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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씨 Jan 16. 2019

새기고, 쌓고, 부수고

#13. 미술관에서 찾은 나

미술관에 가는 걸 너무 좋아했지만, 직장인이 된 이후로는 바쁘단 핑계로 자주 가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어쩌다 한 번 가는 미술관은 내게 일종의 안식처였다.

복잡한 머리 속을 정리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 해주는 곳.


퇴사 후 백수가 되어, 햇살 좋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 자전거를 타고 미술관에 갔다.

혼자 미술관 앞에 멈춰섰을 땐 왠지 모를 해방감까지 느껴졌다.

일부러 다른 사람들은 다 일하는 한가한 시간대를 골라 가서, 마치 내가 미술관을 통째로 빌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날 내가 본 전시는 <찍다>展.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건 김동기 작가의  '바위섬’이라는 작품이었다.

어린시절 보았던 재개발로 사라진 벽돌집의 모습을 기록해 자르고 오려붙이고 겹쳐놓은 판화작품.

보다 보니, 작품에 나를 대입하게 됐다.


나도 지금 뭔가 새기고, 쌓고, 부수고 하는 걸까?

과거의 나는 무엇을 새겼을까?

나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고 싶었던 걸까?


지금까지는 내가 무엇을 새기고, 쌓고 있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왔다.

내가 원하는 방향과 속도가 아니라, 남들의 시선과 사회의 요구에 집착했다.

그 과정에서 온 마음이 상처투성이가 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이제는 상처투성이가 된 마음과 생각을 부수고, 설계부터 다시 할 시간.



그리고 앞으로 내가 무엇을 새기고 쌓고 부수든,

되돌아보았을 때

스스로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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