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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Jul 01. 2024

영웅의 조건

<하이재킹>

그간 하이재킹 상황을 다룬 영화들은 꽤 많았다. <에어 포스 원>에서는 미 대통령 전용기가 탈취 당하는 상황이었고, <오케이! 마담>은 그걸 한국적인 코미디로 풀어냈었지. 리암 니슨의 <논스톱>은 하이재킹 상황에 추리라는 양념을 가미했었고, <플레인>은 하이재킹 이후 육지에서도 테러와의 전투를 이어내는 작품이었으며, <블러드 레드 스카이>는 심지어 뱀파이어란 소재까지 덧대 하이재킹범들을 오히려 불쌍하게 만드는 시도를 했었다. 이밖에도 <콘 에어>나 <7500> 등의 영화들도 있었으니, 이쯤되면 하이재킹이란 상황이 영화적으로 아주 새로운 소재는 아니라 할 수 있을 터. 

헌데 <하이재킹>을 보며 떠오른 영화는 의외로 하이재킹 영화가 아니었다. 그 많고 많은 선배 하이재킹 영화들을 분명 참고했었겠지만, 그럼에도 <하이재킹>이 가장 먼저 지향점으로 삼았을 영화는 다름아닌 <설리 - 허드슨 강의 기적>이 아니었을까 감히 예상해본다. 물론 <설리 - 허드슨 강의 기적>도 비행기 내부의 상황을 주로 담아낸다. 하지만 그 영화엔 하이재킹 상황이 없다. 그게 테러리스트든 초자연적 존재든 하여튼 뭐든, <설리>엔 민간 항공기를 의도적으로 탈취해내려던 존재 또는 조직이 설정되어 있지 않았다. 근데 왜 나는 <하이재킹>을 보며 <설리>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 밖에 없었나. 

그건 주인공의 행동과 영화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설리 - 허드슨 강의 기적>은 프로페셔널이란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를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였다. 주인공인 기장 설리를 비롯 비행기내의 승무원들, 그리고 국가와 심지어는 우연히 그 시간에 허드슨 강을 지나가고 있던 여러 배의 선장들까지 그 모두가 각자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냄으로써 재난을 이겨내는. <설리>는 딱 그런 영화였다. 어쩌면 직업인이 가져야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 그 태에 대해서 웅변하는 영화였던 것이다. 

<하이재킹>의 주인공 태인도 설리와 비슷한 면모를 보인다. 그는 부기장으로서 갑작스런 위기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언제나 승객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 관객으로서 조금 답답한 부분이 느껴질 만도 한데, 뭐 어찌하겠나. 그 역시도 혼란 가운데 선 인간일 뿐인 것을. 하지만 일개 인간치고는 한 명의 직업인으로서 태인이 행했던 모든 대처들과 모든 마음들이 하나같이 다 올곧게만 느껴졌다. 승객들을 목적지까지 무사히 닿게 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사명이었을 터, 그렇게 태인은 자기희생까지 감내함으로써 그 사명을 결국 완수해낸다. 

그와중 태인이 번민하는 인간이었다는 게 특히나 좋았다. 설리도 그랬다. 컴퓨터 시스템으로 가상 재현한 상황 속에서, 설리는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끝내 모두는 그가 인간일 뿐임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설리에게 무죄를 선언했다. 마찬가지로, <하이재킹>의 태인 역시 컴퓨터 마냥 완벽하게 합리적인 인물이 아니라 더 공감이 갔다. 어쩌면 정말로 그는 실수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상관의 명령에 따라, 그냥 그 항공기의 엔진을 파괴했었다면. 정말로 그랬다면 친한 형이었던 기장도, 그 안의 승객과 승무원들도 모두 북한으로 넘어가지 않았을지도. 하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그 당시 그가 느꼈을 찰나의 번민이 너무나도 이해되었다. 마냥 명확하고 명쾌한 상황이란 흔하지 않으니까. 

승객으로 여러 캐릭터들을 상정해두고도 상황 속에서 알차게 다 써먹지 못했단 점은 아쉽다. 더불어 극의 분위기에 맞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연출들이 가끔씩 튀어나와 위화감도 조금씩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하이재킹>은 끝끝내 자신의 소임을 다 해낸 인간의 뒷모습을 보게끔 함으로써, 심지어는 성스럽게까지 느껴지는 감동 한 방울을 남겨낸다. 영웅이라고 해서 무조건 망토 두르고 하늘을 날아다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너무나도 당연히 여기며 끝까지 완수해내는 인간의 모습이야말로, 영웅의 현신이라 하겠다. 


<하이재킹> / 김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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