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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재 Sep 20. 2021

정체기가 아니야. 조금 긴 방학일 뿐

드라마 <롱 베케이션>

선선한 바람에 바뀐 계절을 체감합니다. 여름과 가을이 뒤섞인 요즘 날씨와 잘 어울리는 일본 드라마 <롱 베케이션>을 소개해요. 90년대 감성 가득한 11부작 드라마입니다.


서른 살 '미나미'(야마구치 토모코)는 결혼식장에 신랑이 나타나지 않자 혼례복을 입은 채 그의 집으로 달려갑니다. 하지만 문을 연 건 신랑 아사쿠라가 아닌 부스스한 머리의 피아니스트 '세나'(기무라 타쿠야). 아사쿠라와 별 교류 없이 지내 온 룸메이트입니다. 아사쿠라는 하필 세나가 소개해 준 여자와 집을 떠난 뒤입니다. 미나미는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걸 깨닫고 상황을 파악한 세나는 난감해져요.

강렬한 첫 만남 후 미나미는 우연을 가장해 세나의 동네로 갑니다. 미나미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세나에게 넉살 좋은 인사를 건네요. 미나미는 결혼 자금 때문에 자기 아파트도 팔고 저축한 돈도 도망친 남자에게 몽땅 주어 버린 상황. 그는 이러한 사정을 쾌활하게 털어놓으며 세나의 새 룸메이트가 됩니다. 애인이 생기거나 돈이 생기면 집을 나가겠다고 약속하면서 자기는 연하에게 관심 없으니 안심하라고 덧붙입니다. 세나도 곧장 연상은 관심 밖이라고 맞받아치고요.

인생의 정체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를 통과하는 두 사람은 아직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것 같아요. 세나는 멋진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로, 미나미는 잘나가는 모델로 자신을 포장하지만, 거짓말은 얼마 가지 못합니다. 세나는 작은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매일 모델 사무소를 드나드는 미나미에게는 삼십 대라는 이유로 별 볼 일 없는 일만 주어지거든요. 그 일마저도 사라질 위기에 처하고요.  


수북이 쌓인 결혼식 답례용 와인을 함께 나누어 마시면서, 퇴근 후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마시면서, 자주 가는 중화 라면집에서 일상을 나누면서 미나미와 세나는 서로에게 점차 솔직해집니다. 정말 피아노로 성공할 수 있을까, 모델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고민도 계속하고요.

계속하는 건 원래 힘든 일이잖아. 하지만 그만두면 거기서 끝이거든. 어쨌든 나도 피아노를 그만두려고 했었잖아. 힘든 시기도 함께 견뎌야 한다고 생각해.


세나가 짝사랑하는 후배 '료코'가 미나미의 남동생 '신지'와 엮이면서 이야기는 더욱더 흥미진진하게 흘러갑니다. 소심한 세나와 소탈한 미나미가 티격태격하는 모습과 친동생처럼 세나를 귀여워하는 것처럼 보이던 미나미의 감정선이 바뀌어 가는 걸 지켜보는 재미가 있고요. 


<롱 베케이션>은 꿈도 사랑도 성취하지 못하고 마냥 제자리에 머무는 것만 같은 시기를 발랄하게 그린 드라마입니다. 아무리 힘든 시기에도 끝이 있기 마련이지요. 기나긴 공백기가 끝날 때 두 사람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요?


왓챠에서 <롱 베케이션> 보기

백예린이 리메이크한 주제곡 <la la la love song> 들으러 가기


틈틈이 뉴스레터 45호는 '함께'의 의미를 묻는 책, 드라마, 영화를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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