리가 이 동네에 이사 온 10년 전에도 있었으니 최소 10년은 넘었어요. 내 또래(보다 한두 살 위아래)인 듯한 남자 네모님이 홀로 운영 중이시죠. 네모님은 인사해도 대답을 하지 않는 건 기본입니다. 게다가 주문을 해도 말이 없어요. 다 얼마죠? 하고 물어야만 '얼마 요↘~'하면서 힘없이 내뱉아요. 그런데 그 끝에 마지못해하는 억양입니다.
네모님은 손님과 (거의) 눈을 맞추지 않습니다. 주르륵 서너 명이 서 있었을 때에도 그러더군요. 얼른 올려다보고 후다닥 시선을 거두어 내립니다. 주문을 받는 동안에도 항상 순대를 뒤적이고, 떡볶이를 뒤집고, 튀김을 집게로 건져 털기만 합니다. 빠른 칼질과 손놀림이 대답을 대신하는 듯 하긴 해요. 마지막으로 음식 비닐봉지를 건네줄 때도 시선은 여전히 순대솥에서 올라오는 김 속에 가려져 있어요.
세모네는 얼마 전에 오픈했습니다. 이제 서너 달 되었나 보네요. 그 사이 저는 세 번을 갔었나 봐요. 처음에는 아내, 따님과 같이. 다음 두 번은 따님과 저만. 코다리찜을 워낙 좋아라 하는 우리 셋이거든요. 처음 먹고 난 후 아내도 '맛있다'였는데 동시에 '이 집은 이제 땡'이라고 선언해 버렸습니다. 아내의 맛집 기준 0순위는 언제나 '종업원이 친절한' 집이기 때문이었어요.
세모네는 둘이 있습니다. 주방은 삼십 대 남자, 홀은 칠십 대 여자. 둘은 거의 대화가 없지만 느낌이 아들과 엄마 같아요. 세모네 높은 천장에는 수없는 엘이디 등이 빛나요. 등 자체가 새것이라는 느낌이 날 정도예요. 하지만 가게 분위기는 추적추적 비 내리는 하늘 같습니다. 세 번 모두 평일 오후 6시 무렵이었는데 가게에는 손님이 없었어요. 그중 두 번은 우리가 다 먹고 나올 때까지도 손님이 들지 않더군요.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해주는 엄마는 표정이 세 번 다 화가 나 있었어요. '뭘 좀 더 주실 수 있을까요?'에도 대답을 하지 않고, 말을 하는 저를 빤히 쳐다보기만 하더군요. 그런데 그 눈빛이 저마저 꽤나 불편하더군요. 눈가로 그어진 회색빛 아이라인이 입꼬리처럼 선명하게 쳐져 있어서 더욱 그런가 싶어 졌습니다. 그런데 인상이야 뭐 그럴 수 있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말투조차 '뭘, 어쩌라고요?' 하는 듯했습니다.
얼마 전 세 번째 갔을 때는 주방에 있던, 기다린 머리칼이 자그마한 두건밖으로 갈퀴처럼 죄다 삐져나온 아들마저 주방 안에서 몇 번을 '아이 씨'를 연발하더군요. 우리가 주문한 코다리 정식을 조리하면서 말이죠. 주방 기구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툭툭 치면서 딸그락 거리는 소리가 음식을 홀로 내주는 문턱을 가린 주름진 초록색 커튼을 흔들리게 할 정도였지 싶어요. 그때마다 따님이 눈빛으로 나를 보며 씰룩거렸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건 말이죠. 코다리 맛집을 여러 군데 다녀봤지만 정말 맛있다는 겁니다. 치명적일 정도로요. '이제 땡'이라고 했던 아내마저 맛은 좋다고 인정했을 정도입니다. 거기에 쫀득한 코다리는 심지어 커요. 2인 정식이 2만 원인데요. 두 마리를 둘이 다 못 먹고 두 번이나 싸가지고 올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더 의아해요. 사실은 지금도. 그런 표정과 그런 억양, 감정에 어떻게 푸짐하게 맛있는 음식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하고 말이죠.
