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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Apr 11. 2024

제니퍼는 맨몸으로도 셋을 이겨

<노 하드 필링스>


차는 애저녁에 잃었고, 이젠 하나 남은 집까지도 잃게 생긴 매디. 특히 이 집은 몇 해 전 투병 끝에 엄마를 떠나보낸 집이지 않은가. 이 집만은 절대 빼앗길 수 없다. 하지만 돈 나올 구석이라곤 이제 더는 없는 걸. 그렇게 내 집 보전에 절박하던 매디에게, 웬 부잣집에서 뜻밖의 제안을 보내온다. "쑥맥인데다 동정이 분명한 하나뿐인 우리 아들에게, 누구보다 찐하고 아름다운 첫 경험을 선사해주세요!" 대신 큰 돈을 주겠다고는 해서 관심 좀 가져봤는데, 보면 볼수록 이상한 제안이잖아? 까놓고 말해 이제 막 성인이 된 자기네 어린 아들과 섹스 한 번 해줄 여잘 찾는단 소리 아닌가.


<쇼걸>이나 <대한민국 헌법 제1조>처럼 주인공이 본격 성 산업 종사자로 나오는 영화도 아니다보니, 이 영화의 주인공인 매디 역시 처음엔 이 제안을 두고 "전 성 산업 종사자가 아닌데요?"라고 반문하긴 한다. 아니, 아무래도 그렇지 않은가. 21세기의 지금 이 시점에서 로맨틱 코미디의 도입부로 보기엔 좀 불편한 전개 아니냐고. 하지만 제니퍼 로렌스의 얼굴을 한 매디는 딱 그 한 마디로만 반문한채, 더는 토를 달지 않는다. 그녀는 그냥 그 부모들이 부탁하는대로 발 벗고, 아니 옷 벗고 나선다. 그런데 살짝 피어오르던 일말의 불편함과 불쾌함이 그 이후부터는 모두 휘발된다. 그것은 왜인가. 


어쩌면 로맨틱 코미디야말로 출연 배우의 매력이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는 장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어떤 장르 영화에서나 출연 배우의 매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드라마 장르에서는 연기만 곧잘 하면 어느정도 먹히는 지점이 있다. 액션 장르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키아누 리브스나 실베스타 스탤론처럼 영화 바깥에서도 액션의 역사를 쌓아온 배우가 출연하면 훨씬 더 잘 먹히지. 그럼에도 액션 장르 역시 기본적으로 출연 배우가 액션 자체만 잘 소화해내기만 한다면야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반면 로맨틱 코미디는 그렇지 않다. 어쩌면 비슷한 가락이라 할 수 있을 멜로 장르 보다도 훨씬 더 배우의 매력을 탄다. 어쩌면 로맨틱 코미디가 대개 호감적 요소와 비호감적 요소를 마구 뒤섞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부분에 있어 <노 하드 필링스>의 제니퍼 로렌스는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자신만의 매력으로 짐짓 불편하고 불쾌하게만 느껴질 뻔했던 이 영화를 구해냈다. <윈터스 본>과 <헝거 게임> 시리즈를 통과하며, 제니퍼 로렌스는 어느새 '생존'이 가장 중요시 되는 배우로 포지셔닝 되었다. 그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임으로, 그것만 담보될 수 있다면 그 밖의 다른 모든 것들은 그저 죄다 뚫고 나갈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는 장애물이 될 뿐이다. 제니퍼 로렌스는 자신이 구축해온 바로 그 '생존' 방식으로 매디를 빚어냈다. 그렇게 빚어진 매디이기에, 그녀가 누군가의 동정을 떼줘야한다면 그건 분명 그 이면의 절박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관객들은 이해하게 된다. 성매매 자체를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하여튼 적어도 이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서는 그렇게 된단 소리다. 


여기에 이어지는 건 '미친년'과 같은 기질이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을 통해 제니퍼 로렌스는 이미 극강의 '미친년' 캐릭터를 보여준 바 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노 하드 필링스>의 매디는 같은 얼굴을 한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속 티파니의 적자다. 매디의 불같고 행동주의적인 면모는 일반 관객들의 예측을 아득히 뛰어넘어 버린다. 나라면 절대 따라 들어가지 않을 어린 20대들의 파티에도 그녀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데이트 상대의 언행으로 굉장한 모욕을 당했음에도 굳이 상대를 상대하고 또 챙겨준다. 여기에 새파란 젊은이한테 정권으로 울대를 가격당하는 건 덤. 


항상 사랑을 갈구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항상 그 끝을 도망치는 것으로 끝냈던 매디. 물론 그 너머엔 과거 친부에게 받은 상처가 있었지만, 그렇더라도 항상 도망만 치는 매디의 삶은 시나브로 그녀를 죽이고 있었다. 그런 매디가, 퍼시와 시간을 보내며 깨달은 단 하나. 이별을 고하려면 때로는 그것을 직접 대면해야한다는 것. 마주보고 가까워져야 한다는 것.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선 진정 건강한 이별을 성취해내는 매디의 모습이 관객 입장에선 대견해보이기도 했다. 


로맨틱 코미디를 떠나서 그 어떤 영화든 관객들에게 있어 단 한 장면을 남겨냈다면 그건 그거대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노 하드 필링스> 역시 적절한 성공작이었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왜냐면 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이 영화 속에서 제니퍼 로렌스가 홀딱 벗은채 해변에서 웬 찌질이들을 쥐어패는 장면은 절대 잊지 못할 것 같거든. 그 장면은 제니퍼 로렌스의 나체가 아름다웠다거나 흥분되었다거나 하는 이유로 기억되지 않는다. 그냥 엄청나게 웃긴 장면이라서 웃다 기억에 새겨진다. 홀딱 벗은 제니퍼 로렌스가 해변에서 젖은 옷을 채찍삼아 홀로 세 명을 상대해 이기는 기가막힌 액션씬. 제니퍼 로렌스의 매력이 진정 이 장면과 이 영화를 살렸다. 


<노 하드 필링스> / 진 스텁니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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