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오늘은 아니야"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 PART ONE>

by CINEKOON


아마도 에스피오나지 장르는 호러 장르와 더불어 제작 시기상 시의성을 가장 많이 타는 장르일 것이다. 호러 장르가 그 안의 한 많은 귀신이나 정신 나간 연쇄 살인마를 매번 다르게 대상화 해내는 것처럼, 에스피오나지 장르 역시 그 안의 안타고니스트를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변해가는 국제 정세를 매시기 반영해왔다. 미소 양국 간의 관계가 그 이름처럼 살벌하게 얼어붙었던 냉전 시기 때는 <007> 시리즈를 필두로 한 자유주의 진영의 수퍼 스파이들이 공산주의자 악당에 맞서 세계 평화를 지켜냈고, 소련이 붕괴한 이후에는 그 부스러기를 먹고 사는 제 3세계의 독재자들을 축출한답시고 남의 나라 영토에서 마구 뛰어놀았다. 그리고 2001년 9월 11일에 뉴욕 세계 무역 센터가 무너지며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 이후엔, 미국 국적의 에스피오나지가 스스로의 모국인 미국을 악의 세력으로 표현하기도 했었다. 대표적인 예가 <본 아이덴티티>와 그 이후 시리즈. 그렇게 소련 빨갱이와 제 3세계의 파쇼들, 각종 테러분자, 그리고 심지어는 일견 정의로워보였던 미국까지도 악역으로 상정했던 에스피오나지 장르의 역사가 그토록 생동감 넘치게 느껴지는 건 실제 우리네 역사가 그래왔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7편, 그것도 굳이 'PART ONE'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장대한 서사를 약속한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의 주적은 누구인가. 극단적 인종주의를 계승하려는 네오 나치 세력? 아니면 ISIS로 대표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그도 아니면 이전 시리즈가 설정해뒀던 압도적 힘을 가진 무정부주의자들? 흥미롭게도, 그 부분에서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은 SF 세계에 발을 디딘다. 그렇다. 영화가 새로운 악당으로 골라잡은 것은 다름 아닌 스스로 학습하고 사고하는 최첨단 AI고, 또 영화가 개봉된 시기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AI가 우리네 삶을 실질적으로 위협할 수도 있단 위기감이 도사리고 있는 그 문턱 어딘가다.


실제로 영화 속 새 악당 역할로 부임한 AI, 그러니까 엔티티는 주인공 에단 일행을 손쉽게 위기로 몰아넣는다. 시리즈 내내 귓속에 넣은 초소형 무전기로 배후의 벤지와 목소리를 주고 받으며 탈출로를 찾아 달려갔던 에단. 그랬던 그를 엔티티가 엿먹이는 방법이 매우 간단하다. 그냥 벤지의 목소리와 그 톤을 복제해 탈출 경로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그저 에단에게 들려주기만 하면 끝인 것이다. 물론 이처럼 AI나 고도로 발달된 기계 장치가 인간의 목소리를 흉내내 소름 끼치게 만드는 장면은 그전에도 있어왔다. 왜, <터미네이터 2>에서도 T-1000이 똑같이 하지 않는가. 하지만 <데드 레코닝>의 그 장면이 더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게 2023년 지금 시점의 영화 속 묘사이기 때문이다. 90년대에 <터미네이터 2>를 봤을 때만 해도 그같은 묘사는 "우와, 미래 언젠가는 진짜 저렇게 될 수도 있겠구나~" 정도에서 그쳤다. 하지만 각종 딥페이크 영상으로 인한 가짜 뉴스들이 난무하고, 할리우드의 배우와 작가들이 AI에 맞서 총파업을 벌이고 있는 2023년의 바로 지금 이 시점에서 보는 그 묘사는 '언젠가는'이 '지금부터'로 변모하는 와중이기 때문에 더 두렵다.


