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함께 살며 생각한 것들>(저녁달고양이, 2020) - 독해독 #2
*독해독이란?
'독립출판을 한 해준이 (독립출판의 편견에서 벗어나) 독립서점에서 만난 책 읽기'의 줄임말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집은 티비를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죽 처져서는 시간을 때우다 잠에 빠지는 장소라는 의미 밖에는 없었다. 프리랜서가 되면서 하루라도 허투루 살지 말자고 다짐한 이후부터 집은 밥을 먹고 잠만 자면 그만일 공간이었다. 일터이자 글쓰기 장소인 카페가 ‘나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터지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상향되면서 나는 카페에 갈 수 없었고 집에 꼼짝달싹하지 못한 채 제대로 읽지도 쓰지도 않으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때 만난 <둘이 함께 살며 생각한 것들>은 지금까지 외면해온 '집'이라는 공간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프롤로그 말미 두 저자가 “당신에게 당신만의 좋아하는 공간이 있는지”라는 질문에, 떠돌이처럼 카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나는 답할 수 없었다. 책장을 넘기면서 실마리라도 찾고 싶었다.
<둘이 함께 살며 생각한 것들> 공저자인 박미은, 김진하는 인도에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만났고, 한국에 돌아와 떨어져 지내다가 함께 살게 되었다. 프롤로그 제목을 ‘좋아하는 공간을 위한 투쟁’이라고 지었듯이, 두 사람은 공간에서 자유를 얻으려 고민했다. 두 사람은 여러 도시를 거친 후 부산에 정착했지만, 살고 싶은 곳을 발견했다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반려동물과 공존 가능한 공간인지, 치안에는 문제가 없는지, 무엇보다도 층간소음 등 이웃 간에 불거질 문제가 많지는 않은지 등, 두 사람은 주고받듯이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함께' 사는 공간 속에서 '서로'의 공간에도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그 고민 중에는 반려토끼 리리, 반려고양이 미미의 공간도 있었다. 김진하는 ‘내가 생각하는 집’이라는 부분에서 함께하는 존재가 지닌 의미 안에서 자신이 꿈꾸는 집을 말한다.
내가 원했던 집은 나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나는 나보다 나와 함께하는 존재들이 평안하기를 더 바라고 있었다. 그제야 나도 행복할 수 있음을 긴 시간이 걸려 어렵사리 배웠다. 물론 나도 소중하다. 그리고 내가 책임을 다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내가 더 소중함을 느꼈고, 집은 그 모든 책임을 나와 함께 떠안은 내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p.29)
아홉 차례 이사 경험 속에서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을 위함이냐 혹은 주어진 삶의 방식에 끼워 맞추느냐”(p.33)에 공간이라는 의미를 찾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마음의 안식처’라는, 어찌보면 누구라도 알만한 표현이 그동안 꿈꿔온 이상적인 공간이라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집이 마음의 안식처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저 지금 집보다 더 나은 집을 위한 임시 거주처라 여기는 정도였다. 뉴스에서 연일 보도하는 집값과 부동산 문제 속에서 소외된 채, 그저 내 한 몸 누울 공간이 있음에 만족할 뿐이었다. 하지만 <둘이 함께 살며 생각한 것들>에서 ‘집’의 의미는 주택 시세로 집 수준을 가늠하는 세상의 척도와는 달랐다. 그들은 마당이 있는 주택에서 살며 편하게 책을 읽을 공간을 만들고, 빗소리를 듣고 비가 떨어진 땅의 흙냄새를 맡고, 마당에서 햇빛에 말린 빨래에서 품어져 나오는 향기와 햇볕의 따뜻하고 부드러움을 느꼈다. 중요한 점은 그들이 이러한 순간을 맞이하기까지 둘만의 공간을 찾으려 애썼다는 것이다.
그들은 전원주택이라는 공간이 지닌 어려움도 토로한다. 여름엔 습하고 겨울엔 추운 실내에 신경써야하고, 집안뿐 아니라 마당 등 집 주변도 관리해야 함을 말한다. 하지만 이는 문제가 아니라 둘만의 공간을 점점 사랑하는 과정 같아 보였다. ‘집을 완성시키는 것은 우리의 삶’이라는 4장 제목처럼, 인도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에게는 무엇보다도 ‘함께 살기 위한’ 공간이 필요했다. 그 여정을 함께하면서 공간의 의미는 점점 애틋해지고 따뜻해진 것이 아닐까. 4장을 읽으면서 나는 ‘부럽다’라는 단어만 연신 되뇌었다. 그 감정이 질투가 아닌 찬사 혹은 동경의 감정이었다.
또한 이 책은 내가 지니고 있던 ‘비혼’과 ‘동거’의 편견에서도 벗어날 기회를 주었다. 박미은 작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김진하 작가와 함께 사는 이유를 설명한다.
진하와 함께하기로 한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결혼하기 전에 결혼 생활을 검증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일 퍼센트도 없다. 동거 중이라 얘기하면 “살아보고 결정하면 좋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애초에 동거라는 생활방식이 배우자의 검증 방식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 동거의 대상이 내게 완벽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면 그에게 나는 완벽한 사람일 수 있을까? 동거를 통해 서로에게 완벽한 사람임을 깨닫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 살아보고 결혼을 할지 말지 선택한다는 것은 나와는 맞지 않는 방법이다. 왜냐면 내게 이 사람과 십 년 뒤의 계획은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현재만이 진하와 나 사이에 있다. (p.148)
이 책을 읽기 전에 나에게 공간의 의미는 생존에 있다면, 책장을 덮은 후 ‘나의 공간’은 그 공간을 함께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나만의 좋아하는 공간이 있는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는가로 그 의미가 바뀌었다. 두 사람에게도 나와 같이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 헤매던 시기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두 사람이 만난 순간이 그들만의 공간은 시작된 것이 아닐까. 지금처럼 가족과 함께 살지, 사랑하는 사람과 공간을 찾을지, 혹은 공간의 주인은 홀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둘이 함께 살며 생각한 것들>을 읽고 나는 스스로를 얽매어 온 집과 결혼에 관한 여러 해묵은 생각과 작별을 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책을 한참 읽어나가던 그때, 두 사람은 인스타그램에 성혼선언문을 통해 결혼 소식을 알렸다. 부산 남구 나락서점에서 책방지기를 하는 두 사람답게 “최은영을 좋아하는 남자와 / 정세랑을 좋아하는 여자가 / 소설같은 삶을 시작합니다”라고 시작하는 글은 어느 결혼식에서 들었던 시시한 성혼선언문과는 결이 달랐다. 처음으로 “내 집에 산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전원주택에서 두 사람이 만들어나갈 앞으로의 삶을 축복하고 응원하면서, 나는 좋아하는 공간 한 평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날 2021년을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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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해독이란? '독립출판을 한 해준이 (독립출판의 편견에서 벗어나) 독립서점에서 만난 책 읽기' 줄임말입니다.