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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묵 Jun 21. 2024

도쿄의 색깔은 회색이 아닌 초록

올해 첫 해외여행, 도쿄. 


사실 나 혼자 여행했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도시였지만, 여자친구의 사대주의(?)에 못 이겨 고르게 된 여행지다. 그렇다고 아예 기대가 없던 여행지는 아니었다. 세계 3대 도시이기도 하고, 멜버른 이후로 이렇다 할만한 도시 여행은 없었던 점, 그리고 올해 첫 해외여행이라는 사실이, 여자친구가 도쿄를 정말 가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합쳐져 별 감흥없던 도쿄가 기대로 부풀었고, 그 뒤로 얼마지나지 않아 도쿄로 여행을 다녀왔다. 1월에 열심히 뒤적거린 덕에 찾은 6/15 ~ 6/18 3박 4일 프로모션 티켓으로 도쿄를 건너오게 되었다. 

2인 왕복 49만 원. 1인당 약 245,000원 정도! 저렴하다 저렴해 :)


많은 채널에서 도쿄의 6~8월이 꽤 힘들다고 이야기 한 까닭에, 도대체 얼마나 덥고 습하길래 싶은 마음을 품고 공항에 도착했다. 전 날 풋살하다가 다친 손가락 통증 때문에, 비행기에서 잠을 못 잔 상태라 조금 더 예민한 상태였다. 공항에 내려 입국수속을 받고, 정신없이 헤매다가 스카이라이너를 타고 시내로 나가는 순간에서야 긴장을 조금 풀 수 있었다. 아무리 안전한 여행지라고 한들, 처음 와본 공간에 대한 낯섦은 나를 조금 더 뾰족하게 만드는 것 같다. 여행을 그렇게 다녔음에도, 이런 경계와 예민함은 언제쯤 줄어드는지 원. 아니, 오히려 나이를 먹으면서 더 증폭되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첫날은 늦게 도착하기도 하고, 또 날씨도 흐리멍텅 했던 까닭에 크게 어디를 둘러보진 않았다. 스카이라이너 종점인 우에노역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호텔에 묵었고, 호텔 체크인을 마친 뒤 집 근처에서 라멘을 먹고 아사쿠사를 향해 걸었다. 아사쿠사를 걷고, 새로운 지역을 보고, 이곳에 사는 소상공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와 문화를 대조하기 바빴다. 최근에 도시 재생이나, 도시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던 까닭에 도쿄의 모습이 새로운 교과서처럼 보여 이것저것 사색을 하기에 바빴다. 그렇게 첫날이 지나갔다.




2일 차


두 번째 날은 여행 도중 유일하게 맑은 날이었고, 또 유일하게 맑았던 까닭에 한참을 돌아다닌 날이었다. 반 번개처럼 도쿄에서 일을 하고 있는 친구 수빈이를 만나게 되었고, 수빈이를 따라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되면서 도쿄의 많은 곳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하라주쿠에서 시작해 시부야, 다이칸 야마까지 쭉 걸으면서 도쿄의 모습을 관찰했다. 이 날 느꼈던 도쿄의 모습은 회색일 거라 생각했던 도쿄가, 초록의 모습을 띄고 있는 도시라는 점. 그리고 꽤나 친환경적인 나라라는 점이다. (그런 나라가 후쿠시마에 오염수를 방출했다는 것에 혼란이 오긴 하지만)


서울보다 도쿄가 인구밀집도 높고, 더 많은 인구와 관광객이 살고 있기에 당연히 조금 더 회색 같은 느낌의 도시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도쿄는 많은 거리에 초록이 가득했고, 높은 건물들 마다 초록이 가득한 공개공지를 갖고 있었으며, 많은 건물들의 옥상에는 정원 혹은 놀거리들이 가득했다. 날씨가 더운 날이었음에도 많은 시민들이 그곳에서 천천한 일상을 즐기거나, 그들이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하기 바빴다. 그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일본도 일본 나름의 속 시끄러운 사회문제들이 많겠지만,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과 문화를 보면서, '아 이래서 우리나라가 일본을 못 따라간다고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그만큼 도시와 시민의 삶이 너무 잘 어우러지는 모습이 가득했다. 


날씨가 좋았던 까닭에 나와 여자친구, 그리고 수빈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다이칸야마에 있는 한 카페를 찾았다. 하라주쿠와 시부야에 그 많던 사람들이 블록 몇 개를 지나 새로운 지역에 들어오니 고요한 주거단지가 펼쳐졌다. 마치 한국으로 따지면 한남동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다이칸야마에서 우리는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가보고 싶었던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을 둘러보았다. 그곳 역시도 초록색으로 가득했고, 적당한 생기와 온도로 가득 차 있었다. 


날씨가 너무 좋았고, 사람이 적고 분위기도 좋았던 다이칸 야마
이번 여행에서 가장 궁금했던 브랜드 츠타야서점. 츠타야서점은 더 공부해보고 싶어졌다. 


