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인생 10년>
영화의 제목 그대로, 주인공인 마츠리는 희귀한 난치병으로 인해 향후 10년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예정된 죽음에 남은 생애 나날들을 매일매일 정확하게 셈 해볼 수 있는 삶. 그렇다고 그 10년을 모두 놔버린채 마냥 누워 하릴 없이 보낼 수는 없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취업해 일을 하자니 회사 측에서도 그 병을 걸고 넘어진다. 하물며 취업도 그럴진대, 연애는 더 하다. 다른 누군가의 인생 전부를 뒤흔들기에, 10년 남은 생이란 너무 짧으니까. 그러나 이런 마츠리를 보며, 카즈토는 깨달음을 얻는다. 인생 모든 걸 포기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 바 있었던 카즈토는, 마츠리에 비하면 자신이 배 부른 소리 하고 있었단 걸 알게 되거든.
시한부 설정의 멜로 드라마는 언제나 눈물겹기 마련이다. 그것도 죽음에 예속되어 그나마 남은 삶을 가까스로 움켜쥔 여자와, 한때나마 생을 포기하고 죽음과 맞닿으려 했던 남자의 사랑 이야기라면 더더욱. 실제로 <남은 인생 10년>은 애절한 전개와 연기, 그리고 감성적인 촬영 등을 통해 시시각각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려 든다. 여기에 남녀 한 쌍의 이야기로 눈물을 짜낼 수 없다면 그 시한부 여주인공의 가족까지도 끌고 들어와 어떻게든 울게 만들겠단 태도 역시 한 몫하고.
그럼에도 눈여겨봐야할 것은 영화내내 등장하는 나무들이다. 영화엔 정말이지 많은 나무들이 등장한다. 단순 가로수로써 그저 배경에 지나가듯 걸려있을 때도 있고, 아니면 카메라가 주 피사체로 택해 직접 담아낼 때도 있고. 보통 나무는 성장과 회복을 상징하는 미장센으로 많이 쓰이는데, 특히나 <남은 인생 10년>은 사계절의 모든 범주 내에 내내 걸쳐있는 나무들을 계속 보여줌으로써 그 의미를 더 깊이 끓여낸다. 보통 대서사극이 아닌 이상에야 몇 개월 정도면 끝나는 영화의 프로덕션 기간. 하지만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은 계절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에 있어서는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해, 굳이 고집까지 부려가며 1년여의 기간동안 <남은 인생 10년>의 촬영을 이어갔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그의 전작 <야쿠자와 가족> 역시 기나긴 세월 속에서 풍화되어가는 인물들을 그린 바 있던 작품이었으니 감독의 그 고집을 알 만하다.
이렇듯 사계절 속에서 내내 나무가 출연하는 영화인데, 그 첫 등장이 봄철을 맞이해 벚꽃으로 한껏 만개한 상태였단 게 의미심장하다. 영화의 첫 장면은 마츠리의 병동 지인이 삶을 마감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녀가 마츠리에게 비디오 캠코더를 건네며 "반드시 살아내"라고 이야기했을 때, 그 뒷편 창문 밖으로는 만개해 너무나도 아름다운 벚나무들이 펼쳐져있었다. 병에 걸려 아픈 누군가가 자신의 생을 내려놓을 그 비극적 즈음에, 왜 그 뒷편으로는 벚꽃이 만개해있었을까. 앙상하게 마른 겨울의 나무들이 어찌보면 더 어울렸을 것 같은데 말이다.
결국 영화가 중요시 여긴 건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전달되는 '생의 의지'였기 때문 아니었을까- 되뇌어 본다. 병과 죽음은 분명 아프고 슬픈 것이다. 그치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남은 생애를 어떻게 쓰며 어떻게 보낼까,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 그 생에 대한 의지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에 달려있다. 언제나 말해왔듯, 희망은 조그맣게 점화된채로 전달되는 일종의 성화와 같은 것이다. 전달되고 또 전달되는 것만으로, 또 그 과정 자체로 절대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이지. 그렇기에 어쩌면, 마츠리에게 전달된 그 '생의 의지' 뒷편이 분홍빛으로 희망을 머금은 벚나무들이었다는 건 절대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