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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Mar 30. 2024

이토록 흥겨운 회자정리 거자필반

<로봇 드림>


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의 어느 한 골목에서 홀로 외롭게 지내던 개. 안 그래도 외로운 도시의 삶인데, 저녁마다 간편식만을 전자레인지에 홀로 돌려먹으며 멍하니 TV만 보는 삶에 어느덧 지쳤던 모양이다. 그렇게 개는 외로움을 달래준다는 로봇을 하나 사들여 직접 조립하기에 이르고, 이윽고 배터리 속 전기를 냠냠 먹고 눈을 뜬 로봇과 순식간에 친구가 된다. 하나에서 둘이 된 삶. 개와 로봇은 서로 손을 맞잡고 뉴욕 중심가부터 그 변두리까지를 탐험하며 홀로였던 일상에 서로를 새겨넣는다.


본격 멜로 장르인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꼭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왜 우리는 서로의 과거에 그리도 집착하는가. 왜 우리는 상대가 과거에 어떤 사람들을 얼마나 어떻게 만났는지에 대해 궁금해하는가. 아니, 궁금해하는 것 자체는 괜찮을 수도 있다. 헌데 거기서 굳이 한 발 더 나아가 집착하고 끝내 사로잡혀 분노 또는 슬픔을 느끼는 이유는 대체 뭔가. '삶'에 대해 저마다의 정의는 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 쓰임새가 '관계 맺고 또 행복해지는 것'에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모두 중고 상품인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저마다의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는 관계 맺고 또 맺음 당하지 않나. 그게 사랑의 형태든 우정의 형태든 아니면 하다못해 의리의 형태든 간에 말이다. 우리는 이미 모두 중고 상품이다. 그런데 대체 왜 특히 연애 시장에서 만큼은 모두가 신품이길 원하고 또 강요하는가.


<로봇 드림>은 나의 그같은 이상을 매우 명랑하고 쾌활하며, 아름답게 보여준다. 개와 로봇은 한 때 서로의 삶에 있어 시원한 여름비가 되어주었으나,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지나는 너무나도 당연스런 자연의 이치로 인해 멀어져간다. 달도 차면 기울고, 마구 퍼붓던 비도 어느샌가는 그치기 마련. 그렇게 개와 로봇의 시간은 끝난다. 물론 거기엔 아쉬움이 따른다. 하지만 회자정리가 있으면 거자필반도 있는 법. 개와 로봇 둘은 각자 저마다의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들여 또다른 시간들을 이어나간다.


헤어진 뒤 한동안 시간이 흘러흘러. 오랜만에 찾아온 다시 만날 기회. 헌데 여기서 로봇은 아쉬움을 느낄지언정. 개에게 있는 힘껏 달려가 안기고 싶을지언정. 끝내는 그러지 않고 그저 개가 자신의 흐름대로 흘러갈 수 있길 그저 지켜봐준다. 서로의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 인연. 그리고 그건 각각 개와 로봇의 새로운 인연들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이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과거가 있지만, 결국 '지금'의 너는 나와 함께 있지 않냐는 생각. 어쩌면 그런 생각들 덕분에, 우리네 삶은 거미줄처럼 자꾸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무언극이다보니, 오히려 더 연출이 중요해지는 영화이기도. 영화 초반부, 개가 느끼는 외로움을 시각적으로 단 한 방에 납득시켜내는 아이디어라든가, 상상에 상상을 자꾸 더하는 로봇의 망상 등에 대한 시각적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또 그래서 좋다. 더불어 계절의 흐름에 따라 우리 모두가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에 매번 느끼는 감성 등이 잘 녹여져 있어 마음을 울린다. 녹음진 산과 들판을 오토바이로 시원하게 달려낸 여름, 누군가가 애써 만든 창밖의 눈사람을 보며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겨울 등. 각 계절을 시각적으로 잘 기워낸 영화라 보는내내 더욱 더 마음이 달뜬다.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더해지는 어스, 윈드 & 파이어의 노래. 이토록 흥겹고 들썩거리는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니. <로봇 드림>을 보며 나는 극장 안에서 엉덩이를 자꾸 들썩 거릴 수 밖에 없었다. 


<로봇 드림> / 파블로 베르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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