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좋아하는 게 많았지만, 요즘은 좋아하는 게 없다. 일도, 취미도
해고 후, 자존감 회복 프로젝트
어느 날 아는 누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누나가 "나 꿈이 생겼어."라고 말했다. 그 말을 할 수 있어서, 해보고 싶은 것들이 계속해서 있을 수 있어 부러웠다. 그래 꿈. 나는 무슨 꿈을 꿨었더라. 어떤 일을 하고 싶더라. 왜 일을 하고 싶더라... 고민이 맴돌던 어느 날, 당연히 길게 다닐 거라 생각했던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다.
해고 후, 어떻게 입에 풀칠해야 할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일하고 싶은 걸까? 두 질문이 맴돌았다. 첫 번째 질문이야 월 200 정도만 어떻게든 벌면 당장 생활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문제는 두 번째 나는 앞으로 어떻게 일하고 싶은 걸까? 에 답을 할 수 없었다는 것. 사진을 찍고 있지만 어떤 사진을 찍고 싶은지, 어떤 메시지를 사진에 담고 싶은지, 어떠한 경로로 돈을 벌고 싶은지 모든 것들이 미지수였다. 내가 정말 사진을 좋아하는 게 맞는 걸까, 사진 외에 다른 수단은 없는 걸까, 나는 뭘 하고 싶은 걸까... 꽤 오랜 시간 여유를 두고 답을 해야 할 질문들이 쏟아졌다. 이 질문에 천천히 답해보는 것이 쉬는 동안 해야 할 급선무였다.
그러던 도중 코칭수업에서 아래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 "본인의 삶에서 가장 성공했던 기억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세요". 이 질문에 답을 해보면 실마리를 찾아 나설 수 있지 않을까.
부여에 내려갔을 때 '우와... 나 진짜 전성기 같은데?'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 귀촌해서 처음 쓴 지원사업이 1등을 해서 상금과 지원금을 받기도 했고, 금강사진관을 운영하며 찍고 싶었던 어르신들 사진과 지역사진을 찍었으며, 커뮤니티도 일부 운영을 했으며, 동시에 사람들이 머무를 수 있는 작은 게스트하우스를 무료로 운영하기도 했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벌었던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내 사업을 한다는 느낌이 좋았다. 좋아하는 것들은 단어로 나열해 놨는데 문장으로 연결시켰던 느낌이랄까?
그때 무엇 때문에 만족했는지 살펴보면
1. 자율도가 높았다.
> 몇 시부터 몇 시까지 고정적으로 근무하기보단 내가 내 것을 해나가면서 자유롭게 펼쳐 갈 수 있는 게 좋았다. 지원사업으로 이런저런 지원을 받기도 하고, 인건비를 따오기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시간에 하고 싶은 만큼 일하는 게 좋았다. 꾸준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내 채널을 운영하기도 했고, 사람들이 반응해 주는 것도 좋았다. 팬덤을 만들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지만 전반적으로 내 것을 운영한다는 게 만족스러웠다.
2. 의미 있는 일을 했다.
> 사진관을 운영하면서 단순히 여행객들이나 일반인들 사진을 남겨주는 것이라 지역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을 남기려고 노력했다. 이제 명이 얼마 남지 않은 어른들의 모습을 남긴다던가, 개발로 인해 사라지게 될 마을을 남긴다던가 하는. 그게 정말 원했던 의미 있는 일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리적인 것을 넘어 내가 담고 싶은 메시지를 남긴 일을 해서 좋았다.
> 언젠가 새로이 의미 있는 일을 한다면 무슨 의미를 갖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지 아직은 모르겠다. 현재 생각하고 있는 건 내 사진이 일상에서 유용하게 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 또한 예쁜 사진을 남기는 것보다 사실적인 사진, 사람 냄새가 묻어나는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
3. 직주근접
> 너무 만족스러웠던 부분. 집과 일하는 곳이 도보로 5분 내외라 편했다. 출근시간, 퇴근시간 개념이 없기도 했었지만 일을 한다고 해도 이동시간이 일상에서 적었던 게 마음에 들었다. 그동안 다른 일을 더 하거나 더 쉴 수 있어서 좋았다.
