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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집에서 랩터스 팬을 구하다

한 팀만 15년 응원한 팬의 이야기,《랩터스》(해준, 가익가)

우리나라에서 랩터스 팬을 만난 적은 거의 없다. 내가 랩터스 로고가 달린 모자를 쓰고 다녀도 모자가 멋있다는 말을 빼고는 누구도 어떤 팀인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물론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로 한국 랩터스 팬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굳이 만날 이유가 없다. 모여보았자 선수들을 흉보기나 할 테니까. 그래도 사람들의 무관심 덕에 내가 팬이 되었으니 문제없다. 랩터스 팬 없는 한국은 랩터스 팬임을 드러내도 티가 나지 않는 최적의 장소이니까.


   오랜만에 첫 직장 근처에 갔다. 옆자리에서 나를 많이 챙겨주던 선배, 이제는 형이라 부르는 분과 저녁을 먹기로 했다. 국밥에 가볍게 반주 한잔할 겸 근처 전통시장의 조그마한 순댓국밥집에 들어갔다. 회사를 그만둔 후에도 형은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고 “너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라” “블로그를 꾸준히 해라”와 같은 조언도 만날 때마다 건네면서 내가 프리랜서로 자리 잡도록 응원해 주었다. 형과 순댓국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한참 이야기하는 중에 여자 한 명과 남자 두 명이 가게로 들어왔다. 회사 동료 사이로 보였는데 여자가 뭔가를 토로하면 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자코 듣기만 했다. 아무래도 전체 회식에 참여한 후 따로 2차를 온 모양인 듯했다. 술기운인지 여자의 목소리가 커져서 우리는 잠시 얼굴을 찌푸렸지만 이내 나는 대학원 생활을, 형은 여름 휴가 때 다녀온 중국 여행을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잠시 후 건너편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리던 목소리가 사그라들었다. 조용해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찰나, 갑자기 여자 목소리에서 익숙한 한 마디가 들렸다.

   “나 토론토 살았잖아.”

   토론토라니. 그 자체로 반가웠지만 다음 이야기는 기껏해야 캐나다 생활이나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한 자랑 정도이겠거니 생각했다.



   “랩터스 농구 보러 다닐 때가 좋았는데.”

   랩터스, 국밥집에서 랩터스라니! 뭔가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의심했다. 그다음부터는 형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에어 캐나다 센터가 경기장인데, 거기 항상 꽉 차고 분위기 장난 아니야. 랩터스 요즘 잘하잖아”

   “에이, 뭘 잘해요.”

   “아니야. 보러 갈 때마다 이겼어! 작년에도 잘했는데.”

   “토론토가 무슨. (웃음) 지금 누가 있는데? 빈스 카터 있을 때 좀 했지. 지금은 잘하는 애도 없잖아.”

   “아닌데, 올해도 잘하던데…”


   오른쪽 남자는 미국 유학 시절 같이 수업을 들은 농구 선수가 NBA에서 스타가 되었다고 우쭐대었고, 왼쪽 남자는 커리, 르브론, 코비 같은 스타 이름을 나열하고 모든 농구 지식을 동원하면서 여자를 점점 코너로 몰았다. 나는 랩터스를 아무것도 모르는 그자들을 처단하고 토론토에서 오신 고귀하고 인자한 그분을 정의의 이름으로 구하고 싶었다. 대화에 끼어들 타이밍만을 기다리면서.

   “랩터스 엄청 인기 많아.”

   “빈스 카터 말고 누가 잘하는데?”

   바로 지금이다.


   “저기…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제가 토론토 랩터스 팬이어서 반가운 마음에…”

   “와! 정말요? 캐나다 사셨어요?”

   “아니요. 여행 잠깐 갔다가 팬이 되었어요. 한국에서 랩터스 팬을 만나기가 어려운데… 옆에서 듣게 되었는데 앞에 계신 두 분께서 랩터스를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요.”

   “제 말이 맞죠? 랩터스 요새 잘하죠?”

   “네. 현재 동부 2위입니다. 카와이 레너드가 들어와서 팀이 달라졌어요.”

   “맞아요. 레너드! 거봐, 맞잖아. 잘한다고 했잖아.”

   그 두 작자는 여전히 믿지 않았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자에게 나는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물었고 그가 “인디애나 대학교에…”라고 말하려는 도중 


   “빅터 올라디포랑 학교 같이 다녔나 보네요. 그럼 아누노비는 몰라요? 인디애나 대학 출신인데.”

   다행히 내가 아는 선수가 인디애나 대학 출신이었고 게다가 랩터스 선수 중에도 그 학교 출신이 있었다. 나는 랩터스 경기만 보지 않는다. 스포츠 캐스터를 꿈꾸며 농구만 몇천 경기를 봤기에 스포츠 상식은 웬만해선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농구 많이 아시네. 카터 때 이후로 랩터스가 잘하는지 몰랐습니다.” 

   놀란 그는 내가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알았는지 꼬리를 내렸다. 그 틈을 타 나는 그에게 쏘아붙였다.

