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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니 Nov 13. 2023

산후우울증이 달아나버린 이유

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이 없었다.

정확히는 우울증이 오려다 달아났다.


아이를 낳자마자 주변 사람들의 한마디, 행동 하나가 화살처럼 찌른다. 무딘 촉이라서 아프다고 하기보단

짜증이 난다.


'왜 자꾸 찔러!'


별거 아닌 행동들에 잠을 못 자고, 모유수유한다고 애쓰는 몸뚱이가 아우성을 치는 것이다. 남편은 일을 나가서도 나를 걱정하고, 집에서는 불편하지 않게 모든 일을 도맡아 해 줬다.


미안함에 나도 쉽사리 화내지 않고, 찌르는 느낌을 무시하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한 번씩 펑, 펑, 터지는 울음과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덜 우울해질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아이와 내가 적응하는 방법을 말이다. 

직수로 모유수유를 하려고 시도하다가 안 돼서 유축을 했다. 모유가 많은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노동이 너무 힘들었다. 잠이 많은 사람인지라 밤 시간에 4시간 이상을 못 자니 힘들었다. 아이가 울지 않더라도 유축 시간을 맞춰야 했기에 2시간에 한 번씩 알람을 맞춰놓았다. 


아이가 깨지도 않았는데 일어나 유축을 하려니 울화가 치밀었다. 낳기도 내가 낳았는데 먹이는 것도 내가 이렇게 온몸이 바스러져야 하나...


결국, 현타가 오지 않는 선에서 결정했다. 이틀에 한 번은 남편이 밤을 새우고 나는 유축을 안 하고 4시간은 쭉 자기로 말이다. 다행히 유축을 미룬다고 해서 가슴이 저려 일어나야만 하는 일은 없었다.



아이와 나만 할 수 있는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 가정 모두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복직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은 하등 신경 안 쓰는 말들이 그땐 응어리가 되어 뿌리가 박히는 듯했다.

"왜 벌써 일 나가?"

"애가 코로나 걸리면 어떡해?"

"어린이집을 벌써 보내?"

"모유 잘 나오니까 수유 계속해봐."

등등

나 같아도 궁금해서 물어볼법한 얘기들을 흘려듣는 게 그땐 가슴에 남아 '버러지 같은 여자'라는 인두가 새겨졌다.


행복하려는 선택에도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으면 인터넷 망령은 SNS를 떠돈다. 

그러다 '괜찮아 네가 그러는 건 평범한 현상이야.'

글 한 줄, 영상 한마디에 엉엉 운다.


어떤 날은 아이 재우려고 틀어놓은 유튜브에서 [꿈을 꾸는 문어]라는 노래를 들었는데

꿈에선 꿈꾼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노래 가사에 애기를 안고 그렁그렁 눈물을 흘렸더랬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50일이 넘으니 아이가 '인간'의 반열에 오르며 밤낮의 패턴이 잡히기 시작했다. 밤잠이라는 걸 비슷하게라도 자주니 한결 노동력이 줄게 됐다. 


아이 60일 즈음에 취업이 되고, 대학원 입학도 결정되었다. 이번에도 나는 덜 후회할 '선택'을 했다. 



회사 다니며 대학원을 병행하면 피곤해서 죽을 줄 알았는데 신생아 육아 안 하고, 모유수유 한다고 가슴이 터져 아플 것이 사라지니 우울함과 분노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가끔은 한 낮이나 수업 중에 아이가 세상에 존재하는 어미라는 사실을 망각할 때도 있었다. 아이에게 모진 엄마가 되는 것 같아 미안할 때도 있었지만 어느새 나의 행복은 아이에게 녹아들어 우린 그렇게 불행하지만은 않은 삶을 공유할 수 있었다. 


적응의 시간이 두 달이 지날 무렵, 남편이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휴직 전 풀 맞벌이였을 땐, 이만하면 괜찮다는 마음으로 버틴 기분이라면 한 사람이 휴직을 하며 전업육아를 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일단 마음이 가볍다. 둘 다 밖에 있으면 '만에 하나'라는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첫 번째 근심의 이유였고, 퇴근한 두 사람 모두 다 집안일은 세컨드 잡이었기 때문이었다. 


잔꾀나 게으름을 1미리도 허용할 수 없는 영역이 꽤 스트레스였다. 내가 스스로 허용한 게으름만큼 상대는 강제 배려당하고 힘들어할 것이 뻔했으니 말이다. 


한 명이 휴직을 하고 전업주부가 되면 그러한 스트레스에서 자유롭다는 것이 부부에겐 가장 큰 이점이 된다. 그렇다고 내가 해야 할 몫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건 태만이니까. 대신, 요청하는데 거리낌이 없어진다.


"요거는 내가 할게. 그동안 이것 좀 해줄래?"


풀 맞벌이일 땐, 왜 또 나한테 시키지,라는 부담감이 서로 있어서 이런 말 하나도 조심스러워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휴직자가 생긴 육아 부부는 이런 부담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어 행복해진다. 

남편이 차려놓은 식사에 퇴근해 숟가락만 뜨고 분유만 주면 되니 문밖에서 눈치 보던 산후우울님은 연기처럼 날아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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