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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Mar 15. 2024

12월은 5월을 알지만
5월은 12월을 모른다

<메이 디셈버>


사랑에는 국경도, 세월도 없다고들 말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자기들끼리만 좋다면야 연애하고 결혼하는데에 서로가 띠동갑이든 뭐든 그게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아니면 하다못해 십이간지를 두 번 돌아 띠띠동갑이라 할지라도 그게 진심이라면 여자가 연상이든 남자가 연상이든 간에 할 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 미성년자인 14살 소년과 36세 여성의 사랑은 안 되는 건데? 어차피 우리의 조선 시대나 저쪽의 중세 시대 땐 다 가능했던 일들 아닌가? 그 때는 열두살이나 열네살에도 막 결혼하고 그랬잖아? 굳이 지금이라고 안 될 게 뭔데? 


<메이 디셈버>는 그에 대해 생각보다 심도 깊은 답변을 내놓는다. 역시나 서로가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깟 나이 차이야 아무래도 상관 없지. 하지만 영화의 제목이자 서구권 관용구가 표현하고 있듯이, 12월(December)은 5월(May)을 아는 반면 5월(May)은 12월(December)을 모른다. 그게 우리 사회가 합의한 이유이고, 또 <메이 디셈버>가 내놓은 답인 것이다. 


5월의 입장에서, 당장 지금의 사랑은 '진짜'일런지도. 근데 감정이란 대개 반짝이는 것이라 금방 시들기 십상이고, 설령 그게 오래 이어진다 해도 그를 위해 포기해야할 것들을 지금의 5월은 모르기 마련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그만큼 청춘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시절이다. 최대한 많이, 그리고 또 다양하게 경험들을 축적시켜 놓는 시기. 그래야만 이후 삶에서 중대한 결정들을 해야할 때마다 현명하게 할 수 있기에. 그러나 24살 연상 그레이시와 바로 결혼하게 된 조는 그럴 기회를 모조리 박탈 당했다. 그래서 그는 서른여섯의 성인이 된 이후에도 아들에게 대마초를 배운다거나 TV 앞에 멍하게 앉아있는 등 아직도 유아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문제는 12월에게 있다. 12월은 5월이 그럴 수도 있는 시기라는 것을 모조리 알고 있었다. 그녀는 5월이 살아보지 못한 6월부터 11월까지 모두를 뚫고 왔었거든. 그런데도 그녀는 5월의 그러한 기회를 알고서도 모두 박탈해버렸다. 심지어 5월보다 오래 살아온 12월은 자신의 순수함을 계속 유지해왔음을 부끄럽지 않다는 태도로 대놓고 공고히 한다. 설령 그에 대한 그녀의 그 사랑이 진짜였다 할지라도, 그러면 안 됐다. 아니, 진짜 사랑했다면 더더욱 그러면 안 됐다. 그게 진짜 사랑이었다면 5월의 조가 더 많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길 바라고 또 도와줬어야지. 차라리 나중에 그가 성인이 된 이후에 프로포즈를 하든지. 


그러니까 이건 사랑이 아니라 그냥 집착이었다고 볼 수 밖에. 언제나 내 옆에서 나를 위로해주길 바랐던 집착. 12월은 그렇게 5월을 사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무수한 자기합리화와 가스라이팅을 무기로. 그리고 그렇게 사냥 당한 5월은 자신의 성숙기를 제대로 거치지 못해 애벌레에 관심을 기울인다. 번데기를 거쳐 결국 나비가 된 애벌레. 그 나비를 조심스레 바깥으로 날려주던 5월 조의 모습이, 어쩌면 그에게 스스로도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은연한 욕구 아니었을런지. 


<메이 디셈버> / 토드 헤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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