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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재 Feb 21. 2021

글쓰기의 힘이 궁금하다면

책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

저는 꿈을 자주 꿉니다. 잠에서 깨면 신나는 꿈도, 무서운 꿈도, 현실과 밀착된 꿈도 모두 알쏭달쏭해져서 대부분 어떤 이야기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요. 그런데 이번 연휴에 꾼 꿈들은 유독 생생했어요. 일어나자마자 조금 들뜬 마음으로 핸드폰 메모장에 꿈의 파편들을 기록해 보았어요. 저는 거대한 문들로 둘러싸인 유럽풍 목조 저택 같은 박물관에 가기도 했고(문을 하나씩 열어 보았는데 마지막으로 연 문이 - 서울미술관이 야외인 석파정과 연결된 것처럼 - 실외로 연결되어 있었어요. 벚꽃이 흩날리고 바람도 산들산들한 봄 풍경에 저는 쭈그려 앉아 필름 사진을 찍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물에 빠졌다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겨우 탈출하기도 했어요(마치 인간 튜브를 만들듯 물속에서 네다섯이 둥글게 모여 팔과 팔을 지탱해 둥둥 뜰 수 있었어요). 그리고 대학생이 되어 미대 수업을 듣기도 했습니다. 나무들이 가득한 숲 사진을 보고 각자 그림을 그린 다음, 다 완성하지 않은 그림을 들고 소그룹으로 모여 자신의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는 꿈이었어요. 저는 분홍, 보라 등 따뜻한 색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어떤 학생은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나무 몸체에 뾰족뾰족하게 돋은 가시들을 흑백으로 그렸더라고요.


이중 마지막 꿈은 아무래도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 문학상담의 이론과 실제>(진은영, 김경희 지음, 엑스북스 2019)를 읽은 영향인 것 같아요. 이 책은 '문학상담'의 정의와 사례를 다룬 학술서인데요, 꿈을 꾸기 전날 밤 자신이 쓴 글을 타인과 나누는 대목을 읽었거든요.


ⓒ Quint Buchholz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의 표지에는 독일 일러스트레이터 크빈트 부흐홀츠의 1992년 작 <Man On A Ladder>이 실렸습니다. 사다리를 타고 책 밖으로 나온 사람이 보입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그림은 독자 자신과 활자 너머 세상을 더욱더 깊이 이해하도록 이끄는 '독서 행위'를 상징하는 것 같아요. 두 다리는 여전히 책 속에 디디고 있다는 점에서 세상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어 주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같고요. 여러분은 어떤 이야기가 보이나요?


책의 안내에 따라 시를 따라 쓰고 가장 좋았던 시구를 표시해 보았어요.


흔히 이론서라고 하면 딱딱하고 어려운 용어와 주석으로 빽빽한 두꺼운 책을 상상하기 쉬운데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는 "학술서적 읽으면서 콧등이 시큰해지는 경험"이라는 리뷰가 있을 만큼 유려한 문장으로 문학의 치유적 힘을 이야기합니다. 풍부한 사례를 곁들인 문학상담의 이론적 논의를 따라간 후에는 열두 가지 프로그램을 체험해 볼 수 있어요. 필사, 리라이팅, '가나다라' 시 쓰기, 콜라주 시 쓰기 등 상냥한 가이드를 따라간다면 분명 근사한 경험이 될 거예요.

문학상담의 세계로 친절히 안내하는 이 책은 문학작품을 내담자가 자기표현하는 안전한 발판으로 삼아요.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교수인 공저자는 상담과정에서 타인과의 소통을 강조하는데요. 내담자는 문학 텍스트를 토대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글쓰기를 하고 다른 내담자들과 함께 글을 읽게 됩니다. 서로 느낌을 공유하고(피드백) 글을 읽으면서 떠오른 자신의 기억에 대해 나누는(셰어링) 시간을 가져요. 이러한 과정은 내담자가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이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요.


내담자는 은유와 상징, 알레고리와 같은 여러 가지 문학적 표현 형식을 통해서 타자, 사회, 세계를 향해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는 다양한 유희의 방식을 익히게 됩니다. 표현 형식은 고통과의 미학적 거리를 만들어 내면서 글 쓰는 이를 안전하게 세상에 드러나게 합니다. (71-72면)
어떤 것에 대해 쓴다는 것은 그것을 기억해야 하는 부담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줍니다. (87면)
어쩌면 감정을 제대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 감정에 대해 골똘하게 생각하고 충분히 더듬거리면서 말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천천히 더듬거리며 말할 때 작가가 됩니다. (199-200면)


상담에 관심이 없더라도 일기를 쓰면서 마음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은 경험이 있다면, 글쓰기의 힘이 궁금하다면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책의 말미에 수록된 문학상담 프로그램은 혼자 차근차근 따라 해도 좋지만 여럿이 나누면 더욱 풍성할 것 같아요. 독서 모임이나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고 있거나 참여할 예정인 분들에게도 흥미로운 가이드가 되어 줄 책,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입니다.


• 한국일보 인터뷰 고통과 함께 살아가기에 ‘문학은 힘이 있다’

• 정여울 문학평론가 ‘시인-되기’의 기쁨, 트라우마를 치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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