   “아니 어느 시절 빈스 카터입니까. NBA 많이 안 봤나 보네. 토론토 5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올라갔는데 몰랐구나.”

   기세등등했던 두 남자는 그때부터 랩터스 팬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난 현장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볼 뿐이었다. 하지만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2019년에도 랩터스가 여전히 빈스 카터로 기억되다니. 씁쓸했지만 냉정하게 맞는 말이다. 랩터스 농구를 떠올리면 카터가 뛰던 시절만큼 강렬한 순간은 없었으니까.


“올라디포(위)랑 같이 학교 다녔나 봐요. 아누노비(아래)는 몰라요? 인디애나 대학 출신인데.” 나는 농구만 몇천 경기를 봤기에 스포츠 상식에 웬만해선 밀리지 않는다.


   모든 소동을 정리하고 국밥집에서 랩터스 팬과 환담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낯선 사람과 랩터스 이야기를 나눈 적이 거의 없기에 무슨 말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아군을 얻은 고귀하신 랩터스 팬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올해는 다를까요?”

   “기대는 하는데. 플레이오프 때 아시잖아요… 우승하면야… 좋죠. 르브론도 떠났으니 이번에는 기회가…”

   “거기서 뭐 하는 거야? 다 먹었으면 가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대체 모르겠다는 듯, 형은 계산하고는 먼저 나갔다. 형을 먼저 보내고 한참 해도 모자랄 랩터스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대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연락처를 받았다. 그리고 랩터스가 파이널에 진출하면 전국의 랩터스 팬을 모아서 같이 응원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그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도와줘서 고맙고 꼭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랩터스가 어떤 팀인지 관심조차 없는 한국에서, 그것도 서울 강남 한복판의 전통시장 국밥집에서 랩터스 팬을 처음 만나다니. 그리고 랩터스 팬이라고 무시를 당하던 사람을 구하면서 내가 랩터스 팬임을 입증하는 드라마 같은 상황이 일어나다니. 그런데 왜 내가 랩터스 팬을 구해야만 했고, 랩터스를 변호하며 열변을 토해야만 했을까. 랩터스가 지난 시즌보다 강해졌는데도 말이다.


   랩터스는 시즌 중반에도 순항했다. 우려를 깨고 레너드가 건강한 모습으로 공수 양면에서 활약했고 팀의 리더 라우리는 더욱더 노련해졌으며 시아캄은 주전으로 도약하며 눈부신 기량 성장을 보였다. 밴블릿, 파월을 중심으로 하는 벤치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이바카가 합류하면서 단단해졌다. 부상 후유증을 우려해 레너드를 관리하면서도 그가 결장한 22경기에서 17승 5패라는 좋은 성적을 내며 랩터스는 안정적인 전력을 다져나갔다. 



2019년에도 랩터스가 여전히 빈스 카터로 기억되다니. 씁쓸했지만 냉정하게 맞는 말이다. 그런데 왜 내가 랩터스 팬을 구해야만 했고, 랩터스를 변호하며 열변을 토해야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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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터스》 입고처


<서울·경기>

책방비엥 (은평구) | 온라인 오프라인

다시서점 (강서구) | 온라인 오프라인

올오어낫싱 (금천구) | 온라인 오프라인

프루스트의 서재 (성동구) | 온라인 오프라인

무엇보다, 책방 (송파구) | 온라인 오프라인

커넥티드 북스토어 (종로구) | 온라인 오프라인

이후북스 (마포구) | 온라인 오프라인

인덱스 (광진구) | 오프라인

스토리지필름앤북스 해방촌 (용산구) | 오프라인

이문일공칠 (동대문구) | 오프라인

서로의공간 (경기 구리시) | 오프라인


<부산>

*나락서점 (부산 남구) | 온라인 오프라인

*주책공사 (부산 중구) | 오프라인

  

<전북>

에이커북스토어 (전주 완산구) | 온라인 오프라인

조용한흥분색 (군산 미원동) | 오프라인

   

<전남>

책방심다 (순천 조곡동)  | 오프라인


<대구·경북>

*고스트북스 (대구 중구) | 온라인 오프라인

*책봄 (구미 원평동) | 온라인 오프라인


<대전>

*해윰책방 (대전 서구) | 오프라인


<강원>

*깨북 (강릉 교동) | 오프라인

*느림의 미학 (원주 단구동) | 오프라인 (12월 15일부터 구매가능)


<제주>

*어떤바람 (서귀포 안덕 사계리) | 오프라인


<이동서점>

*북다마스 | 온라인 오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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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랩터스> 중 '형! 랩터스가 결국 해냈어' 부분을 저자 낭독 영상으로 제작하여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해준 목소리로 생생하게 듣는 랩터스 우승의 순간! 아래 링크로 들어가 확인해보세요.


[낭독] 저자 해준 목소리로 듣는 《랩터스》- '형! 랩터스가 결국 해냈어'

https://youtu.be/BjBx-gl2qZ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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