4. 낮은 임대료(사실 0원 이긴 했지만...)
> 서울에서 쉽게 하기 어려운 부분. 임대료가 없었어서 자유롭게 열고 싶을 때 열고, 닫고 싶을 때 닫을 수 있었다. 또한 내 사업을 하더라도 고정 지출이 낮게 만들수록 더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것을 알게 됐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을 바라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로우리스크 로우리턴을 바라는 사람이라는 것. 부담감이 클수록 더 위축되는 사람이라, 어느 정도 적은 부담으로 무언가를 뽀짝뽀짝 꾸려나가길 좋아하는 사람이다.
> 그렇기 때문에 사업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큰 사업을 하기보단, 작은 사업으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고, 1 euro프로젝트 같은 곳을 알아보거나, 임대료 지원사업이 가능한 곳에서 먹힐 수 있는 콘텐츠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자생력을 갖추기 전까지는 의미 있는 일 + 지원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전반적으로 만족하면서 일을 했던 시간들이었다. 이때 수입을 살펴보면 월 200~250만 원 사이로 냈었는데, 그때보다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고, 다양한 일을 해보면 괜찮을 것 같다. 여러 개 파이프라인을 일단 만들어보고, 거기에서 터지는 것들에 집중하는 형태로 무언가를 꾸려보면 괜찮지 않을까.
따로 받은 질문은 아니지만 직장생활 하면서나, 내가 커리어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었을지도 생각해 보았다. 대답에 나온 질문들을 보안해 나가면 되니까.
1. 커리어 하나를 깊게 파고들지 못했다. (공부를 안 했다.)
사진을 조금 더 깊게 공부하고, 다양하게 도전해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장비도 많이 투자해 보고, 노트북도 좋은 거 써보면서 다양한 장비군을 마련하고, 그에 따라 다른 일들을 접목시켰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프리랜서로 5년 정도 사진을 했지만, 5년 동안 사진 찍은 것 치고는 그렇게 실력이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은 아쉬움이 남아있다.
이 부분은 조금 더 공부해 보거나 아니면 제일 자신 있는 촬영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고, 나에게 맞는 로케이션을 하나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다.
2. 운동을 취미로 두지 않았다.
운동이나 스포츠를 취미로 뒀으면 지금 더 건강하게 일할 수 있었을 텐데, 삶이 조금 더 풍요로웠을 것 같은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특히 일할 때 체력이 약하다 보니 집중력 + 지속력이 낮다고 느껴지다 보니 체력을 미리 길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래도 최근에 수영에 재미를 붙이게 되면서 1주일에 3~4회는 1시간씩 수영을 하고 있는데, 일상이 건강해지는 느낌을 받고 있다. 수영 좀 꾸준히 해야지.
그래서 새롭게 뭘 해보고 싶은 거지?
아쉬움이 드는 것과 마음에 들었던 것을 쭉 적어봐도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여전히 모르겠다. 사진을 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주업으로 사진을 해야 할지 아니면 부업으로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후에 어떤 걸 하고 싶은지 떠오르지도 않는다
현재까지 생각정리한 바로는 새롭게 무언가를 한다고 하면, 임대료가 저렴한 자그마한 공간을 찾아 사업자등록을 하고(올해 12월 또는 내년 1월에 등록), 내 사진이 일상에서 쓰일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편집샵에서 내 사진을 활용한 굿즈 제작 및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 운영 + 가끔씩 모임공간 운영 + 사진 외주작업 + 기타 외주작업을 병행하면 어느 정도 1인분을 하면서 먹고살 수 있는 무언가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임대료가 저렴하면서 괜찮은 상권을 구하는 게 괜찮은 접근인지, 초기 투자비용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아직 수반되지 않아 조심스럽다.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삶은 무모한 만큼 자기 자신에 가까워진다고 한다. 너무 겁내지 말고 충분히 생각해 본 뒤, 생각을 마쳤으면 무모하게 저질러 보자. 어차피 쫄보라 크게 못 저지를 테니, 망해도 리스크가 적을 것이다. 분명 시작하면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은 기회들이 넘쳐날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