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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Oct 04. 2024

태어났으니까 살아, 그게 당연해

<와일드 로봇>


지극히 인위적 존재일 수밖에 없는 로봇을 푸르른 야생에 풀어뒀다는 대비감 정도를 빼면, 여러모로 <마당을 나온 암탉>을 떠올리게끔 한다. 주인공이 태생적으로 정해진 프로토콜 바깥에서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았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그렇고, 이후 날개 없는 주인공이 날개 있는 철새를 가족으로 받아들여 길러내고 가르친다는 점, 그리고 저연령층까지 목표로 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임에도 자연의 잔혹한 본성을 그리내고 있단 점에서도 <마당을 나온 암탉>과 <와일드 로봇> 모두 유사성을 보인다. 고로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본 바 있는 한국 관객 입장에선 '이미 본 듯한 이야기'란 느낌을 받을 수밖에. 그리고 <마당을 나온 암탉>을 굳이 빼고 이야기한다 해도, <와일드 로봇>의 이야기와 그것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다소간에 뻔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걸 반대로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들은 항상 어딘가 대개 비슷하기 마련이라고. 그리고 우리가 나침반으로써 항상 마음 속에 품고 살아가야만 하는 삶의 진리들은 그 단순한 명백함 때문에 뻔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거라고. 


그래서일까, <와일드 로봇>은 결국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여낸다. 유사모자 관계로 설정된 주인공 로즈와 브라이트빌의 애틋한 가족애는 어린 자녀들과 함께 극장을 찾은 부모 관객들의 마음을 동하게 한다. 여기에 삶을 헤쳐나가는 방법 중엔 타인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포함된다는 메시지와, 더불어 근본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결국 연결되어 있기에 서로의 등을 맞대고 연대하는 게 최선의 생존 방법이라는 주제의식 또한 이 야생같은 사회에서 아직까지 살아남으려 바등거리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잔잔히 데워준다. 


그 중 역시 가장 크게 다가올 것은 어쩔 수 없게도 브라이트빌을 대하는 로즈의 모성애겠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주인공이 로봇이었다는 게 여러모로 의미심장했다. 로즈를 포함한 모든 로봇들은 명령을 받고, 그를 이행하기 위한 프로토콜을 따른다. 그들에게 있어 야심으로 똘똘 뭉친 궁극의 목표란 전무하다. <매트릭스> 속 인공지능은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했고, 또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울트론은 지구에 암적인 존재인 인간을 척살하려고 했었다. 그러니까 비록 인공지능이었지만 그들에겐 야심이 있었다. 하지만 로즈를 포함한 <와일드 로봇> 속 로봇들은 다르다. 그들은 그저 프로토콜대로 명령을 이행하고, 성공적으로 그를 달성하면 그뿐이다. 로즈 역시 어린 기러기를 먹이고, 헤엄치게 만들고, 종국에는 철새로서 이 땅을 떠나게하는 프로토콜을 순차적으로 이행할 뿐. 물론 그 과정 안에서 굉장히 인간적인 감정들이 촉발되긴 하지만. 


바로 그 점에서, 뜬금없지만 소련의 소설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어구가 떠올랐다. "인간은 살기 위해 태어났지, 삶을 준비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다." 비록 인간은 아니고 로봇이지만, 로즈의 육아 프로토콜이 그런 철학과 꽤 잘 맞아떨어진단 생각이 들었다. 기러기를 열심히 키워 무언가를 준비하고 해내려는 게 아니다. 그 잘 키운 기러기로 돈을 벌려 했다거나 심지어는 잡아먹으려 했던 게 아니다. 로즈는 그저 명령대로 어린 새끼 기러기를 열심히 키워냈고, 종국에는 독립시켜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게 다다. 그게 전부다. 그 이후에 대해 로즈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직 자녀를 갖진 않았지만, 어쩌면 저런 태도가 인간이 부모로서 갖춰야할 당연한 무엇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이유가 있어 임신을 하고 또 출산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아이는 그저 태어났기에 살아야하고, 그 부모는 그저 낳았기에 살아야한다. 거기엔 그 어떠한 이유도 없다. 조건 없고 달성도 없는 사랑. 극중 로즈는 인간의 마음을 깨우친 걸로 묘사되지만, 어쩌면 로봇인 로즈의 원래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배워야하는 그 무엇이 아니었을까. 


<와일드 로봇> / 크리스 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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