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새

[ 언어와 나의 세계 ] 94

by 정원에

숲 속에서 가만히 있다 보면, 흔히 날개를 가졌다고 ‘반드시 하늘로 솟구쳐야 한다’는 생각은 착각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하루 종일 하늘을 나는 새는 없다. 새들은 비행하는 시간보다 날개를 접고 나뭇가지에 앉아 쉬거나, 둥지를 짓거나, 깃털을 다듬는 시간이 더 길다.


날개는 하늘을 날 때도 쓰이지만, 비를 피하기 위해 몸을 감싸거나 균형을 잡기 위해 펼칠 때도 쓰인다. 심지어는 비행 중에도 날개는 펼쳐져 있을 뿐 움직이지 않을 때도 많다.


그렇다. 날개가 있다고 항상, 높이 날아야 하는 건 아니다. 날개를 잠시 접어두고 숲의 향기를 맡는 것도 날개의 주인이 누릴 수 있는 권리다. 날개는 가끔 접어두어도 괜찮은 ‘가능성’이다.

어떤 새는 독수리처럼 구름 위를 날지만, 어떤 새는 덤불 속을 바지런히 뛰어다니기만 한다. 날개를 다쳐 잠시 날지 못하는 새도 있고, 갓 태어나 아직 나는 법을 모르는 아기 새도 함께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덤불 속을 뛰어다니는 뱁새를 보고 “너는 높이 날지 못하니 새가 아니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날 수 있어야만 새인 것은 아니다.

남들이 우러러보는 높은 나뭇가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혹은 지금 당장 날아오를 힘이 없다고 해서 새라는 존재의 본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나뭇가지에서 내려와 땅에 발을 딛고 있어도 새는 온전히 새다. 새의 ‘본질’은 높이가 증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평생 한 나뭇가지에만 머물러서는 새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은 ‘능력’이 아니라 ‘생명력’에 대한 이야기다.


아무리 화려한 날개를 가진 새라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발을 떼지 않고 한 나뭇가지에만 붙어 있다면?


비바람이 몰아쳐도, 계절이 바뀌어 잎이 다 떨어져도 꼼짝 않고 그 자리에만 있다면?


숲 속의 다른 동물들은 그 새를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라 ‘나무의 옹이’나 ‘잘 만들어진 장식품’으로 착각할지도 모른다.

한 나뭇가지에만 머무른다는 것, 그것은 안전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음을 포기하는 것이다. 발톱이 나무껍질에 박혀 화석이 되어가는 것과 같다.

진정한 새의 조건은 꼭 창공을 가르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적어도 엉덩이를 들썩여 바로 옆 가지로 폴짝 뛰어 옮겨 가는 용기가 '나'를 나무의 부속품이 아닌 ‘자유로운 새’로 증명해 준다.

지금 앉아 있는 그 가지, 혹시 너무 오래 머물러서 발이 저리지 않은가?

날개를 활짝 펴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은 딱 한 뼘만, 옆 가지로 자리를 옮겨볼까?


비상(飛翔)은 선택이지만, 이륙(離陸)은 생명의 의무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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