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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Oct 04. 2024

거대 전쟁의 서막

<조커 - 폴리 아 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나는 비록 그 영화를 재밌게 보긴 하였으나, 이건 마치 <스타워즈>의 골수 팬들이 <라스트 제다이>를 보면서 느꼈을 심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아니면 <에반게리온>의 결말과 비교할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러니까 <조커 - 폴리 아 되>는 전편을 추앙했던 일부 극성 팬들에게 비릿한 일침을 가하는 영화다. 이른바 일부 인셀들의 신약성서가 되어주었던 5년 전의 <조커>. 그리고 자신들의 창조물이 그렇게까지 오해될 줄은 미처 몰랐던 감독과 배우는, 5년 후 속편에 이르러 과거 자신들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폴리 아 되>를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근데 문제는, 전편을 그릇된 영화외적 방향으로 추앙했다고 해서 그게 꼭 나쁜 팬이냐는 것. 그런 그들을 매도해 영화 한 편으로 단죄하려 했다는 게 영 찜찜하긴 하다. 여기에 그런 걸 다 떠나서 영화가 지루한 것도 문제라면 문제고. 


<폴리 아 되>는 지저분하고 우울한, 굉장히 어두운 이야기를 다뤄낸다. 그야말로 관객들을 시종일관 압박해대는 분위기. 여기에 호아킨 피닉스의 명불허전 메소드 연기와, 연기적으로나 음악적으로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는 레이디 가가 또한 대단하게 느껴진다. 각 개별 장면들의 재미를 논외로 보자면, 그 둘이 맞붙는 순간들에서의 흡인력은 꽤나 상당하다. 특히 리가 피아노 반주를 넣고 여기에 담배 한 대를 꼬나문채로 마치 신내림이라도 받은 듯 온몸을 떨며 개구진 춤을 춰대는 조커의 뮤지컬 장면은 오직 두 배우의 연기만으로 오롯이 발산된다. 


많은 이들이 불호를 표하고 있지만, 영화가 그런 뮤지컬의 구성을 띈 것에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개인적으론 오히려 기대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고담의 미친놈과 미친년 둘이 만났다는데, 뮤지컬이야말로 극중 인물들의 내면을 양적으로 보여주기에 특화된 장르 아닌가. 다른 이들도 아닌 바로 그 조커와 바로 그 할리 퀸의 정신세계 뮤지컬. 이걸 기대 안 할 수는 없었던 거지. 하지만 <폴리 아 되>는 뮤지컬적 측면에 있어서도 철저히 미니멀리즘의 기조를 유지한다. 그러면서도 그 둘의 아주 깊은 내면까지는 일부러 도달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폴리 아 되>의 뮤지컬은 <라라랜드>처럼 감정적으로 내밀하지도, 그렇다고 <위대한 쇼맨>처럼 화려한 볼거리로 무장하지도 못했다. 촬영과 조명 등의 분위기로는 관객들을 감아대지만 정작 그 안의 볼거리와 들을거리로는 흥분시켜내지 못하니 제아무리 이게 의도라 해도 실패한 의도처럼만 느껴진다. 


뮤지컬 넘버들을 빼고 보아도 영화는 지루하기 짝이 없다. 아캄 교도소 안에서의 장면들은 대개가 지지부진하고 유사하며, 아서가 법정으로 출두하는 장면들 또한 반복적으로 등장해 관객들의 한숨을 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폴리 아 되>엔 5년 전 <조커>에서의 상승 같은 추락의 쾌감이 전무하다. 5년 전, <조커>는 아서가 조커로 각성하는 모습을 통해 관객들에게 기묘한 카타르시스와 서스펜스를 제공한 바 있었다. 헌데, 전편을 통해 이미 각성한 이후임에도 불구하고 <폴리 아 되>의 아서는 조커로서의 정체성을 가까스로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심지어 종국에는 조커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버리기까지! 그가 조커 아닌 아서로서 살아가기로 내려놓으면서, 리와 그 추종자들은 모두 떠나간다. 여기에 폴리 아 되, 그러니까 감응성 정신병으로 새로운 조커의 탄생을 암시하면서 우리들의 주인공 아서를 야박하게 죽여버리기까지.


아서의 그 선택과 그로인한 결말은 전편을 추앙했던 관객들을 그야말로 엿먹인다. 그러면서 말하지, "조커가 별로 안 나와 지루했다고? 아서가 끝끝내 조커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해 한심했다고? 어이, 그럼 관객들 너희조차도 조커 아닌 그냥 아서에겐 별 관심 없었던 것 아냐?" 마치 제작진이 정말로 염두에 뒀을 것만 같은 그 말은, 어쩌면 그로써 이 <조커> 연작을 완성시켜낸다. 영화외적으로까지 확장해 남루한 이 주인공의 이야기를 완성시킨 작가적 결심. 용감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또 한 편으로는 위험하고 불경하게마저 느껴진다. 


고로 <폴리 아 되>는 전편을 통해 자신이 쌓아올렸던 신화를 스스로 해체하는 작업으로써 존재한다. 다만 여기에 MTV 스타일을 곁들인. 연출과 연기, 촬영과 조명 등에 관해서는 압도적인 풍모를 보여주지만 그 이야기와 주제의식에 관해서만큼은 한참동안이나 논쟁을 불러일으킬 영화. 앞서 <조커>를 두고 일부 인셀들의 신약성서라고 빗댔었다. 그 비유를 이어가자면, <조커 - 폴리 아 되>는 앞으로 벌어질 길고 긴 성전의 단초가 될 또다른 예언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과 인셀 문화, 작가주의와 혐오주의 등의 대충돌. 대부분의 순교자 역할이 으레 다 그러하듯, 아서는 그 죽음으로 말미암아 거대한 전쟁의 서막을 알린 것일지도. 


<조커 - 폴리 아 되> / 토드 필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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