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에서 지내던 어느 날, 나는 굉장히 구체적인 내용의 외모 칭찬을 들었다.
그랬다. 나는 한국인. 눈도 작고 코도 작다. 중동 친구들에 비하면 당연히 그렇다. 그런데 그걸로 나를 놀리거나 한방 먹이려던 의도가 아니었다. 누군가 날 보고 “코가 납작해서 너무 큐트 하다!”라고 외쳤을 땐, 하마터면 오해할 뻔했다. 순식간에 굳어버린 내 표정을 보았는지, 발화자(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난 내 코가 너무 커서 싫어. 너무 여기 ‘턱’ 있는 느낌이잖아. 눈도 아이라인을 지우면 그냥 퀭해 보여.”
인종적 특성이 칭찬이 됐다. 파키스탄에 살면서 예쁘단 소리를 자주 들었다. 또한 많이 들었던 게 하얘서 좋겠다는 말이었는데, 나는 결코 백옥 같은 피부가 아니므로 이 역시 황인종이라서 좋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그래도 내심 기분은 좋았다. 평균의 얼굴 채도를 가진 걸로 미인 대접을 또 어디서 받겠어, 황송했고, 진귀한 경험에 신기해하며 지냈다. 한국인이 드문 도시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뇌피셜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 나에게 이런 설명을 해주었다. 중동 사람들이 피부가 하얀 것을 특히 선망하는데, 백인 국가들과는 우호적이지 않은 역사 덕분에 피부 밝기로 둘째 가는 동양인 얼굴을 매우 좋아한다고. 재미있는 분석이라고 생각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도 그런 경험이 있을지 모르겠다. 중동 국가를 여행하는 도중 별안간 현지인이 다가오더니 “예뻐요~”하고 떠난. 생각해보면 한국에도 있지 않은가. 백인 여자라면 엔간해선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피부과엔 피부를 하얗게 만들어준다는 시술만 여러 가지니 이게 중동만의 미인 기준도 아닐테다.
피부과 시술이 드문 파키스탄엔 '국민 화장품'이 대신 자리한다. 부동의 화장품 판매율 1위, 이름은 ‘fair and lovely cream’이다. ‘예쁘고 사랑스러워지는 크림’이라니. 그 자체로 뭇 여성들이 원하는 모든 것이다. 거창한 이름에 속진 마시길. 이 크림의 효능은 단순하다. 오직 미백이다. 다음, 파키스탄 어머니들의 잔소리 부동의 1위. 예쁘고 사랑스러워지는 크림 발라라. 매일 밤. 잊지 말고. 그렇게 파키스탄의 모든 여자들은 어릴 적부터 하얀 얼굴을 선망하며 자라게 된다.
근데 이게 피부에 잘 흡수되지도 않고 좀 답답한 기분도 들고 해서 안 발랐다가 엄마한테 걸리면 혼났다는 얘기를 친구들에게서 들었다. “난 왜 이렇게 까맣지. 예쁘고 사랑스러워지는 크림 열심히 안 발라서 그런가 봐” 이런 투덜거림도 단골이었다. 어떤 친구는 사촌이 코 축소 수술을 받고 엄청 예뻐졌다고 전해주었다. 파키스탄에선 어렵지만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선 성형수술을 받을 수 있다. 한국엔 압구정이 있고, 중동 세계엔 테헤란이 있다. 코 크기를 아주 잘 줄여준다고 한다. 아담하고 큐트 하게.
얼마 전 뉴스 기사를 통해 ‘예쁘고 사랑스러워지는 크림’의 근황을 접했다. 이 제품을 판매하던 유니레버와 존슨 앤 존슨에서 생산 중단을 선언했단다. 수많은 파키스탄 친구들이 꿈과 희망을 걸었던 크림으로 기억하는데, 이름이 밝은 피부가 우월하다는 인식을 조장하는 이유에서다. 아무래도 최근 터져 나온 BLM 운동과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 따른 조치라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홀로 모든 사람들보다 몇 단계는 밝은 피부의 여자가 된 경험을 해본 나로선, 눈꺼풀이 작아서, 코가 작아서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 나로선, 자주 허상이고, 결코 절대적이지 않은 미의 기준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자주 생각한다. 나는 동양인의 피부 색깔을 부러워하는 중동 소녀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백인의 작은 두상을 부러워하는 한국 소녀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자라나는 소녀들이 정형화된 기준에 자신을 검열하는 것은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