그런데 있잖아요. 네모님과 세모님을 떠올리면, 네모님과 세모님이 만들어 내어 주는 음식을 느끼면서 류시화 작가가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에서 들려준 두 여성 이야기가 오버랩돼요. 그것도 아주 자주. 캐나다 북부 인근 마을. 두 여성은 매서운 겨울밤 각자 차를 몰고 집을 급하게 나섭니다. 한 명은 임신한 딸을 병원에 데려가야 했고, 다른 한 명은 아프신 아버지를 돌보아 드려야 했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죠.
서로 전혀 모르는 두 사람은 서로 반대 방향에서 눈폭풍을 뚫고 어둑한 도로를 한참 달렸습니다. 서로를 향해 말이죠. 그러나 얼마 못 가 멈춰 서야 했어요. 도로를 가로질러 거대한 나무가 쓰러져 도로를 막고 있었기 때문에요. 두 여성의 힘으로 어찌하지 못하는 길이와 굵기의 나무였어요. 마음이 급한 두 여성은 각자 난감해했습니다. 그렇다고 되돌아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지요. 둘은 서로의 사정을 나누기 시작했어요. 어둑한 밤, 눈보라 속에서 말이죠. 잠시 뒤, 두 여성은 서로 각자의 차키만 교환해 목적지로 다시 달렸습니다.
음식이 푸짐하고 맛있다는 건 기본적으로 먹을 사람을 배려하는 거잖아요. 철저하게 먹을 사람 입장에서 만들고, 담아주는 거잖아요. 어릴 적 집 밥이 그렇잖아요. 엄마(또는 아빠)가 내어 주신 집밥은 엄마(또는 아빠)가 (회초리를 댄 다음에도, 내가 몰랐던 슬프고, 억울한 일 때문에도) 화가 나 있고, 인상을 쓰면서 목청을 높였어도 맛있었죠. 아주 맛있었죠. 오히려 슬쩍 반공기 더 퍼주고, 팬 바닥을 국물까지 긁어 더 담아내주셨지요.
두 여성처럼 우리의 엄마도, 아빠도 네모나고 세모난 말 못 할 수많은 상황을 동글동글 지혜롭게 해결했거나 그 과정 중이었던 거겠지요. 두고두고 저라면 어찌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살다 보면 이 이야기와 비슷한 상황이 의외로 꽤나 많이 일어나니까요. 어쩌면 분식집의 네모님도 코다리집의 세모님들도 지금 자신과 '사정을 나누고' 차키를 교환할 동그라미를 찾아 헤매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누구나 조금씩 다 모난 구석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 밖과 안에서 내뱉는 억양이 다르고, 즐겨 쓰는 말투가 다르고, 표정이 달라지는 게 그 예일 겁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네모님, 세모님이 오히려 저보다 더 솔직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걸지도 말이지요.
이왕이면 친절한 게 좋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언제나 마냥 친절할 수는 없지요. 친절할 수 있는 에너지는 생기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여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무의식 속에는 '너부터 친절해라. 그러면 나도 친절할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더 빈번하지 싶습니다. 이 말은 나부터 친절하면 손해라는 의미도 슬며시 담겨 있는 거지요.
깊은 산속. 계곡에서 만나는 돌보다 바닷가의 돌이 더 동글동글합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에 뒤섞여 굴러 떨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깎아 버린 결과이지요. 이리 치이고 저리 부딪히면서 말이에요. 지금 내 옆에 있는 이들도 그러고 있는 중일 겁니다. 나처럼. 상류, 중류, 하류, 웅덩이 그 어디쯤에 어떤 형태로 머물러 있는지가 다 다를 뿐이겠지요. 뾰족한 세상, '우리'끼리라도 좀 동글동글해지자, 고 외쳐봅니다.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