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에 옆팀 팀장님이 화분을 주셨다. 어린 차나무가 심겨 있었다. 모자 벗겨진 도토리 같은 씨앗과 그 곳에서 뻗은 가냘픈 가지 한가닥이 있었고, 이파리도 두어개 붙어있었다. 직접 씨앗에서부터 틔우셨다고 했다.
차나무를 손에 든 퇴근길에 직접 키운 차를 따고 덖어서 마시는 꿈을 조용히 품었다. 정말 녹차 같은 맛이 날까. 비슷하기만 하더라도 해도 유튜브 각.
베란다에 모셨다. 녹차는 광량, 토양, 기후에 따라 맛이 다르다고 배웠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키운 차는 제주도만의 맛이 난다고 했다. 제주도의 태양, 제주도의 토양, 제주도의 풍량이 ‘맛’이 되는 것이다. 와인에서 흔히 말하는 ‘떼루아*’가 차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포도나무가 그렇듯 차나무가 그렇다면, 어떤 식물이든 그런가 궁금한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집 베란다의 ‘떼루아’는 어떨까 생각했다.
그 맛은 아직이다. 어쩐지 녹차는 기대만큼 쑥쑥 크지 않는다. 반년이 넘도록 처음 분양 받았을 그때와 같은 모습이다. 자라고는 있는 것인지, 맨눈으로 확인이 어려워 검색을 해보았다. 세상에나. 녹차를 키워 수확하려면 최소 3년은 걸린단다.
제주도의 한 신생 다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허리까지 오는 차나무가 매우 어린 유년의 상태이며, 10여년 되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느리고, 키우기도 어렵다. 나의 차나무와 함께 분양됐던 형제 녹차들은 모두 진작에 생을 포기했다. 팀원들이 말했다. 햇빛에 탔나봐요. 물을 너무 많이 줬나봐요. 음… 갑자기 왜 이러지.
차 회사를 다니며 기호 음료를 판다는 생각은 자주 하는데, 농산물을 판다는 생각은 잘 하게 되지 않는다. 씨를 뿌리고 나무를 길러 수확하는 것이니, 녹차는 농산물이기도 하다. 여타 농산물과 다른 게 있다면, 너무 느리다는 것. 그리고 난도가 너무 높다는 것. 이렇게나 안크는 녹차가, 백만평이나, 그것도 40년이 넘는 나무들로, 울창하게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 브랜드의 차밭이 어떤 자산인지 되새기게 된다.
곧 있으면 햇차 시즌이다. 겨울을 지내고 틔운 첫잎이 온다. 매년 돌아온다고 생각하지만, 농산물에 이전과 같은 해는 없다. 토양도, 기온도, 햇살도 매년 달라지니까. 보졸레 누보*는 이를 잘 살린 마케팅 사례다.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는 마음을 포섭했으니까.
매년 가장 신선하고 가장 영양소가 높다고 홍보되는 세작. 하지만 내년의 세작을 올해처럼 키울 순 없다. 그렇다면 세작을 매해 다른 한정판 케이스에 담아 팔아볼 수 있겠다. 그 유한한 특별함을 알리기 위해 말이다. ‘녹차가 어떻게 한정판이야’ 생각한다면, 모든 농산물은 한정판이다. 모든 농산물은 ‘차이’다. 반복이 안된다.
녹차를 더 잘 팔 수 있을까?
“올해의 세작은 모두 판매 완료되었습니다.
내년 이맘때쯤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온라인 몰의 품절 알림 문구다.
“올해의 세작은 다 팔렸습니다.
그 차는 이제 없습니다. 우주 어디에도…”로 고쳐쓴다면?
*떼루아: 프랑스어로 '토양'이라는 뜻이지만, 와인을 만들 포도를 재배하는데 영향을 끼치는 모든 요소를 일컫는다.
*보졸레 누보: 프랑스의 보졸레 지방에서 그 해에 수확한 포도로 가장 처음 생산해서 마시는 햇 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