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22 +1일

by 정원에

어제와 같은 시간, 같은 도로를 아내와 같이 달렸다. 오늘은 아내를 마지막(?)으로 태워 출근을 도와줄 수 있는 날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문득 라디오에서 '2022년 2월 22일'이라고 하는 디제이의 멘트가 귀에 와 닿았다. 사연속에서 다들 오늘이 각자 '어떤 의미'인지를 말하고 있었다. 예비 2번으로 대학에 합격한 대학생, 2002년 2월 22일에 오늘 제자들을 만나자고 약속한 퇴임한 선생님, 큰 교통 사고로 사흘만에 의식에서 깨어난 날이 어느 해 2월 22일이었다는 여자분. 나도 잠깐 생각해 봤다. 오늘이 나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지 하고.


우리 부부는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그러다 어느덧 이제 둘 다 정년까지 10여년 정도 남았다. 내가 몇년 정도 더 시작이 빠르다. 지금 아내가 근무하는 지역으로 팔구년을 - 물론 심리적으로는 23년이다 - 아내의 출퇴근을 같이 했다. 아니, 할 수 있었다. 평생 운전기사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팔자를 타고 난 아내는 단단한 마음을 먹고 몇년전에 면허를 땄지만, 그 이후에도 내가 운전해주는 게 편하다 했다. 일상에서도 속도감을 나보다 즐기지 않는다.


그런데 내일부터 내가 다른 지역, 새로운 학교로 출근을 해야 한다. 23년을 가득 채우고, 24년째 되는 올해. 세번째 직장이지만, 가장 나에게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지만, 가장 오래 근무했다. 내일 출근하는 학교는 같은 재단내에 있는 학교지만, 20여년이 넘으면서는 이런 저런 기회와 타이밍으로 인해 몇년이 늦추어졌다. 4-5년에 한번씩 학교를 옮기는 아내보다 옮기는 게 더 긴장되는 이유이다. 이제 남은 십여년의 교직 생활을 마감해야 하는 학교가 되기 때문에.


오늘 뻥뚫리는 4차선 도로가 유난히 막혔다. 모든 차선이. '사고 났나봐'하고 아내가 먼저 외쳤다. 어제 대선 토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내는 어느새 오른손으로 자기 시야를 스스로 가리고 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 멀리서 가드레일이 도로 바깥 담장쪽으로 휘어져 있는게 보였다. 바로 앞 이정표도 허리가 꺾여 도로 바닦을 보고 있었다. 검은색 승형차가 뒷부분이 운전석까지 밀려 들어가 있었고, 적재함에 많이 녹슨 오래되어 보이는 트럭이 그 앞쪽에서 비상등을 켜고 기우둥하고 있었다. 마치 어쩔 줄 몰라 하는 술취한 주정뱅이 같았다.


언제나 아내의 부탁을 받으면, 차를 가지고 여기 저기로 픽업을 갈 수 있었던 이유는 비슷한 동선에 위치한 학교에 서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나 나타나 도와주는 홍반장까지는 아니었지만, 남매를 키우면서 수많은 비상 상황에 대체로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게 참 고마웠다. 하지만 옮기는 학교는 모든 게 낯설다. 지역도, 사람도. 그래서 그 낯설움이 설움이 되지 않고, 익숙함으로 바뀌는 시간 동안은 적어도, 아내를 위해 짜잔하고 나타나는 흑기사가 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 아쉬움이 가장 크게 드는 아침이다.


룸미러 뒤로 도로를 꽉 메운 차 사이를 노란 경광등을 요란하게 떨면서 렉커가 씩씩거리면서 달려 온다. 그 한참 뒤를 경찰자가 조심조심 따라온다. 차들이 모세의 기적을 일으키며 렉커의 순항을 도와주는 틈을 놓칠세라 경찰차가 애써 빠져 나오는 모습이 멀어진다. 자동차 전용 도로를 내려왔다. 그러다 문득, '내일은 몇시쯤 출발해야 할까?' 라고 생각이 들었다. 시속 30km의 이정표가 거만하게 내려다 보고 있는 아래를 죄지은 사람마냥 살금살금 지나고 보니 아내의 학교 정문이었다.


'이따 퇴근 시간에 올께. 수고해'



지난 주 금요일. 친구를 만나 밥을 먹고 온 딸이 우리 부부를 만나자 마자 사색이 되어 말했다. 울먹거리면서. '방금 00이 한테 문자가 왔는데, 00이 엄마가 확진이래요'. 금토일을 마스크 쓰고, 일회용 장갑을 끼고 작은 방에 스스로 갇힌 딸이, 어제 그랬다. '나오니까 너무 좋다'라고. 다행히 00이도, 딸도 모두 음성이었다. 밋밋한 일상을 유지한다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괜찮은 일이라는 건 우리 모두가, 아니 전 세계 사람들이 몸소 느끼고 있는 거라는 걸 새삼 생각하게 된다. 2년마다 옮겨다니는 절친도, 4-5년마다 옮기는 아내도 나를 걱정해 준다. 자주 옮겨봐야 자가면역(?)력이 커지는 데 하면서.


라디오에서 흘러 나온다. 30년 교직 생활을 마치며 퇴임하는 날이 오늘이라고. 2022년 2월 22일. 나에게는 23년의 마지막 날이면서 첫날이다. 아내 대신 라디오와 이야기를 하면서 출퇴근을 해야 하는 전날이다. 십여년뒤 나도 라디오에 같은 사연을 건강하게 쓰고 있으면 좋겠다, 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더불어 모두들 조금만 속도를 늦추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아내를 만나기 전, 오후 퇴근길에 꽃다발을 하나 사야겠다. 우리 가족, 그리고 모두의 평화롭게 밋밋한 일상이 유지될 수 있도록 기원하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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