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아내 출근길에 동행해주고 돌아왔다. 주방에서 커피 한잔을 타서 안방 옆에 달린 베란다에 앉았다. 이 베란다는 내가 직접 몇 해 전에 꾸민 공간이다. 우리 집에서 가장 미적 감각이 뛰어난 아들이 선택한 짙은 그레이칼라의 페인트를 칠하고, 옅은 그레이 러그를 깔았다. 천장 조명에 키 큰 스탠팅 조명도 오른쪽 구석에 하나 세워 뒀다. 안방 벽을 등지고 커브 의자에 앉아 암막 커튼이 쳐져 있는 창 쪽을 바라본다. 오늘같이 추운 날에는 온수 매트 온도 다이어를 3-4 사이에 맞춘다. 작은 책상 위에 노트북하고 연결된 모니터. 유튜브에서 무지막지하게 긴 스벅 BGM- 6시간이 넘는 영상이다. 이런 걸 만든 분들은 정말 존경스러워, 무조건 구독을 누른다 -을 틀었다. 천국이 따로 없다.
이 집에 이사를 온 뒤 줄곧 여름에는 늘 베란다에서 잠을 잔다. 아니 늦봄부터 가을 중간까지다. 매트를 틀지 않아도 되니, 아내 눈치도 보지 않는다. 그러면 가끔은 어릴 적 살았던, 내 몸이 기억하는 '우풍'있는 집의 상쾌함을 느낀다. 우풍은 경상도 사투리다. 경상도 출신 아버지가 늘 즐겨 쓰시던. 등은 따뜻한데, 얼굴은 선선하고 가끔은 코끝에 쨍하니 매서운 밤공기를. 베란다에 안방이 딸려 있다고 보는 게 더 맞다. 코로나 전 친구네 가족이 놀러 오면 기다란 두 형제가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엄마, 아빠 옆에서 서로 자려고 하는 곳이다. 어제 정오 무렵, 한선생님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전근 가야 할 학교에 교무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한선생님은 전화를 하면서 어딘가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전화기 밖으로 뛰쳐나올 것처럼. 심각한 코로나 확산세에 겨울 내내 이어진 공사도 완료가 되지 않아 이번 주 출근이 어렵단다. 먼저 묻지 않았지만, 올해 처음 부장교사를 맡아 잘 몰라 그런다는 말을 몇 번을 한다. 많이 긴장되고, 걱정되는 느낌이다. 그 마음 나도 조금은 알 것 같다. 지금 학교에서 십여 년을 넘게 그렇게 살았다. 밤낮없이, 방학 없이. 친구들이 가끔 '방학 있어 좋겠다'라고 할 때가 있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이런저런 설명을 하면서 '좋지 않다'를 강조하려고 애썼던 것 같다.
그러나 요즘은 친구들도 묻지 않는다. 나도 설명하지 않는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저 눈빛으로 동의한다. ' 너도 그렇지?'하고. 오십이 넘으면서 어렴풋이 체험하고 살고 있으니까. 나무가 꽃을 피우는 것도, 열매를 맺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거라는 것을. 그건 그렇고. 갑자기 덤같은 사흘이 생겼다. 차 트렁크에는 커다란 종이상자 - 드라마에서 첫 출근할 때 보다, 전근 올 때, 회사 그만두고 나올 때 달랑 하나 들고 있는, 바로 그 상자 같은. 다이소에서 5천 원 주고 사서 조립했다 - 두 개가 자리 차지 하고 있다. 내심 안도감이 들었지만, 전화를 돌리고 있는 분의 사정 때문에 마음이 그리 편치는 않다. 나도 수없이 그 역할에 있어서 그런지, 마음이 아리다.
그 시간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 문제를 출제하기로 했다. 요즘은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1차 지필평가, 2차 지필평가라고 부른다. 고등학교, 그것도 대한민국 고3을 책임(?) 져야 하는 입장에서 좋은 문제를 자주 만들고,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잘 풀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신뢰하고, 좋아하고 따른다. 정작 나한테 주어진 '문제'는 잘 풀지 못하더라고, 일단은 그게 우선이다. 요즘도 방영이 되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출근' 버전이다. 하루하루 밥벌이를 위해서라도. 이 대목에서 갑자기 그 대사가 떠오른다. 한참 빠져 봤던 드라마 '라이브'에서 배성우가 울면서 외쳤던. ' 내 사명감은 누가 가져갔습니까?'
어느 직업에서건 모멸감, 죄책감, 쓸모없는 인간.... 뭐 이런 취급을 받는 대목대목들이 있지 싶다. 지금 교직 전 일반 직장에 있을 때를 떠올려 보더라도. 교사에게 아마 그와 비슷한 것이 '재시험'이라는 새음절이지 싶다. 특히, 고등학교에서는. 의외로 시험 울렁증을 가진 교사들이 많다. 시험 출제 기간을 포함해서 평가가 끝날 때까지 서로 예민해진다. 학생들만 그런 게 아닌 건 분명하다. 이 직업만의 특성이기도 하다. 요 이야기는 나중에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기분 좋게 카페인에 취해, 커피를 한잔 더 하고, 스벅 BGM이 다시 시작된 걸 느끼면서 화면에 떠 있는 여러 개의 창들 중에서 메인 한글 파일 저장버튼을 꾸욱 눌렀다. 아니 누르려고 했다. 그런데 순간 화면에서 한글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심장 속 카페인이 혈관을 타고 목덜미를 지나 머리로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열한 시가 넘어갔다. 백업을 받아 놓은 파일들을 하나씩 열어 봤다. 2개의 USB에 있는 파일, 구글 드라이브에 올라가 있는 파일들을 차례차례. 그럴 때마다 같은 팝업이 떴다. '손상된 문서의 내용을 복구할까요?'. 당연히 '복구'하고 정중하게, 다급하게 눌렀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복구에 필요한 정보가 손상되어 문서를 복구할 수 없습니다'라고 팝업창이 날름거렸다.
이것저것 찾아보다 자정이 다 되어 갔다. 뭘 확인하라는 거지?라고 '우풍' 심해진 베란다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자기한테 스스로 말을 걸기 시작하면, 멘털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데 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결국 '확인'의 맥락을 이해하고 말았다. '아, 돈을 들이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어제 파일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지. 흠흠 괜찮아. 다시 정갈하고, 맛깔라는 문제를 만들어 보면 되지'라고 스스로 다짐하셨습니까?를 확인하라는 것이라는 것을. 사정을 모르는 열일곱 딸이, 나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거실에서 책을 보다 베란다로 달려왔다. 그리고는 말했다. '아빠, 오늘 나랑 같이 잘까?'.
어제 퇴근하는 아내 픽업을 가면서 나 스스로 약속했던 꽃다발을 샀다. 컨퍼런스를 기획하고 이끌면서 애쓴 아내와 그동안 함께 카풀할 수 있었던 아내와의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오늘 아침 새삼 안방 옆에 달려 있는, 안방을 거느린 베란다가 참 좋다. 이 글을 쓰기 전 미련에 파일들을 하나씩 천천히 살펴봤다. 살아 있는 파일과 손상된 파일이 몇 문제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손상된 게 파일이어서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더 꼼꼼하게 보면서 괜찮은 문제를 만들어 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이 글을 '발행'하고 다시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