이번 도쿄여행을 하면서 주의 깊게 생각하고 있는 브랜드가 2개 있었는데, 하나는 츠타야서점, 또 하나는 무인양품이었다. 츠타야서점은 작은 서점에서 시작해 지금은 도쿄의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하는 스토어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또 무인양품은 심플한 디자인이 삶과 주거에 적용되었을 때 어떤 경험을 주게 되는지 실험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우리는 그 이유로 3개의 츠타야 서점을 방문과 무지호텔에서 숙박을 하게 되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무지호텔에 들어오고 느낀 점은, 굉장히 기본기에 충실한 호텔이라는 점. 도쿄의 물가가 비싼 까닭에 호텔의 크기가 크진 않았으나, 그곳에 많은 용품들 + 어메니티가 모두 무인양품에서 파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러다 보니 내가 만약 나중에 집을 인테리어 하게 되고, 무인양품을 이용해서 꾸미게 된다면 이런 삶을 영위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무인양품이 가득한 집이... 꽤 괜찮아 보였다. 단조로우면서도 기능적이니까. 심플한 걸 좋아하고, 많은 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 하는 나와 찰떡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무지호텔이 1박 비용이 비쌌어서 숙박하는데 그렇게 비싼 돈을 지불해야 하나? 싶었지만... 이번 무지호텔 숙박을 통해 그런 경험을 한 번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다음날 먹었던 조식도 너무 훌륭하고, 침구류도 너무 훌륭했어서 완벽했던 호텔 숙박!

만약 집을 구하게 되고, 집을 꾸미게 된다면 무지 생활용품으로 채워 넣고 싶어졌다. 이번 여행에서 무인양품, 츠타야서점 2개 브랜드 팬이 되어버렸다. 




3일 차


마음에 들었던 무지호텔을 떠나서 신주쿠로 이동했다. 신주쿠에 별다른 기대는 없었지만, 이전에 다녔던 회사가 운영하는 코리빙 하우스가 있었고, 마침 그곳에서 1박 무료로 묵을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무지호텔에서 나와 신주쿠로 이동했다. 30분 정도 걸려 신주쿠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일본 코리빙을 담당하는 이사님을 만나 이것저것 설명을 듣고 방을 열었는데... 세상에 지금까지 도쿄여행하며 묵었던 곳 중에서 가장 훌륭한 퀄리티를 자랑했다.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도쿄 신주쿠 한복판에 이 정도 집 퀄리티는 월세가 얼마나 될까 궁금했는데 (큰방, 작은방 1개씩, 그리고 거실, 주방, 화장실이 있는 오피스텔 + 공용 라운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월 450만 원 정도 수준. 최근에 캐나다 워홀을 준비하면서 원룸이 200만 원 돈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있고, 여기 와서 도쿄 코리빙 월세가 450 정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내는 월세는 정말 저렴한 편이었구나, 한국 의외로 살기 좋구나(?) 싶은 마음을 느꼈다. 이래저래 최근에 일본인 친구를 많이 만나게 되면서 일본이 여행하긴 좋아도, 살기는 힘든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지간한 월급으로는... 일본에서 살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너무 좋은 숙소였던 까닭에 카메라를 들고 집구석구석을 찍기 시작했고, 복도, 라운지, 루프탑 등의 공간을 찍었다. 인테리어 촬영을 염두하고 오지 않았던 터라 광각렌즈를 가지고 오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뭐 어떤가. 나름대로 도움 될 수 있도록 사진을 찍어놓고, 잠시 낮잠을 좀 청했다. 좋은 숙소에서 잔다는 게 이렇게 짜릿한 일일줄이야... 돈 열심히 벌어서, 한국에서든 캐나다에서든 좀 살고 싶은 집에서 살아야지

너무나 잘 지냈던 마지막 숙소이자 코리빙 하우스 / 홈즈 스테이 신주쿠. 20대는 왜 월세를 그리 많이 내야 하는지 의문이었는데, 좋은 집에 살면 좋은 삶이 따라오게 되는 것 같다


둘째 날에 힘들게 돌아다녔던 까닭에 셋째 날은 비교적 쉬엄쉬엄 (그래도 하루 15,000보를 찍었지만) 돌아다녔다. 오모테산도 힐즈를 보기도 하고, 메이지 신궁을 산책하기도 하고, 한인타운이 있는 곳에 가서 마지막 저녁으로 삼겹살을 구워 먹기도 하고.. 집에 돌아와 반신욕을 즐기고, 루프탑에서 웨딩사진을 조금 찍고, 라운지에서 맥주 한 잔 마시며, 여행을 마무리하는 글을 쓰고 있다. 


그렇게 까지 큰 기대가 없었던 도쿄는, 생각보다 그 이상으로 좋았다. 무엇보다 회색 같은 느낌으로 많은 직장인들이 동태눈깔로 걸어 다니는 도시를 생각했는데, 이곳에는 많은 다문화가 기본으로 깔려있고, 많은 녹지 공원들이 있었으며, 많은 소상공인들이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것 만으로도 배우고 느낄 점은 충분했다고 느낀 이번 여행. 


도쿄의 야경을 자랑하던 도쿄타워와 도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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