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재 May 31. 2021

사각거리는 소리를 좋아하세요?

책 <여전히 연필을 씁니다>

마지막으로 연필을 쓴 적이 언제인지 기억하세요? 연필로 밀린 일기를 휘갈기던 어린 시절로 거슬러 가야 할 분도 많을 거예요. 5G 시대에 연필을 깎고 쓴다는 건 어쩐지 어색하고 낡게 느껴지기도 해요. 스마트폰, 컴퓨터 키보드, 아이패드 등 스마트 기기가 우리에겐 더 익숙하고 수정도 간편하니까요.


저는 업무 특성상 여전히 연필을 쓰는 사람입니다. (마침 제 필명도 연필이네요.) 대학내일의 출판 브랜드 '자그마치북스'에서 펴낸 에세이집 <여전히 연필을 씁니다>도 제목에 꽂혀서 샀답니다. 연필을 사랑하는 젊은 창작자들의 산문을 묶은 책이에요. '연필'에 얽힌 창작자들의 고민과 기억이 궁금하다면, 한 가지 소재를 깊이 파고드는 '아무튼 시리즈'를 좋아하신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텀블벅 펀딩으로 구매한 연필가게 흑심의 연필꽂이. 연필에는 뾰족한 연필심을 지켜주는 소소문구의 펜슬캡을 씌워 주었어요. 맨 오른쪽 블랙윙 연필은 몇 년 전 선물 받았는데 아까워서 아직 깎지도 못했네요.


참여 작가는 - 태재, 재수, 김혜원, 최고요, 김은경, 한수희, 김겨울, 펜크래프트, 흑심 - 으로 에세이스트, 만화가, 공간디렉터, 편집자, 유튜브 크리에이터, 문구 편집숍 운영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어요. 아홉 명의 공통점은 여전히 연필을 깎고 쓰며, 연필만이 간직한 아날로그 감성을 애틋하게 여긴다는 거예요.


책을 열면 까만 흑심처럼 새까만 면지가 보이고, 본문 바탕에는 나무를 닮은 엷은 노란색이 깔려 있어요. 작가들의 다양한 직업만큼이나 폭넓은 글이 실려 있는데요. 저는 "굳은살을 알아봐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으며 남편에게 "내가 먼저 죽으면 일기장부터 불태워" 달라고 말하는 김혜원 작가의 글이 재미있었어요. 솔직하고 귀여운 고백으로 읽혀서 웃음이 나왔답니다. "옳음만이 존재해야 하는 사각 교정지 내에서 연필은 의외의 숨 쉴 공간을 만들어"(95쪽) 준다는 김은경 편집자의 글도 무척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쌓인 몽당연필만큼 노트도 쌓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음속에서도 따뜻한 무언가가 가득 쌓이게 될 것이다."(168-169쪽)라며 필사를 권하는 손글씨 크리에이터 펜크래프트의 글을 읽고 모처럼 마음에 남는 문장을 연필로 적어 보았습니다. 차근차근, 차곡차곡, 사각사각. 연필은 이런 표현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접어 둔 페이지를 다시 찾아 읽고 제 마음에 남는 문장을 눈으로 찬찬히 읽고, 종이를 스치는 연필 소리에 귀 기울이며 옮겨 적는 과정은 무척 평온한 시간이었어요. 오늘은 멀리했던 연필을 찾아서 무슨 말이든 적어 보는 건 어떨까요? 조용한 시간이 여러분을 기다릴 거예요.


•이 책에서 취향인 저자를 만났다면 다음 독서로 이어가도 좋을 것 같아요. 저는 김혜원 작가의 <작은 기쁨 채집 생활>과 최고요 작가의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를 읽어 볼 생각입니다.




틈틈이 뉴스레터 37호는 싱그러운 날씨와 어울리는 산문집을 소개했습니다.

뉴스레터가 궁금하시다면 여기 꾹 눌러 주세요!

틈틈이 보고 듣고 읽은 것 중 좋은 것만 나누어 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초여름에 음미해 보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