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묵 May 19. 2024

사막과 오아시스

책과 여행. 이 단어들은 전적으로 착한 단어로 여겨집니다. '어머니'나 '나무' 또는 '사랑' 같은 단어처럼 말입니다. 비난과 금기 대신 전적인 찬사와 권장이 이 두 단어를 대하는 사회의 전반적인 태도인 듯싶습니다. 전적으로 훌륭한 행위로 일컬어지는 두 단어 사이에서 나는 어떤 의미망을 만들어 보겠노라고 20대를 온전히 갖다 바쳤습니다. 그렇게 달려든 20대에는 행복했던 것만큼 고심참담함도 많았습니다. 제가 겪은 여행은 책들의 행간을 읽기에 충분하지 못했고, 책 역시도 땅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책, 더 많은 사유를 요구할 뿐이었습니다. 책과 여행사이의 긴장과 화해 넘나듦을 꾀했지만 어쩌면 이런 작업은 평생을 바쳐도 다 이뤄낼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만, 지나온 여행 속에서 한 가지 취향은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내 일상의 취향이 책과 여행이라면, 내 여행의 취향은 사막과 오아시스라는 사실이라는 것을 말이죠.


돌이켜보면 많은 좋았던 여행의 순간들은 사막에서 마주했습니다. 내게는 인도의 함피와 자이살메르가 그랬고, 몽골의 고비가 그랬으며, 칠레의 아타카마, 볼리비아의 우유니, 페루의 이카, 터키의 카파도키아가 그랬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사구를 품은 황색의 사막뿐만 아니라 툰드라, 소금사막과 같이 다양한 모습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나의 세계를 더욱 넓혀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낮에는 더위를 피해 그늘과 오아시스에서 낮잠을 자고, 밤에는 하늘에 수놓은 별들을 목 빠지게 바라보는 순간은 황홀하다 그 이상이었습니다.


사막을 사랑하는 나는 내가 경험한 사막보다, 아직 내가 경험하지 못한 수많은 사막을 기대하고, 동경하고, 여전히 그립니다. 이집트의 시와, 브라질의 렌소이스, 오만의 와디, 요르단의 와디럼 같은 곳들 말이죠. 그곳에서 열심히 더위를 맨 몸으로 맞고, 오아시스 야자수 밑에서 잠을 청하고,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헤아려보고 싶습니다. 모두 하나 같이 멀고, 접근하기 힘든 곳에 있다는 점은 내게 장벽으로 다가오기보단, 언젠가는 방문하고 싶은 꿈의 장소로 다가옵니다.


그토록 사막을 사랑하는 이유는 단순히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막은 아름답기보다는 황폐함에 가깝죠. 사막을 사랑하는 이유는 적절한 책의 구절이 있어, 책의 구절을 빌려봅니다. "사막은 우리에게 행동하라 가르친다. 그 행동이란 의도된 철학적, 존재론적 행위가 아니다. 생존을 위한 안간힘일 뿐이다. 사막 같은 극한의 땅 위에 서면 누구나 일상을 뛰어넘는 사색과 결단을 하게 되고, 마침내 행동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사막은 책 따윈 버리고 대신 땅을 읽으라 한다. 사막에 당도하지 못한 자들만이 책을 읽는 것이다. 사하라가 만든 책인 「인간의 대지」나 「연금술사」모두 땅을 읽으라고 가르친다. 땅 읽기에 비하면 책 읽기는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 [여행자의 독서 | 이희은]


땅을 읽는다는 것은 1차원적 행위라 생각합니다. 광활한 대지 위에 오롯이 서있는 나. 지평선 너머의 무엇이 있을지 상상해 보는 나. 무더운 태양 아래 더위를 피하기 위해 오아시스에 풍덩 빠지는 나. 그 속에서 열심히 유영하는 나. 지치면 잠을 청하고, 배고프면 밥을 먹으며, 그리우면 떠올려보는 그런 것들 말이죠. 나는 이러한 행동이 우리의 일상과도 맞닿아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1차원적이라 느끼거든요. 가령 잘 먹고, 잘 걷고, 잘 자고 그런 것들 말입니다. 때때로 나는 이를 잊고, 더욱 가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며 허황된 신기루를 좇을 때면, 다시 한번 땅을 읽으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언젠가 제가 당신께 함께 사막을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낸다면, 그것은 당신의 어떠한 바닥이라도 나는 받아들이겠다는 뜻이요, 당신을 읽고 싶다는 뜻입니다. 사막 아래에서 우리는 그저 한 낯의 작은 인간일 뿐이고, 험난한 기후 속에서 우리의 밑바닥은 손쉽게 보이게 될 테니까요.


그러니, 우리 함께 사막을 갑시다. 강렬한 태양을 피해 오아시스 그늘에서 시원한 맥주를 한 잔 들이켭시다. 알딸딸한 기운이 돌 때쯤에는 오아시스에 풍덩 빠져 헤엄을 칩시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 아래에 작은 모닥불 하나를 벗 삼아 춤을 춥시다. 그러다 지칠 때면 별들을 이불 삼아 서로의 솔직한 마음들을 나눕시다. 그리고 서로의 방향으로 무너집시다. 우리의 삶은 별게 아니라며 웃어넘깁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