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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니 Aug 16. 2023

빌보드를 만드는 사람

말 잘하고 본인 일 잘하면서 재미와 의미도 있는 콘텐츠를 좋아한다. 

[셜록 현준]이 그런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한 번은 핫하게 댓글창을 달군 영상을 올린 적이 있었다. 

"빌보드 1위가 아니라 빌보드를 만들었어야지."

하는 요지의 영상이었다.


K-국뽕에 취해 우리가 이미 만들어진 플랫폼과 시스템에서 순위 다툼과 인지도를 높이는 것보다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그게 쉽냐, 일단 있는 거라도 목표를 두고 1등 해야지, 하면서 질타했는데 셜록현준님의 취지가 무엇인지 실제로 해 본 사람들은 깊이 공감했다. 



출간계약을 하고 원고를 쓰면서 돌아본 내 인생은 '인생'이라고 칭하기도 뭐 할 정도로 기묘하고 웃기고 난장판 같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한 번도 만들어 놓은 틀에서 두각을 보인적이 없다는 점이다.

1등 해 본 적 없고, 빅 5 병원 입사한 적 없고, 코이카 해외봉사 공로패도 못 받았고, 영어시험(아이엘츠, 토익) 만점 나온 적 없고, 대기업에서 일 안 해봤다. 누가 들으면 알법한 일은 간호사뿐이었다. 그마저도 메르스와 코로나라는 전염병 특수로 인해 대중들에게 각인된 직업이지, 그전에는 의사 아닌 직종 중 그 무엇 정도의 인지도였다.


정한 틀 안에서 뭘 잘해본 기억이 잘 없다. 대신 틀을 벗어나서 만드는 일들이 적성에 맞았다. 나름 잘 되기도 했고, 뭣보다 소중한 사람들을 얻어갔다. 


아프리카 지방 보건소에서 상처 소독 아르바이트생 하라고 시킨 일보다 지역사회에서 일하고 싶다고 뛰쳐나가 내 맘대로 교육자료 만들고 사람 모으고 연결해서 보건교육을 다녔다. 혼자 사람 인형 들고 다니면서 심폐소생술, 응급처치, 신생아 간호 등을 학교, 가정, 직원들에게 알려줬다. 상은커녕, 하도 일 벌이고 다니다가 혼자 불도저 같은 성격 못 참고 여기저기 쌈박질하다 쫓겨난 것으로 끝나버렸지만 말이다.


그리곤 프로필에 써진 듯이 누구나 하려면 할 수 있는 계약직을 전전했다.

애 낳고선 집 가까운 중소기업으로 취업을 했다.

중소기업 다니면서 파트타임으로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한 번은 친한 동료가 대기업으로 갈 생각이 없냐고 해서 직무가 맘에 들면 가겠는데 굳이,라는 생각이 들어 별 생각이 없다고 했다. 


가만 보니 사실 이상적으로 하고 싶은 건 전에 하던 국제보건 사업/연구인데 당장 WHO 갈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국제기구 단기계약직이나 NGO로 들어가면 지금 연봉에서 하향되기 때문에 외벌이 가장은 쉽게 하고 싶은 대로 결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현실과 이상을 섞어봤다. 

하고 싶은 것도 하고, 돈도 현실적으로 필요한 만큼 벌고, 일석이조를 했다.

국제보건 연구가 하고 싶으면 연구비를 따오면 되고, 대기업에서 일하고 싶으면 지금 있는 회사를 대기업으로 만들면 된다.


국제보건 연구는 학생 연구제안 공모전에서 상금을 받아 데이터 사용료를 지불하고 논문을 썼다. 앞으로 졸업논문도 연계해서 해당 국가 데이터와 연결하여 졸업논문으로 써 볼 생각이다.


대기업에서 일하고 싶다는 건, 국내 10대 기업이 주는 연봉과 복지를 받아가고 싶다는 마음일 것이다. 내가 적게 받고 복지가 형편없다면 시가총액이 무슨 의미인가. 그런 의미에서 나만의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 출퇴근이 자유롭고 아이를 데려올 수 있는 직장이기 때문이다. 거리끼는 사람 하나 없고(그래서 내가 이 구역에 미친 x인가 생각한다), 일은 즐겁다. 연봉은 당장 먹고살며 앞날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무려 내 벌이로 3인 식구 산입에 거미줄 안 치고 살지 않는가. 이 정도면 스스로 자부심을 느낀다. 


좀 더 대기업에 가까우려면 지금보다 3배가량 많은 일이 들어와야 하는데 아쉽다. 박카스라도 한 병씩 돌리면서 일을 가져오면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그런 업무가 아니라 적성에 안 맞게 가만히 일을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결국, 이것도 나만의 빌보드를 만들게 되지 않을까 싶다. 


대기업에 다니고 싶어? 다니는 회사를 대기업으로 만들면 되지.
연구가 하고 싶어? 연구비 따오면 되지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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