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스>
겨울밤의 뉴욕, 한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우발적인 죽음이 일어나고 그에 곤란함을 느낀 사회 고위층의 여자는 은밀히 해결사를 부른다. 해결사 왈, "이 도시에서 나보다 이 일에 더 전문적인 사람은 또 없다." 헌데 그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바로 들이닥치는 또다른 해결사. 그 해결사 왈, "이 도시에서 나보다 이 일에 더 전문적인 사람은 또 없을 텐데?" 그렇게 평생을 고독한 늑대마냥 독자노선으로 일해오던 뉴욕의 두 해결사는 자신들 앞에 닥친 상황을 속히 정리하기 위해 이레적으로, 그리고 타의적으로 하룻밤 듀오가 된다.
그래봤자 나이 차이 별로 크게 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그나마 젊은 쪽의 해결사는 자신 앞에 선 상대를 늙다리 취급하며 한 물 간 노병쯤으로 생각한다. 근데 사실 그 늙다리 노병 해결사도 자신 앞에 선 상대편을 별 노하우도 없는 쑥맥 주제에 일을 그르친다 생각하는 건 매한가지고. 그러니까 그저 상황 때문에 하룻밤을 함께 헤쳐나가게 된 두 늑대의 짧디짧은 모험. <울프스>의 이야기는 그게 전부다. 헌데 별 것 아닌 그 상황과 설정에 생기와 깊이를 더하는 건 조지 클루니, 그리고 브래드 피트라는 두 거물 배우의 존재감. 만약 조지 클루니와 브래드 피트가 아니었다면 <울프스>는 훨씬 더 싱거운 영화가 됐을지도 모른다.
두 해결사는 자꾸 서로를 깎아내리며 상대를 자신보다 하수로 얕잡아본다. 하지만 실상 그 둘은 같은 부류였고, 이 냉혹하고 비정한 뉴욕 뒷거리의 하드보일드 월드 안에서는 그나마 감상적이고 상대적으로 윤리적인 존재들이었다. 죽여야할 대상을 죽이기보다는 살려두려 하고, 고문하고 협박하기 보다는 말로 풀어보려 하고, 잘못에 대한 댓가로 단죄하기 보다는 반성과 해결의 기회를 주고자 했던. 서로 다른 존재라 생각했지만 결국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가까웠던 두 존재에 대해, 조지 클루니와 브래드 피트는 영화외적에서의 친분까지 스크린 안쪽으로 끌어들여 그 맥락에 보이지 않는 결을 더해냈다.
논어에 그런 구절이 있다. 유붕 자원방래 불역락호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멀리서 왔으니 즐겁지 아니할 이유가 없다. 나는 <울프스>의 닉과 잭이 서로에게 그런 존재였다 생각한다. 그 둘은 아마 끝까지 겉으론 인정하려 들지 않겠지만, 그래도 속으론 알았으리라. 고독한 늑대로 혼자 사냥하는 것보다는 자신과 비슷한 다른 늑대 곁에서 함께 사냥하는 게 더 즐겁고 효과적이란 사실을. 그래서 모든 사건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굳이 아침식사까진 같이 하자며 서로에게 은근 질척였던 거겠지.
조지 클루니와 브래드 피트라는 멋들어진 두 늑대의 쿨한 만남. <울프스>는 딱 그거 하나만으로도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