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 필모를 보고 "어떻게 노력하셨나요?"라고 질문을 들을 때가 있다.
그렇지만 '노력'이란 힘들게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 아니던가.
노력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노하우랄게 없는 직장인이다.
우리가 자전거를 좋아해서 자전거 동호회를 들었다고 치자. 자전거를 사야 하는 지출을 해야 하고, 자전거를 끌고 땡볕이나 우천 시 강우를 뚫고 페달을 밟아야 한다. 그 땀과 운동을 '노력'이라고 하진 않는다. '취미활동'이라고 부르지.
내게 일이 그렇다.
사람들이 지금 다니는 직장 때려치우면 뭐 하고 싶냐고 물을 때, 하는 그것을 일을 통해 하고 있다.
책이나 읽으며 쓰고 싶을 때 글 좀 끄적거리고 싶어요.
남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거나 하면서 있고 싶어요.
등등의 소원들을 직장에서 일하면서 이루고 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도 가능하지만 천성이 게으르고 게으르고 게으르기 때문에 회사에서만큼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재택을 하는 다른 회사로의 이직은 생각도 안 하고 사무실로 출근하는 지금 회사에 눌러앉았다.
최근에 만든 인스타 부계정으로 팔로잉한 스토리를 통해서 본 만화가 공감이 갔다.
일본 만화 '용돈 아빠'에서 나오는 사람 중 회사 덕질을 하는 남자가 나온다.
휴일이 되면 연휴가 언제 끝날지 기다리는 회사 덕후.
입사한 계기도 느끼는 생각도 약간 맑은 눈의 광인 같은 느낌도 나랑 닮았다.
아마 이 얘길 보시면 미친 x이네, 할 수도 있지만 꼭 퇴사하고 싶은 사람만 세상에 존재하란 법은 없으니까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가족과 함께하는거 좋지만 그보다 조금 더 일을 좋아하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금요일 저녁이 지나면 이틀'이나' 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이 된다.
일요일이 되면 5일'밖에' 안 되는 출근시간을 알뜰히 일도 하고 자기 계발도 할지 생각한다.
금요일은 빨리 오고, 일요일은 더디게 간다.
그렇다.
원래도 살짝 맛이 간 상태로 살았지만 한 회사에 2년 가까이 정착하면서 제대로 맛이 가기 시작했다.
한 가지 더 고춧가루를 뿌리자면,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날 때마다 도박장에서 잭팟을 터뜨린 것 같은 희열을 느낀다.
'외주 안 주고 회사 안에서 해결할 수 있게 됐어!!!!!!!'
그게 꼭 내 업무 영역이 아닌, 자질구레한 것이라도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음에 감사할 지경이다.
일이 없으면 놀면 되지,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으신다면 논문도 쓰고 대학원생이라 과제도 한다고 답한다.
올해는 책도 썼다. 출간은 언제일지 모르나 일단 원고를 썼다.
브런치 글도 쓰고, 유튜브는 당연히 내 친구고, 책도 읽고 토익공부도 했다.
그럼에도 내 공짜 사무실 사용을 위한 사용료랄까, 전기세, 물세, 컴퓨터 사용료, 자릿세를 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처음부터 직장 자체가 좋은 건 아니었다.
내가 잘하고 재미도 있는 일을 찾기까지 여러 가지 경험을 해봤다.
이제는 무슨 일을 해도 최소한 원하는 조건이 2개 이상 들어가 있으면 일 덕후의 자질이 된다.
나에겐,
1) 뭔가를 창조할 것
2) 창조하는 영역이 전문적이고 나름 잘한다는 이야길 들을 것
이 두 가지가 있는 성격의 업무라면 그 외의 연봉, 복지, 근무시간 등은 밸런스 게임을 통해 고른다.
운명의 상대와 첫눈에 빠진 것처럼 영화 같은 사랑처럼 회사와 일을 만난 건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방향이 있다면 결국 그곳으로 이끈다는 지론처럼 만났다.
내가 원하는 방향과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운'의 역량에 따라 만났다.
만화의 회사 덕후 주인공도 우연히 들어온 회사에 깊이 빠져든다.
회사 주변에 있는 공원, 식당, 사우나도 맘에 들고, 구내식당도 맘에 드는 주인공.
내가 아침마다 아이 등원을 하며 느끼는 바와 동일했다.
출판단지는 겨울엔 매섭게 춥긴 하지만 다닥다닥 붙은 빌딩 숲이 아니라서 나무 그늘에 바람을 쐬며 유모차를 밀면 행복한 산책길이 된다.
아이가 크면서 장화를 좋아하게 되어 비 오는 날까지도 완벽한 놀이터가 된다. 길이 오래돼, 웅덩이가 많으니 첨벙 놀이 러버에겐 천국이다. 그 덕에 나도 힘들게 아이를 안지 않고, 즐겁게 놀면서 어린이집을 갈 수 있어 좋다. 진정한 덕후는 회사를 둘러싼 주변환경도 사랑하게 된다.
만화에선 야근까지 하면서 회사를 떠나기 싫어했지만 난 그 정돈 아니라서 굳이 오래 남아있진 않는다. 대신, 집에 가서 생각나는 일이 있다면 다시 한번 파일을 열거나 이메일을 탐독한다.
혹시라도 잘못 이해한 게 있는지, 데드라인이 진짜 데드 한 지 확인하기 위한 차원이다.
가끔 흥미로운 주제가 있으면 논문 찾아보거나 보내준 관련 자료를 꼼꼼히 읽어보고 싶어 하는 짓이다.
내가 꿈꾸던 직업이나 업무가 우리 회사에서 하는 일은 아니다.
남이 시킨 논문을 보거나 있던 자료로 재창조하는 정도의 업무를 바란 건 아니다.
새로운 주제로 접근하는 참신한 연구, 전문성 있는 보건학의 내용을 파고드는 것이 장차 하고 싶은 일이다.
그럼에도 회사 덕후 기질을 보이는 건, 이젠 저 위의 두 가지 조건만 맞으면 어떤 일이든 상관없다고 느끼는 자아 때문일 것이다.
'좋아하는 일'은 '좋아하는 기질'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기질'은 딱 한 가지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질'을 파악하면 어떤 일이던 좋아하는 일로 바꾸어 가져갈 수 있을 거라 본다.
내 장래희망은 과로사다.
정확히는 80이 넘은 노년에 과로사하는 것이다.
건강히 그때까지 맡은 직무를 수행하는 건강한 사람이라는 점과
일하다 죽을 수 있는 영예를 안을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