영화를 보기 전 AI가 주요 악역으로 등장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나는 <다이하드 4.0>이나 <이글아이>, <분노의 질주 8> 등에서 묘사되었던 그런 디지털 테러들이 이 영화의 주된 액션 스펙터클로 보여질 줄 알았다. 디지털로 세상만사 모든 게 연결되어버린 현 시대를 그 자체로 무기삼아 누군가의 통장 잔고를 일순간 0으로 만들어버리거나, 도처에 깔린 CCTV들 화면으로 주인공을 끝까지 추격한다거나, 자동차 추격전이 벌어지는 와중 사거리의 신호등을 모두 초록불로 만들어버려 교통 흐름이 꼬이게끔 만든다거나 하는. 하지만 <데드 레코닝>은 이미 질리지 않았냐는 듯 그같은 묘사를 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가 골라잡은 것은 운명론이다. '어차피 다 그렇게 되게끔 되어 있어'라는 운명론적 접근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무력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당신이 무얼 원하든, 그래서 얼마나 발버둥치든 상관없이 결국엔 다 그렇게 된다는. 고로 지금 들이는 힘과 노력은 결국 다 쓸모 없을 뿐이라는. 최첨단 AI 엔티티는 구글의 알파고가 초당 N억번의 빠른 연산으로 상대가 대국에서 어떤 수를 놓을지 미리 예측해 매번 바둑에서 이겼던 것마냥 영화 속 인간 주인공들을 따돌리고 자빠뜨린다. 기계가 예측하다못해 거의 지배한 듯한, 아니. 아예 AI가 만든 듯한 운명 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인간들. 하지만 그에 맞서는 인간측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겐 톰 크루즈가 있다. 대한민국에 이세돌이 있었다면 할리우드에는 톰세돌, 톰 크루즈가 있었던 것이다.


톰 크루즈는 언제나 맨 파워, 그러니까 인간의 힘을 보여주고 과시하는 것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다. 그는 관객들이 더 몰입하고 즐길 수만 있다면 기꺼이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좁고 높은 길을 마구마구 달려왔다. 높은 마천루를 맨손으로 올랐고 까짓거 이륙하는 비행기에도 직접 매달려봤다. 일개 인간은 AI와 기계에 비교해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몸이 단단하기로서니 기계를 이길 순 없고, 조금 똑똑하기로서니 초당 N억번의 연산이 가능한 AI에 비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아름다움이 있다. 한계를 알면서도 용기를 내어 조금씩 진군해나가는 아름다움. 한계가 있기에 그걸 넘을 수도 있다는 것. 아마 톰 크루즈도 그걸 알고 있기에 오토바이 탄채로 절벽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것 아닐까? AI를 탑재한 기계가 아니라, 분명한 한계가 존재하는 일개 인간이 오토바이 탄채로 절벽에서 뛰어내려야만 어떤 아름다움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말이다.


재밌는 영화지만 아쉬움은 분명 존재한다. 최근 할리우드에서 더 본격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듯한 PART 쪼개기 마케팅은 전체 영화의 리듬을 다소 늘어지게 만든다. 이전 작들에 비해 음악의 힘은 다소 약해진 느낌이고, 무엇보다 비록 헤일리 앳웰이 매력적으로 연기하고 있긴 하나 그녀가 연기한 신 캐릭터 그레이스에 무게감을 실어주기 위해 레베카 퍼거슨의 일사 파우스트가 희생 당한 것 같아 안타깝다. 메인 안타고니스트로서 엔티티는 강대하게 느껴지나, 실질적인 행동대장으로서 그의 하수인인 가브리엘은 그 카리스마가 약소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믿음직한 톰 크루즈의 얼굴로 관객들 마음을 사로잡는다. AI와 기계에 맞서는 인간측 대표로 톰 크루즈를 선임할 수 있다니, 이는 우리에게 큰 행운이야! 최근 <탑 건 - 매버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인간 파일럿들을 교육해 전장에 내보내는 대신, 이제는 AI 기반 드론 전투기들을 활용해 전투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겠다는 미 해군의 입장. 그러면서 무인기 예찬론자인 해군 소장 케인이 말했다. "이봐, 매버릭. 세상의 변화는 필연적이야. 이제 너희 같은 파일럿들은 모두 멸종하게 될 거라고." 그리고 이에, 톰 크루즈의 얼굴을 한 매버릭의 대답이 참으로 걸작이었다. "아마 그럴테죠. 그런데 그게 오늘은 아닙니다."


영화 안에서나 밖에서나, 톰 크루즈는 '그 날이 아닌 오늘'을 위해 뛰고 또 뛴다. 인간의 육체와 실제 스턴트로 빚어낸 액션의 미. 만약 미래에 스카이넷이 실존한다면, 그들이 터미네이터를 과거로 보내 암살하고자 하는 인간측 대표 영웅은 아마도 톰 크루즈가 아닐까. 톰세돌을 거친 톰 코너. 그가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언젠가 극장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들이 주머니 속 조그마한 화면만으로 영화를 보는 시대가 오겠지. 화려한 CGI가 난무하고 간결한 AI가 각본부터 제작까지 영화의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시대가 오겠지."


"하지만 그게 오늘은 아니야."


Mission-Impossible-–-Dead-Reckoning-Part-One.jpg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 PART ONE> / 크리스토퍼 메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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