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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재 Mar 21. 2021

포근한 도토리시간,
다가올 우리의 시간

그림책 <도토리시간>

혼자 보내는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계시나요? 저는 왓챠, 넷플릭스, 유튜브 등 영상 매체와 한동안 친하게 지냈는데요. 흥미로운 작품을 만났을 때의 기쁨도 있지만 갈수록 시각적인 피로감을 쉽게 느끼는 요즘입니다. 그래서 <책읽아웃> <김혜리의 필름클럽> <조용한 생활> 등 팟캐스트를 들으며 동네를 천천히 걷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방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시겠지요? 여러분의 공간에서 눈길이 자주 닿는 곳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요. 저는 그림책 <도토리시간>(이진희 지음, 글로연 2019)을 잘 보이는 곳에 꽂아 두었는데요. 색연필로 부드럽게 채워진 그림이 무척 아름답고요, 책을 펼칠 때마다 마음이 잔잔해지는 작품이랍니다.



"아주 힘든 날이면 / 나는 / 작아져" <도토리시간>은 이렇게 시작해요. 고개를 떨구고 있는 사람이 보입니다. 표정은 알 수 없지만 온몸에 힘이 빠진 듯한 모습이에요. 얼굴을 살짝 들면 눈물이 맺혀 있을 것만 같고요. 페이지를 아래에서 위로 넘기면 어느새 촛불보다도 작아진 '내'가 보입니다.


2019년 비플랫폼에서 열린 <도토리시간> 원화 전시. 제 카메라가 원화의 아름다움을 다 못 담았으니 하단의 작가 홈페이지도 꼭 둘러보세요!


'나'는 "희미한 책의 숲속" "기억이 담긴 바다" "심술궂은 고양이 산"을 넘어 계속 걸어갑니다. 다람쥐를 만날 때까지요. 다람쥐가 도토리 뚜껑을 열어주자 나는 자그마한 도토리 속으로 들어가요. 도토리는 작디작으면서도 무한한 세계가 되어 주어요. 오직 나만이 마음껏 굴러다닐 수 있는 너른 들판이 펼쳐져요. 신비로운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창문과 푸른 하늘을 조용히 바라볼 수 있는 휴식처도 되어 주어요. 자신만의 '도토리시간'을 누린 후 조금 심심해진 나는 스스로 뚜껑을 열고 밖으로 나옵니다. 숲속에는 각자의 도토리시간을 고요히 보내고 있는 다른 이들이 있지요.


저마다의
도토리시간이
고요히 흐르고 나면


하늘을
우리는 함께
- 책 속에서


<도토리시간>은 각자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우리로서 함께 모일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로 인해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하는 모든 이에게 <도토리시간>은 고요히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할 거예요. 도토리시간이 지나가야 찾아올 만남도 기꺼이 기다릴 수 있게 도와줄 거예요.



꽤 오랜 시간 동안 이 책의 그림을 그리며 마음이 답답했던 날, 때로는 가만히 자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예전보다 깊게 배우게 되었습니다. (...)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동물들의 눈을 보며 시간이 멈추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한 곳에 서서 지나가는 노을의 색을 오랫동안 바라봅니다. 이처럼 모두에게 종종 찾아오는 ‘도토리시간’이 삶을 살아내는 동안 작은 선물처럼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 작가의 말


이진희 작가 홈페이지에서 아름다운 그림 감상하기 

이미지 출처: 이진희 작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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